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7일 오전 취임후 최초로 경제장관 간담회를 소집, 당면한 최대현안인 4백만 신용불량자 대책 등을 집중 논의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 부총리는 이와 관련,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 별도의 부실채권회수기관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최다신용불량자보유기관인 국민은행은 신용불량자에게 일거리를 찾아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신용불량자 해소를 위한 다각적 노력이 진행중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헌재에게 주어진 최대 단기과제, '4백만 신용불량자 해소'**
이 부총리는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무회의에 앞서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 박승 한국은행 총재,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 조윤제 대통령 경제보좌관, 권오규 정책수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당면현안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4백만명에 육박한 신용불량자 대책이다. 신용불량자 문제야말로 내수경기 침체 장기화의 주요원인인 동시에, '총선올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현 정부여권으로서는 4백만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획기적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총선을 치루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관계에서는 막판까지 부총리직을 완강히 고사한 이헌재씨를 노무현정부가 삼고초려한 이유중 하나가, 이 부총리가 총선의 최대걸림돌중 하나인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해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 문제는 워낙 해법을 찾기 어려운 사안인만큼 과연 '위기해결사'로 불리는 이 부총리가 어떤 획기적 정책을 내놓을 것인지에 각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헌재 "신용불량자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
이헌재 부총리가 그동안 일관되게 제시해온 신용불량자 처리 기본원칙은 '부채 탕감 반대'이다. 이럴 경우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확산되면서 시장자본주의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상태로 신용불량자 문제를 방치했다간 경제문제를 넘어선 심각한 사회-정치문제화할 우려가 크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부총리는 야인시절이던 지난달 9일 롯데호텔서 열린 신한.조흥은행 우수경영자 초청 오찬세미나에서 '2004년 경제전망과 국민소득 2만달러를 위한 경영인의 역할'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 부총리는 우선 신용불량자 문제와 관련, 앞으로 2~3년 더 지속될 것이라는 진단을 했다. 그는 "신용불량자 문제는 2~3년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민간소비가 활발하게 회복되기 어려워 부분적으로 소비심리가 좋아진다고 해도 경제의 한축을 담당할 정도는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었다.
이 부총리는 그렇다고 정부가 무대책으로 일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다중채무자 문제가 심각하다"며 "자살과 가정파괴 및 카드 빚의 강압적 회수에 따른 사회적 문제도 사회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닌,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정치-사회문제라는 인식이다.
이 부총리는 그러나 김진표 경제팀의 신용불량자대책에는 혹독한 비판을 했다. 그는 "KAMCO(한국자산관리공사)가 부채탕감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더 커졌다"며 "카드채 문제뿐만 아니라 자산운용 부분의 부실을 더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질타했다. KAMCO가 부채탕감 가능성을 시사하자 도리어 연체율이 급증하는 등 시장혼란이 가중됐고, 김정태 국민은행장등의 거센 반발을 샀던 점을 질타한 것이다.
***"별도의 부실채권회수기관 설립, 신용불량자제도 폐지"**
이 부총리의 이날 강연중 주목되는 것은 그가 내세운 대안이다.
그는 "다중채무자 문제는 부실채권의 할인매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금융계가 다중채무를 한 곳에 모는 특별한 기관을 만들어 서서히 채무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서민생활의 정상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권자들인 은행과 카드사들이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장기간에 걸쳐 신용불량자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부총리는 이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신용불량자 제도의 폐지'까지 주장했다. 그는 "신용불량자 제도는 정부 주도의 관료적 발상에 의해 나온 제도"라며 "신용불량자를 범죄 또는 도덕적인 범죄자로 낙인을 찍는 과거 방식은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신용불량자제도는 신용정보 분석 평가 노력을 약화시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이헌재 부총리의 평소 지론을 감안할 때, 향후 정부가 내놓을 신용불량자 대책도 이같은 큰 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관가 및 금융계의 지배적 관측이다.
***국민은행의 '신용불량자 해소 프로젝트'**
이헌재 부총리의 이같은 '해법'과 맞물려 주목되는 것은 국내 최대시중은행이자 신용불량자 최다보유기관인 국민은행이 최근 추진중인 신용불량자 해소 프로젝트이다.
국민은행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자체적으로 지난해말부터 신용불량자 해소대책을 다각도로 마련해왔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 출입기자의 제언으로 시작된 '신용불량자 일자리 찾아주기'이다. 대다수 신용불량자가 실직상태에 있거나, 또는 직장을 갖고 있더라도 현소득으로 부채를 상환할 여력이 없다는 점에 착안한 발상으로, 신용불량자들에게 일거리를 찾아줌으로써 조금씩 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금융거래를 하고 있는 기업들과 이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협의과정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 상당수 기업들로부터 야간경비직 등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상태다. 국민은행은 신용불량자들에게 이같은 일자리가 제공될 경우 취업해 소득의 일정부분을 채무상환할 의사가 있는지를 타진중이며, 다수로부터 그럴 의향이 있다는 회신을 받은 상태여서, 금명간 이 프로젝트를 본격가동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총선이라는 정치적 일정을 떠나, 우리 사회가 시급히 풀어야 할 최대 현안이다. 과연 '위기 해결사' 이헌재 부총리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4백만 신용불량자들의 관심이 지금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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