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과 평화네트워크가 각각 창간 18주년, 창립 20주년을 맞아 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모색하는 '한반도 평화를 향한 동행' 토론회를 엽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부침을 거듭해온 북핵 협상을 복기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천 방안을 모색합니다.
토론회는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발제, 그리고 발제자들을 포함한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종대 정의당 의원,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의 종합토론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정욱식 대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방편으로서 한반도 비핵지대 창설 및 한반도 평화협정의 조건들을 제안합니다. 김동엽 교수는 지난해 6월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올 2월 하노이 북미 담판의 결렬, 6월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7월 이후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와 대남 막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난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추적하면서 올해 안 북핵 협상의 진전 가능성을 전망합니다.
아직, 한반도 평화 동력이 불안함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한반도 평화체제의 핵심을 확고하게 붙잡고 남과 북이 주동적으로 나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반도 평화의 핵심은 남과 북의 화해와 공존입니다.
다음은 김동엽 교수의 발제문 전문입니다.
2019년에도 한반도엔 수확의 계절 가을이 왔지만 아직은 2018년 맞이했던 가을마냥 풍요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되어 역사적인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9월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엔 당장이라도 비핵평화가 찾아올 것만 같았다. 올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좌절과 실망 속에서도 6월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으로 북미 실무회담 개최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와 대남 비난과 '韓 소외론' 보도가 지속되면서 여전히 한반도 비핵평화와 남북관계에 대해선 낙관론보다 비관론이 우세하다.
그래도 연일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소식이 끊이지 않았던 2017년 이전을 떠올리면 지금의 비관론은 언감생심이자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정말 힘들었던 시절 생각 못하고 근거 없이 욕심만 내세운 낙관론 탓에 한반도 비핵평화는 희망고문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한반도 비핵평화에 대한 낙관도 비관도 시기상조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을 되돌아보며 드러난 남북과 미국의 입장을 면밀히 추적해보면서 어느 시점에 무엇이 잘못되는지와 향후 한반도 비핵평화의 진전 가능성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한반도 비핵평화를 향한 위대한 첫걸음
2018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11년 만에 열리는 정상회담을 위해서 북한 최고지도자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판문점 우리 측 지역으로 왔다.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 남북을 오가는 모습과 도보다리 환담 장면이 전한 전율과 감동은 아직까지도 생생히 남아있다. 양 정상은 판문점에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하고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해소,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 나갈 것에 대해 합의했다. 그 날의 합의를 이행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이 가속화 되고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가 정착되었다.
'판문점 선언' 이후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분단 이래 단 두 번 밖에 열리지 않았던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선언' 이후 두 차례나 더 열렸다. 2018년에만 정상 간의 만남이 세 차례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남북 정상간 소통이 한 차원 도약하고 신뢰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상간 합의사항 이행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분야별 남북회담이 진행되었고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소해 상시협의체계를 마련해 남북관계 제도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사회‧문화‧체육‧역사‧보건의료‧종교‧언론 등 다양한 문야의 교류협력과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통해 남북화해와 동질성 회복을 위한 토대를 다지고 철도‧도로 연결, 한강하구 공동 이용 추진으로 한반도 공동번영의 기틀도 마련할 수 있었다.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와 남북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했다.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이 이행방안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선언문 5조에 담았다. 남북관계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핵화에 대한 남북간 합의라기보다는 남북관계가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의 촉진제이자 남측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명확히 했다.
평양 공동선언 서명 직후 별도로 두 정상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하고 9월 평양공동선언의 1조이자 별도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했다. 남북관계는 군사문제 합의를 통해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시대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그렸다. 항상 뒷전으로 밀려 있던 남북 군사문제를 앞세워 군사적 위협과 전쟁의 위험을 종식시키고 남북한 주민의 삶에 평화를 일상화하였다. 이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비핵평화에 있어 군사문제를 앞세우는 선군(先軍)적 발상의 전환(paradigm shift)이기도 하다. 평양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의 중심이 5조의 비핵화가 아닌 1조의 남북 군사문제임이 분명하고 지난 한해 남북이 맺은 선언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아야함이 마탕하다.
남북 간 군사적 문제 해결 노력은 남북관계를 단단히 떠받치고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여는 열쇠이자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연결하는 연결고리이다. 경제문제도 중요하지만 군사문제는 분단된 정전협정체제 하에서 남북관계와 비핵화, 북미관계가 상호 동행하고 긍정적으로 병행하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서도 남북관계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북미관계 개선으로 나아가는 데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제시 할 수 있다. 선제적인 군사적 충돌방지 및 군사적 긴장완화 실현 등 적극적인 초기 군비통제정책 시행을 통한 정전협정의 준수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건임에 틀림없다.
1년 사이 2차례의 북미정상회담(싱가포르/하노이)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남북 정상의 만남이 남북관계 복원과 정상화를 넘어 비핵화 협상과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을 추동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판문점 선언' 3조에 명시된 것처럼 남북관계는 이제 더 이상 북핵문제와 북미관계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는 길라잡이다.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를 뒷받침하면서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를 추동하는 촉진제와도 같다.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두 번째 정상회담은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졌지만 위기에 놓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다시 개최할 수 있게끔 했다. 싱가포르 이후 좀처럼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북미대화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힘이다. 비록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간 협상 동력을 유지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버팀목임엔 틀림없다.
무엇보다 지난 판문점 선언 이후 1년 반 동안 가장 큰 변화의 중심엔 북한이 있다. 2017년 11월 29일 화성 15형 발사 이후 북한은 더 이상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있다. '판문점 선언' 직전인 지난해 4월 20일, 북한은 병진 노선을 내려놓고 경제건설에 매진하는 새로운 전략노선을 선택하면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했다. 5월 24일에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비핵화 방침을 대내외에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평양 공동선언에 동창리 엔진시험장 폐기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담았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최초로 북한의 5.1 경기장에서 평양시민들에게 직접 한반도를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고 연설한 것 역시 북한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와 하노이로 두 번이나 간 것만으로도 북한이 변화의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판문점 선언'은 북한이 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북한을 품에 끌어안았다.
한반도 비핵평화의 험난한 여정
사상 첫 남북미 판문점 회동이 있은 지도 석 달이 훌쩍 지났다. 남북미 판문점 회동 성사가 얼마나 계획된 일이었고 우리의 노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우리 정부의 집요함과 순발력으로 자유의 집에서 53분의 북미대화가 성사되었다고 하더라도 철저히 계획되어 성사된 것으로 자화자찬하기는 어렵다.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에도 굴하지 않은 한반도 비핵평화 설계의 집요함이 한 몫을 했을 것임엔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의도와 북핵 문제의 현상유지를 위한 상황 관리 차원에서 만남을 제안했고 북한이 판문점 회동 전날 밤 협상에서 북미 정상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 정부가 신속하게 자유의 집에 대화 장소를 마련하지 못했을 경우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판문점 상봉을 통해 북미는 실무회담 재개를 약속했다. 북미 모두 내부 정치적 목적이나 상호 대화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 대화를 통해 하노이 이후 깨진 북미 실무회담을 복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러나 2~3주내 있을 것이라던 북미 실무회담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 외형적으로 미국이 실무회담 개시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단순히 북한의 시간끌기 협상전술이라기보다 미국이 상응조치가 준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무회담에 나와서 협의하자고 여전히 강자의 굴복의 유혹 하에 강요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받은 타격을 교훈삼아 어느 정도의 협상 결과와 성과가 명확하게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협상테이블에 나가지 않으려는 신중함을 보이며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마음으로 확인 재확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오히려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계획대로 실시되었고 이를 핑계로 판문점 회동 이후에만 북한이 8차례나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 올렸다.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되고 남북관계가 속도를 낼 것 같았던 기대감이 피로감으로 바뀌면서 또 한 번 희망고문이 되어가고 있다. 북미 실무회담이 언제 열리고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인지 예상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언젠가는 열리겠지만 열린다고 좋은 결과를 기대를 단정하기엔 너무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판문점 회동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한반도 비핵평화 여정의 험난함을 느낀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지금의 상황은 남북관계마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판문점 회동(6.30) 이후 북한의 '韓 소외론' 막말 발언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을 단순히 북미간 협상 결렬만으로 보지 않고 남측이 9.19 남북 정상간 합의(5조 2항 영변폐기)하고도 사전에 미국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보고 섭섭함과 실망감, 불만을 표출하며 남북간 합의사항 이행을 전체적으로 중단한 것이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하노이 이후 전체적으로 상황을 복기하면서 현 문재인 정부가 나름대로 미국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오판이었음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미국의 의도대로 따라가며 미국의 메시지만 전달하고 있다고 재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에게 미국을 설득하는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기란 비현실적이고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 것이다.
북한의 '韓 소외론' 막말 발언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하는 중재 역할을 기대한다거나 더 이상 남한과 관계하지 않겠다는 통미봉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오히려 남북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한이 북미 사이에서 무언가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고 오히려 남북관계에 집중해 줄 것을 바라는 간절함일 수 있다. 북한도 2019년 하반기까지 북미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플랜A)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이다. 그러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12일 연내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내년에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중국, 러시아,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나가는 새로운 길(플랜B)로 전환을 모색한다고 해도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또 북한의 지난 7월 25일 이후 연일 미사일 시험 발사 등 신형무기 개발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중요하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을 단순히 미국과 협상국면을 압두고 압박이나 기싸움으로 보기 어렵고 남한에 대해서도 군비증강이나 연합훈련 중단 요구만으로 해석하기 부족한 부분이 있다. 오히려 하노이 이후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정상 통치행위이자 대내적인 의도와 목적이 우선으로 보인다. 비핵화 의도의 공개와 병진노선을 결속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의 안보우려 해소와 군 사기 측면에서 최고지도자의 정상적인 대내 통치행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최근 공개 신형무기 4종 세트가 가진 응징보복 능력 확보로 일정 부분 자위력과 억제력을 가졌다고 보고 더 이상 재래식 군비 투여를 제한하면서 오히려 우리측에 접경지역 포병전력 이동 등 군비감축을 선제적으로 제기해 올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북한의 총참모장이 포명국장 출신인 박정천이 기용되고 작전총국 성원의 상당수가 교체된 것 북한의 군사전략전술의 변화뿐만 아니라 향후 대남군사협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는 군사적으로도 우리의 군사력 증강과 연합훈련에 맞대응하면서 작지만 확실한 재래식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한 북한판 국방개혁이자 군사혁신이다.
한반도 비핵평화의 입구와 오르막
북한이 지난 2017년 11월 29일 화성 15형을 발사한 이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지만 실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핵무기 생산과 관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미사일에 실어 충분한 거리를 날릴 수 있는 보다 더 작고 가볍고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핵탄두를 만들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핵실험도 필요하다. 특히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능력에 대해서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핵무력의 기술적 향상이 '미래핵'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그리고 이와 관련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관련 시설을 폐기하는 것이 바로 '미래핵'의 제거이고 핵무력의 질적 향상을 차단하는 것이다. 북한의 미래핵은 이미 상당부분 제거되고 차단되었다. 9월 평양선언을 통해 동창리 시설 폐기도 합의했다.
반면 동결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는 유예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래핵'이 아닌 '현재핵' 제거의 시작점이자 실질적 비핵화 행동의 입구이다. '현재핵'은 현재 작동 중인 모든 핵 프로그램 관련 시설로 핵무력의 양적인 증가를 의미한다. '현재핵'의 활동을 중단시키지 않는 한 '과거핵'은 지금 이 시간에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핵'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과 핵탄두, 그리고 탄도미사일이과 같은 완성된 핵무력이다. '현재핵'은 '과거핵'의 역사책이자 지문과도 같다. '현재핵'의 사찰과 검증을 통해 얼마나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영변에 있는 5MWe 원자로의 경우 연료봉 8000개를 3~4년 가동 후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약 20~25kg까지 추출할 수 있다. 연간 1개 이상의 핵탄두가 늘어나는 셈이다. 아직 소재 및 규모는 불분명하지만 우라늄 농축시설인 원심분리기도 2000대를 운영한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핵탄두 2개를 추가로 만들 수 있는 30~40kg의 고농축우라늄 생산이 가능하다. '과거핵'의 증가는 북한이 상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보복을 할 수 있는 '2격 능력'(the second strike capability)으로 충분한 핵무기의 수를 가지게 된다. 핵무기를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실질적인 억지력이 있는 2격 능력을 가진다고 정확하기 말하기는 어렵다. 지난 6월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 세계 9개 핵보유 국가들의 전체 핵탄두 보유수가 1만3865기로 추정하면서 북한은 20~30개로 예상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북한 핵문제 전문 분석 웹사이트인 '38노스'(38 North)는 “2020년까지 최대 100개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북한이 인도, 파키스탄과 같이 100기 이상의 핵탄두를 가지거나 이를 넘어 영국, 프랑스, 중국처럼 200개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된다면 한반도 비핵화 게임의 양상은 지금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단 더 이상 핵탄두 수가 증가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동결은 중요하다. 동결조차 합의하지 않고 북한이 핵시설을 가동하고 핵물질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동결이 입구이자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판문점 회동 직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동결을 원한다"고 언급했다. 미 국무부 역시 동결이 입구라고 밝혔다. 미국이 동결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연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셈법이 바뀌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비건 대표가 북한이 비핵화 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대신 인도적 지원이나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언급했지만 동결에 따른 상응조치인지 불명확하고 오히려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북미 간 실무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장밋빛만은 아니다. 미국이 이야기한 동결이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일 수도 있다. 동결이 조건이 아닌 협상의제라고 하더라도 미국은 단순히 영변 핵시설의 동결이나 모든 핵 프로그램의 동결이 아니라 WMD의 동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협상 중에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고농축 등 핵물질 생산뿐 아니라 미사일과 화생무기 생산을 중단하고 모든 관련 시설을 폐쇄 봉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조건이다. 더욱이 동결을 확인하고 감시하기 위한 사찰단이 상주하는 문제와 동결 시설 목록을 신고하는 문제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셈법은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협상 시작 전부터 또 다시 허들을 만들고 골대를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싱가포르 이후 종전선언과 신고라는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이 길을 막았다. 동결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미국이 말하는 '일괄타결 후 동시병행'이든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동시행동'이든 범위를 결정하고 순서를 정하기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이번에는 동결이 입구가 아니라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볼턴이 떠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더 이상 리비아식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체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성 있는 개념화와 일괄타결은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최종상태에 폐기 및 반출해야 할 '과거핵'의 일괄타결 범위도 핵물질과 핵탄두, ICBM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 전체와 화생무기, 그리고 관련 기술인력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해야 할 상응조치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일괄타결이나 빅딜(Big Deal)이 아니라 일괄 압박, 빅 프레셔(Big pressure)이다. 미국은 강자가 가지는 굴복의 유혹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단은 비핵화의 최종단계를 보다 구체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핵 프로그램 동결을 약속하고 우선적으로 확인된 영변 핵시설 폐기가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일괄타결과 북한의 단계적 이행을 절충한 포괄적 합의 방식의 적용이 요구된다.
미국의 '동시적, 병행적'(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vs. 북한의 '동보적, 계단적'(simultaneously and phased)의 접점을 통한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에게 올 11월까지 되돌릴 수 없는 북미관계의 필요와 중요성이 존재한다. 트럼프는 내년 1년 대선 기간 중 북한문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현상유지가 필요한 반면 과도한 진전은 미이행시 오히려 부정적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 연말까지 미국과 협상에 시한을 제시해 놓은 상태이고 내년이 경제개발 5개년전략의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그 이전 제재 해제가 아니더라도 경제에 매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안보환경 제공 측면에서 일정 수준의 진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양측 모두 과거와 같이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는 북미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연락사무소 개설(싱가포르 1조), 평화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의 개시(싱가포르 2조), 모든 핵프로그램 동결과 영변폐기(싱가포르 3조, 9월 남북 공동성명 5조2항) 그리고 추가로 비핵화 진행상황에 따라 제재 유예/예외 조치 진행이라는 구체적 이행의 시작점(입구)를 담은 포괄적 합의가 필요하다.
최근까지도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다시 강조 언급하며 북한과 미국 모두 반걸음씩 양보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α'는 없지만 검증을 포함하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보다 구체화하고 영변 폐기와 모든 핵프로그램의 동결 시작과 동시에 미국의 상응조치로 싱가포르 정신에 따라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나 평화체제 문제와 연결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연락사무소는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북미 상호간 보다 원활한 비핵화와 상응조치 이행 차원에서 설치하는 것이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시작점은 평화선언 또는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시작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시진핑 주석이 방북 기간 중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고 한 이상 상당히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하노이에서 발목을 잡은 제재는 입구단계에서 동결과 영변 폐기 시작과 동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진전된 중간 불능화 지점에 우리의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을 우선 예외적으로 적용 실시하고, 추후 국제사회도 유엔 안보리 제재의 부분적 또는 단계적 완화를 모색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 지속적으로 한미연합훈련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연합훈련의 일회성 중단이 아닌 지속성 있는 조건부 중단도 우선적으로 제기해야 할 상응조치이다.
이러한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이를 바탕으로 2021년 북한의 제8차 당대회와 대선 이후 미국의 새로운 정부 진용이 꾸려지는 5,6월까지 1년 6개월여간의 차분한 이행과 최소한의 현상유지로 되돌릴 수 없는 북미관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역진불가능하고 서서히 합의 사항의 이행이 이루어지는 북미합의가 올해 내 제3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반도 비핵평화는 진정한 입구를 통과해 오르막을 오를 수 있고 2021년 후반기 시작과 함께 북미협상의 2라운드 시작과 함께 한반도 비핵평화의 한 단계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Trilemma(삼중딜레마)의 극복과 Triangrowth(삼각성장)
미 대선을 1년 앞둔 11월까지 역진불가능한 북미관계(비핵화)와 함께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의 결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북미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에 대한 미련과 집요함보다 냉정하고 신중하게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를 만들 담대함이 필요하다. 우선 남북관계가 북핵문제와 미중관계에 종속되지 않고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의 책임 있는 당사자 입장을 통해서 촉진자이자 중재자 역할로 확대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과도한 자기충족적 예언은 실현 가능한 정책과 전략수립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을 최소할 할 수 있는 냉정한 상황인식과 솔직한 메시지 관리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남북한 군사문제의 해결이 어려웠던 것은 "방안의 빈곤" 때문이 아니라 상호불신에 따라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의 빈곤과 여건의 문제"라는 점에서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고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는 여건과 의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선전형 제의보다는 상대방의 수용가능성을 높이는 대안의 개발과 정교화가 요구된다.
남북관계가 비핵화와 북미관계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경제보다 군사문제를 통해 역진불가능한 남북관계를 만드는 남북관계와 안보이슈의 선도성을 최대한 활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자칫 경제적인 접근은 우리의 역할을 더 축소하고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선제적인 군사적 충돌방지 및 군사적 긴장완화 실현 등 적극적인 군비통제정책 시행으로 비핵화와 평화협정 가속화가 가능할 것이다. 군사문제는, 특히 군비통제는 '평화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of peace)라는 관점에서 해석․접근하여 일관성 있는 정책 수립 및 추진해야 한다. 남북 군사문제는 국방정책 및 국가전략과 연계해 대북/대외전략으로 나타날 수 있는 포괄적이면서도 체계적인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우리의 한미연합훈련, F-35도입에 대해 서로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미군사훈련과 우리의 국방비 증액, 국방중기계획에 따른 우리군의 전력증강 문제에 대해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할지 북한의 예상 태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평화의 여정에 남북 합의의 안정적인 이행을 위한 한미동맹의 안정적 관리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그리고 한미동맹간 삼중딜레마(trilemma)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정교한 논리와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군사분야 합의 및 이행에 대해 일부에서 합리적 안보 우려라는 기우를 넘어 우리 군의 무장해제이니 안포포기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남갈등이라는 내부정치적 딜레마까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미 합의된 사항 중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면밀한 재검토를 통해 설득 논리 개발 및 홍보를 강화하고 남북 합의 이행과 진전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이는 최근 지소미아 종료와도 연결되어 미국의 안보문제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해야함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남북관계(합의 이행)과 한미동맹, 국내 안정이 결코 삼중딜레마(trilemma)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삼각성장(triangrowth)의 기회로 만드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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