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9·11' 8년, 여전히 공포에 갇혀 있는 뉴욕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9·11' 8년, 여전히 공포에 갇혀 있는 뉴욕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우릴 왜 싫어하지?" "테러 재판도 싫어"

미국 뉴욕은 국제정치의 중심기구인 유엔 본부와 세계금융을 호령하는 월스트리트 등이 자리한 그야말로 세계도시다. 뉴욕 사람들(뉴요커)은 특히 뉴욕 맨해튼을 지구촌의 심장부라 여긴다. 4년 만에 걸어보는 맨해튼 거리는 그러나 그 이름값을 못 하고 활기를 잃은 모습이다.

지금 뉴욕의 경제상황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지 못하다. 2년 넘게 경기가 워낙 좋지 못한 탓에 많은 기업체들이 문을 닫았고, 권리금조차 포기하고 팔려고 내놓은 가게들이 수두룩하다. 영업 중인 가게들도 살아남으려 몸부림을 친다. 'Sale, Up To 90%'(90%까지 할인판매)라는 표시를 내걸은 가게들도 많다.

실업률 10%에 뉴욕 풍경은 썰렁

거리엔 대낮인데도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실업자들이 쉽게 눈에 띈다.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무원들에게 다가가 담배 한 개비를 구걸하는 실업자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먹을 것을 찾아 길모퉁이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마저 보인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최근 실업률은 대체로 10%대를 넘어 왔고 올해 1월 9.7%를 기록해 전 달인 12월의 10%보다는 떨어졌다. 9.7%라는 실업률은 지난 5개월 동안의 최저치다. 지난 2년 동안 미국에서 무려 84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러니 뉴욕의 거리 풍경이 쓸쓸해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고구마처럼 길게 생긴 맨해튼 섬 남쪽은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로 일컬어져 왔다. 세계금융을 주무르는 고층건물들이 들어선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도 찬 겨울바람 탓에 썰렁해보였다. 월스트리트 금융가에서 10분쯤 걸어가면 2001년 9·11 테러의 직격탄을 받았던 세계무역센터의 재건축현장이 나타난다.

▲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는 2015년 완공을 목표로 5개의 고층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재명

▲ 테러 참사의 자리에 새로 새워질 고층 건물 공사 현장. ⓒ김재명

"그들은 왜 우릴 미워하는가?"

110층짜리 쌍둥이빌딩에서 2749명의 희생자를 냈고, 엄청난 건물 잔해를 치우는 데만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리고 지난 2004년 7월 4일(미국 독립기념일) 70층 건물인 '프리덤 타워'(높이는 미국이 독립한 해를 상징하는 1776피트)의 기공식을 가졌다.

2015년까지 그곳에는 모두 다섯 개의 고층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독립기념일에 맞춰 기공식을 갖고, 독립년도를 건물 높이에 맞추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인들은 9·11 테러를 애국주의에 절묘하게 엮어내고 있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21세기의 문턱이라 할 2001년 9월 미국 본토가 공격당한 일도 벌써 8년이 지났다. 9·11 테러 사건은 3000명 가까운 목숨을 하루아침에 앗아가면서 미국인들을 커다란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때 필자는 늦깎이 공부를 하느라 뉴욕에 머물고 있었는데, 정작 필자에게 충격이었던 것은 사건 자체보다 '미국인들이 9·11 테러가 일어난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학 박사과정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백인 학생들조차 "많은 사람들이 밀입국마저 해가며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고 미국 땅으로 몰려드는 판에 왜 그들은 우리 미국인들을 미워하고 죽이려 드는가?"라고 되묻곤 했다. 미국인들의 국제정치 이해도가 형편없이 낮다는 사정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9·11 테러 뒤 미국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은 반미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뿌리를 뽑을 때까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반미 저항세력은 그들이 벌이는 투쟁은 침공국인 미국에 맞서는 '지하드(jihad, 성전)'라 여긴다. 그들의 투쟁명분(미국의 석유이권 챙기기와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로 나아가는 미 중동정책에 대한 비판)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미국에 대한 정치적 동기를 지닌 폭력(테러)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110층 쌍둥이 빌딩 대신에 세워질 핵심 건물인 70층 높이의 프리덤 타워 조감도. 그 옆을 한 뉴욕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김재명
'미국 요새'에 갇힌 불안한 평화

그렇기에 오늘날 '미국의 평화'는 불안한 평화다. 특히 테러 위협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불안에 떤다. 걸핏하면 테러 비상이 걸리곤 한다. 많은 시민들은 이른바 '미국 요새'(American fortress) 안에 있으면서도 테러 공포로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9·11 테러의 최대 피해지였던 뉴욕의 시민들은 특히 그러하다. 신문이나 TV 뉴스에서 '테러' 관련 소식을 들으면 곧 머릿속에 9·11 테러를 떠올릴 정도로 테러는 그들 마음속에 말 그대로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분위기는 9·11 테러 관련자 재판조차 뉴욕에서 열리지 못하게끔 만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9·11 테러용의자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해 모두 5명의 관타나모 수감자가 뉴욕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최근까지 약 3개월 동안 9·11 관련 뉴욕재판을 여느냐 마느냐로 공방이 이어졌다.

테러 공포로 9·11 재판조차 못 연다?

필자는 뉴욕에 머물던 지난 2월 한 달 동안 TV 화면을 통해 그와 관련한 토론을 거의 날마다 봤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과 지역 상공인들은 "언제나 테러 위협에 직면해 있는 뉴욕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위험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며 재판이 뉴욕에서 열리는 것을 반대한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나섰다. 그는 "테러범들을 뉴욕으로 이송한 뒤 보안강화에 드는 비용(2억 달러) 면에서나 뉴욕의 안전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나섰다. 야당인 공화당 쪽 인사들은 군사재판이 아닌 민간재판 그 자체를 비난하고 있다. 정치적 색깔을 떠나 재판이 뉴욕에서 열리는 것을 반대하는 뉴요커들은 한결같이 '뉴욕에 대한 또 다른 테러 위협 증가 가능성'을 꼽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재판을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마침 뉴욕시 연방재판소는 맨해튼 옛 세계무역센터(WTC)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그런데 막상 뉴욕에서 재판이 벌어진다면 다시금 뉴욕이 테러 공격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문제다.

골치가 아파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뉴욕 말고 다른 곳에서 재판을 여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뉴욕은 가수 프랑크 시나트라가 '뉴욕~ 뉴욕~'을 노래하던 지난날이 아득한 전설이 되고, 테러 공포와 생존의 벼랑에 내몰려 고민하는 도시로 바뀐 느낌이다.

끊이지 않는 테러 공포에다 경제불황을 말해주듯 맨해튼 중심가인 타임스퀘어는 오가는 사람도 적고 썰렁한 분위기다. ⓒ김재명

* 위의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 최근호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 필자 이메일 : kimsphoto@hanmail.net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