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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골프장 공화국'…여의도 63배가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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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골프장 공화국'…여의도 63배가 골프장

[현장] 15개 지역 주민, '골프장 반대' 전국 조직 꾸려

"지난해 산불로 훼손된 산림 면적은 1381헥타르, 묘지 조성으로 훼손된 면적은 480헥타르입니다. 그런데 골프장 건설로 훼손된 산림은 2008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3418헥타르에 이릅니다. 지금 정부는 대한민국을 '골프장 공화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골프장 건설 예정지마다 산림 훼손, 멸종 위기종 서식지 파괴 등 환경 문제와 토지 강제 수용, 지역 주민에 대한 개발 업자의 고소·고발 등 충돌이 계속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골프장 건설 예정지 주민들이 모여 전국적인 골프장 건설 반대 모임을 발족했다. 11일 강릉·홍천·여주·남원·논산 등 전국 15개 지역 주민 300여 명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골프장대책위원회' 발족식을 열고, 정부와 골프장 건설 업체를 상대로 한 공동 대응을 선언했다.

▲ 전국 15개 지역 골프장 건설 예정지 주민들이 모여 전국적인 골프장 건설 반대 모임을 발족했다. ⓒ프레시안(선명수)

'골프 공화국'의 그림자…홍천에만 골프장 13개 건설 중

이날 대책위 발족식에 이어 열린 '주민 피해 보고 대회'에서는 무분별한 골프장 개발로 인한 지역 공동체의 파괴, 자연 생태계 훼손 등과 관련해 각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이 이어졌다.

골프장저지천안시민대책위원회 박기복 씨는 "18홀 골프장 한 곳이 건설되면 파괴되는 산림이 약 100헥타르인데, 현재 강원도에만 40여 개의 골프장이 건설되거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파괴되는 면적은 총 4000헥타르에 이른다"며 "이는 매년 산불이나 묘지 조성으로 훼손되는 면적보다 훨씬 크다"고 꼬집었다.

박 씨는 "골프장 건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불법적인 벌목이 자행되고, 강원도 홍천·충청남도 논산에서 산림조사서가 '날림'으로 작성된 사실을 지역 주민들이 꾸준히 문제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산림청은 수수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산림청은 산불 방지를 위해 애쓰는 노력의 100분의 1이라도 골프장 문제에 성의를 보여 달라. 지금처럼 무책임한 행태를 반복한다면 산림청은 결국 '산림파괴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골프장 건설로 인한 자연 생태계의 훼손 문제도 지적됐다. 홍천구만리주민대책위원회 반종표 씨는 "골프장 예정지인 강원도 홍천 구만리에는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 희귀 식물인 삼지구엽초, 멸종 위기종 2종인 산작약 등이 발견되고 있지만, 개발 업체인 (주)원하레저가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보호종, 희귀종이 없다'고 돼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환경부는 이런 평가서를 반려하지 않고 오히려 골프장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강원도 원주 여산 골프장 건설 예정지에서 집단 폐사한 멸종위기종 2급 둑중개. ⓒ전국골프장대책위원회

▲ 골프장 공사로 인근 하천에 탁수가 발생하고 있다. ⓒ전국골프장대책위원회

그는 이어서 "골프장은 1일 1.999세제곱미터의 용수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부분의 골프장이 물이 부족할 경우 농업 용수를 추가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는 필연적으로 농업 용수 부족을 낳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주민 취수원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 씨가 살고 있는 구만리 지역에는 27홀짜리 대형 골프장(159만 제곱미터)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를 위해 135제곱미터에 해당하는 산지를 깎아내야 한다. 이 골프장을 포함해 강원도 홍천 지역에 들어서는 골프장은 총 13개. 현재 전국의 골프장은 건설을 진행 중인 곳까지 합치면 총 450여 곳으로, 면적으로 따지면 여의도의 63배에 달한다.

이날 구만리 주민들은 "산이고 들이고 골프장 만든다면서 파헤치고 있지만, 강원도는 오히려 '멸종위기종이 널려 있는데, 그럼 개발을 하지 말라는 거냐'며 큰 소리를 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 울리는 개발업자, 개발업자 이익에 봉사하는 정부"

이날 참가자들은 인천 계양산에 골프장 건립을 추진 중인 롯데건설과 굴업도 개발을 추진 중인 CJ그룹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개발 이익에 눈 먼 건설사가 지역 주민과 자연 생태계를 죽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계양산시민대책위원회 노현기 씨는 "롯데건설은 2006년 계양산 일대에 약 7만7000제곱미터에 달하는 나무 2000여 그루를 굴취했다"며 "그런데 산림을 고의로 훼손해 놓고, 이제 '이미 훼손된 지역이니 골프장을 건설해도 되지 않느냐'고 억지 논리를 피며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씨는 굴업도 개발에 대해서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지정을 검토하고 있는 '생태 보물' 굴업도 역시 CJ그룹이 섬 전체의 98.5퍼센트에 해당하는 지역을 사들이면서 관광 단지라는 미명하에 골프장 개발을 추진 중이다"며 "상황이 이런대도 지자체는 말로는 중립을 외치면서 골프장 유치에 골몰하는 등 철저히 개발 업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회원만 이용하는 골프장이 공공 체육 시설이라고?"

이날 대책위는 "골프장 건설로 농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지역 주민의 생존권이 말살되고, 토지 강제 수용에 반발하는 주민을 개발업자가 고소·고발하는 사태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명백한 골프장 유치를 위해 지역민의 재산권을 재벌사들에게 넘겨주고 있다"고 성토했다.

현행 국토계획법은 골프장을 공공·문화체육시설로 규정해, 민간 건설업자도 토지 소유자 80퍼센트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나머지 소유자들의 집과 땅을 강제 수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날 한 참가자는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골프장이 어떻게 공익 시설일 수 있냐"며 "소수만을 위한 영리 시설인 골프장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개발업자들의 회유와 로비에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공동체가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골프장 개발은 한마디로 사람이 빠진 개발"이라며 "전체 인구로 보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골프를 위해 지역 주민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면서까지 허가를 내줘야 하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무분별한 건설 허가를 막기 위해 골프장 총량 규제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도 이날 보고 대회에 참석해 "소수 몇 사람이 골프치자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피해를 봐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이 정부는 오로지 소수 재벌의 곳간을 채워주기 위해 강을 파내고, 들과 산도 엎어버리는 정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이날부터 헌법재판소에서는 민간 기업에 골프장 건립을 위한 토지 수용권을 주는 문제를 놓고 공개 변론이 시작됐다. 지난 2008년 경기도 안성시 동평리 주민들은 수뢰 사건에 얽혀있는 골프장 사업자가 이 지역에 회원 전용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토지 수용권을 획득하자, "민간 사업자에게 토지 수용권을 주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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