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지난 7월 말, '북도 남도 아닌' 유럽으로 간 탈북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기존 미디어에 등장하는 탈북민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북한이 아닌, 남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한 정부와 사회가 통일을 말하기 전에 탈북민에 대한 처우와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편에 이어 영국에 사는 최승철 씨의 남은 이야기를 전한다. 북한에서 의대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인 승철 씨는 남한에서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사를 운영했고, 영국에선 탈북 주민 단체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만큼 탈북민 사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는 지식인으로서 북한과 남한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풀어놓았다. 꼬박 이틀간 그가 쉼 없이 풀어놓았던 이야기를 갈무리했다.
(전편에 이어서. ☞1편 보기 : "평양 시민을 탈북민 대하듯? 통일 때려치우라 할 것")
"북한에서 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승철 씨가 북한에 있었을 때, TV에 비친 남한의 모습은 호감에 가까웠다.
"TV를 돌려보다 보니까 분명히 조선말을 하는데 이상한 채널이 있더라고요. 주파수를 잘 맞추다 보니까 남조선 채널이었어요. 김영삼 정부 때였는데, '북한 인민들을 위해 쌀을 얼마 지원했다' 이런 뉴스가 나오고, 비둘기들이 날아가다가 한반도 지도 모양으로 변했다가 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글자로도 변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더니 하루는 전두환을 잡아가더라고요. 전직 대통령이면 국가의 원수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잡아가다니 우리로선 완전 상상 초월이죠. '저게 인민의 나라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남한행(行)을 택한 것은 자의보단 타의에 가까웠다. 그러나 남한에 대한 우호적 감정이 없었다면 결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한은 자유로운 사회니까 '나만 잘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타고난 머리 덕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벽이 보였다. 남한 사회에서 '탈북자'라는 신분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운영하던 사업체에선 몇몇 윗사람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에게 탈북민 신분을 알리지 않았다.
"외환 컨설팅 사업을 할 때였어요. 사실 외환 컨설팅이 고급기술이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탈북했다고 하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무시하고 상대 안 할 거 뻔하잖아요. 그래서 북한에서 왔다고 아예 말을 안 했어요. 차도 벤츠 몰고 다니고 그랬어요. 한국 사람들, 겉모습 중요하게 보잖아요."
탈북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만 차별받지 않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었다. 남한에 있던 5년간 끊임없이 '남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연습한 결과일까. 그의 말투는 보통의 남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탈북자 부르는 용어 가지고 아직도 말이 많은데 탈북자든, 탈북민이든, 새터민이든 그게 뭔 상관인가요? 이름이 달라지면 우리 처지가 하루아침에 달라지냐는 거죠. 탈북자라고, 새터민이라고 도와줄 생각도 말고 그냥 옆에 사는 사람으로 대우해달라는 거,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겁니다."
승철 씨는 영국에 오고 난 후 남한 사회가 탈북민을 잘못 대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했다.
"한국은 탈북자에게 '정착지원금' 명목으로 돈부터 쥐여줍니다. 그러면서 생색을 냅니다. 그러니 기도 못 펴고, '남한 싫다, 북한 좋다'는 이야기도 할 수가 없죠. 그런데 영국은 돈을 안 줘요. 집만 제공해주고 개인의 삶을 기준으로 해서 지원을 합니다.
한국은 정작 탈북자 개인의 삶에는 무심해요. 정말로 지원을 해줄 거면 탈북자들의 삶에 맞춰서 해줘야지, 자꾸 정치적 요인을 생각하고 북한에 비해 우월감을 가지라는 방향으로만 '시혜'를 하려는 건 잘못된 사고예요.
탈북민더러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남한 사람들이 탈북민 바라보는 건 통일이 아니에요.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 바라보듯,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사람 바라보듯 하는 거, 그게 통일이 아니겠어요? 영국에 있으면 남한 사람, 북한 사람이 상호 동등합니다. 남북 통일도 그렇게 돼야 해요.
탈북민 중에는 마냥 도움만 받길 원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분명 주류집단은 그렇게 안 갈 겁니다. 그 사람들한테 돈 몇 푼 주면서 '무조건 우리 말 들어' 라고 하면 '야, 재수 없다, 치워라' 라고 할 겁니다. 한쪽이 '넌 내 밑이야'라고 생각하는 한 통일은 될 수 없어요."
"남한의 통일 구상에 북한의 역할은 없다"
영국에 정착한 지도 벌써 10년.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승철 씨를 따라 하루아침에 이역만리 땅에 오게 된 아내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낯선 언어와 낯선 풍경 속에서 말을 잃은 아내를 위해 승철 씨는 6년 전 한국인 거주 지역인 뉴몰든으로 이주했다. 타향살이가 고달프기는 승철 씨도 마찬가지다. 고향에 남아있는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지금까지도 승철 씨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러나 얻은 것이 훨씬 더 많다. 아이들은 배고픔도 차별도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뛰놀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승철 씨는 시야가 트였다. 한반도 바깥에 나와 떨어져 있으니 북한과 한국의 문제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제3국에서 얻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통찰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지난 7월, 유튜브 방송을 개시했다. 주제는 탈북민 관점에서 바라보는 통일 이야기, 그리고 북한 바로 알기다.
승철 씨는 남과 북이 통일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튜브 첫 방송에서도 지금의 남과 북에 대해 "결혼해야 하는데, 자꾸 상대에 대해 안 좋은 것만 이야기하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야만스럽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존중을 이야기하고 관계를 풀어가려 해야지, 잘못을 자꾸 꼬집으면서 잘못했다는 인정을 받으려 하면 남북 관계는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고 했다.
또 "'북한은 우리보다 못하고 잘하는 게 없고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남한의) 태도가 북한 주민한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면서 "결혼하는데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가만히 있어' 이런 태도가 좋은 태도일까"라며 남한 주도의 통일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차원에서 햇볕정책 또한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북한을 동등한 통일 주체로 놓고 만든 정책이 아니라는 것. 그는 "남한의 통일 얘기 속에서 우리 정부(북한)의 역할이 없다"면서 "북한을 남한이 주는 베네핏(benefit)이나 먹고 사는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말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요. 조선중앙TV에 <100분 토론>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거기 나온 패널들이 '삼성 주가가 몇 조원이고, 땅이 몇 조원이라서 이걸 먹으면 북한에 얼마만큼 이익이 된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하면 남한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요.
우리 심정이 딱 그래요. 이런 얘기할 때 제발 북한 인민들이 무슨 생각 할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땅값 계산도 못 하는 그런 바보들이 아니거든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동남아에서 원조 사업을 하니까 현지에서 좋은 평을 못 듣고 쫓겨나는 겁니다."
"북한 사람들도 자존심이 있다"
승철 씨는 한국을 '천박한 부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금 같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고. GDP를 세계 10위권에 올려놓은 것은 존경스럽고 본받아야 할 부분이지만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문화, 교육 문제에선 북한 시스템을 한국에 수출해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또 "병원, 학교 운영은 절대로 한국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했던 그가 남한서 의사로 살기를 단념한 이유도 한국의 '5분 진료' 시스템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이 남한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탈북민에 대한 천대 또한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쌀 주면 고맙고, 밥 사주면 고맙죠.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나도 언젠가 돈 있으면 한번 사야지' 이런 생각 왜 안 하겠습니까. 그런데 '너 돈 없지? 그러니까 내가 사줄게' 이런 태도로 나오면 얻어먹으면서도 기분 나쁩니다. 안 얻어먹고 싶어요. 남한은 '왜 쌀 주는데도 안 고마워하냐'고 북한을 이해 못 하지만, 북한 사람들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남한은 알아야 해요."
승철 씨가 보기에 역사 문제 또한 북한이 남한보다 잘한 것 중 하나다.
"지금 일본이 남한에 경제 보복을 했는데, 그 계기가 일제 강점기 배상 문제잖아요. 북한은 이미 일본에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를 확실하게 받아냈습니다. 당시 쟁점은 배상금을 받겠냐. 경제 원조를 받겠냐였습니다. 그때 한국은 독립 축하금으로 돈을 받았지만, 북한하고 일본이 합의한 방식은 축하금이나 개발비의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북한 입장은 '우리가 거지냐. 배상금을 내놔라'였죠. 북한 측 협상 단장은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우린 역사에 수치스러운 오점을 남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준다고 봅니다."
"빨갱이 소리 듣더라도 내 나라는 '북조선'"
영국에서 그는 'North Korea' 출신이라는 점을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세 아들에게도 북조선 출신으로서 민족적 자긍심을 잃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이미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지만, 집에서만큼은 꼭 조선말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조선 말을 못 하면 조선 사람이 아니라는 게 승철 씨의 생각이다.
그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북한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그는 "북한이 다 못하는 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애정이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따름"이라며 "북한도 잘하는 게 있기 때문에 그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대학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홍콩 출신의 24살 학생이 질문을 했어요. '당신은 왜 북한을 욕하지 않느냐'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네가 10년, 20년 지나서 정부 관료나 큰 회사의 책임자가 된다고 하자. 그때 북한 사람이 와서 비즈니스를 하자고 하면 하고 싶겠냐'고요. 북한이 내 나라인데, 내가 내 나라에 보탬을 주지 못할망정 그 가치를 왜 깎아 먹어야 합니까."
'빨갱이' 소리를 듣더라도 '내 나라 북조선'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하겠다는 게 승철 씨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남한 사회와 미디어를 향해 "북한을 왜곡하지 말라"고 외친다.
남한에 쓴소리를 던지는 만큼, 북한에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남한이 북한의 사회주의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북한은 고집을 버리고 경제 개발을 위해 자본주의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돈 벌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카드 줘 봐요. 하루아침에 다 까먹습니다. 한국에서 하나원에 있을 때, 3600만 원을 하루아침에 다 쓴 탈북민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사람뿐 아니라 정말 많은 탈북민들이 그래요. 돈 가치를 모르는 겁니다."
승철 씨는 그런 의미에서 영-북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저는 앞으로 북한이 언젠간 개혁이 될 거라고 보는데. 북한에서도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닫힌 생각을 가진 사람들 말고, 세상을 좀 아는 사람이 북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북조선에 저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몇 배, 몇천 배 많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본주의 생리를 아주 조금만 깨닫고, 그 사람들이 고향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면 그땐 우리도 세계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일단 그렇게 경제 개혁을 통해서 인민의 삶이 나아지면, 김 씨 정권이 무너지든가, 고위 관료들이 무너지든가 답이 나오지 않겠어요?"
인민을 곯게 만드는 북한이 싫어서 탈출했다. 그래도 그에게 북한은 조국이다. 그렇듯, 남한이 아무리 그를 실망하게 했어도 그에게 남한은 조국의 반쪽으로 남아있다. 남북이 축구 경기를 하면 북한을 응원하지만, 한국과 다른 나라 시합에선 한국을 응원하는 승철 씨다. 머나먼 유럽 대륙에서, 그는 한반도의 통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현재 많은 남한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통일 정책을 지지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지금의 한국 정부가 과거보다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상태로 통일을 한다면 그건 재앙입니다. 남한은 북한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런 생각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북한과 북한 인민들의 부족한 부분에 아량을 보여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자면 탈북민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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