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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가이' 오브라이언...그러나 볼턴 못지않은 '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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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가이' 오브라이언...그러나 볼턴 못지않은 '매파'

[안문석의 한반도 깊이보기] 미 신임 국가안보보좌관,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존 볼턴의 퇴장 과정은 극적이었다. 결정적인 일은 비밀누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9월 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의 무장반군 탈레반의 지도자들을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평화협정 담판을 하려 했다. 볼턴은 완강하게 반대했다. 트럼프와 언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안 되자 언론에 흘렸다. 마침 탈레반이 미군을 향해 테러까지 저지르면서 탈레반 워싱턴 초청은 취소되었다. 트럼프가 격분한 것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교안보상의 비밀을 언론에 흘리기까지 한 볼턴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볼턴의 리킹(leaking, 비밀누설)은 유명하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 당시에는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제임스 켈리가 북한에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의 'HEU(고농축우라늄)보다 더한 것도 만들 권한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는 이야기를 '북한이 HEU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했다'는 내용으로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흘린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그는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었다. 필자가 KBS에서 기자로 일할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한반도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하고 연구했던 셀리그 해리슨에게서 전해들은 얘기다.

해리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워싱턴의 외교안보 네트워크를 통해 취재를 해본 결과 그런 결론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리킹으로 미국 언론은 '북한의 HEU 보유'를 기정사실화 했고, 여기서 사실상 2차 북핵위기는 시작되었다 해도 과한 얘기가 아니다. 그때는 그가 원하던 '북한 악마화'에 성공했지만, 이번 탈레반 담판 리킹은 자신의 해임을 불러왔다.

슈퍼 매파 볼턴은 그렇게 전면에서 물러갔다. 새로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로버트 오브라이언이다. 볼턴이 북한과의 협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만큼 새로운 얼굴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953년 아이젠하워가 처음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로버트 커틀러를 임명한 이후 맥조지 번디, 헨리 키신저,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콘돌리자 라이스 등 쟁쟁한 인물들이 그 자리를 거쳐 가면서 세계정치를 쥐락펴락해왔고, 한반도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다. 그러니 새 얼굴 오브리이언에 대해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한 평판은 대체로 '좋은 사람'(good guy)이라는 것이다. 볼턴이 뭔가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과시쟁이'(showboat)라면, 오브라이언은 조용히 이견 조정에 힘쓰는 '합의 도출자'(consensus builder)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강경보다는 온건한 의견을 많이 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우리 쪽에서 그런 기대를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는가. 그래야 북한과의 협상에 진전이 있지 않겠는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8일(현지 시각)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인질 문제 담당 대통령 특사를 소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그를 잘 뜯어보면 그런 기대는 좀처럼 하기 어렵다. 볼턴이 TV출연을 통해 주로 그의 생각을 표현했다면, 오브라이언은 주로 글로 의견을 알려왔다. 그가 써온 글들을 모아 2016년 출판한 책이 <미국이 잠들어 있는 동안: 위기 속 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 회복하기>(While America Slept: Restoring American Leadership to a World in Crisis)이다. 이 책에 그의 생각이 잘 담겨있다.

전체적으로 책의 흐름은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며 우월하다는 예외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고, 미국은 힘을 가진 상태로 세계를 지휘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오바마 시절의 '조용한 지휘'(lead from behind)에서 벗어나 레이건 식의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 군사력을 세계 곳곳에 투사하면서 경제력을 성장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를 끌고 가야 한다는 전형적인 현실주의 인식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 부시(George W. Bush)의 일방주의 외교노선을 그대로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책에서 영웅으로 묘사한 인물이 윈스턴 처칠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대담한 독재자와 맞선 점을 높이 사고 있다. 독재자, 폭군, 테러리스트와는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 제압해야 한다는 생각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2015년 이란 핵합의'도 반대한다(트럼프는 지난해 5월 이 합의에서 탈퇴했다). 15년간 이란의 우라늄 농축 수준을 3.67% 이하로 제한하면서 이란이 가지고 있는 저농축우라늄을 차츰 감축하기로 하고, 유엔의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합의였다. 이란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를 복원하는(snapback) 조항도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그의 책에서 이를 '재앙'(disaster)으로 묘사했다. 히틀러가 체코의 슈데텐 지방을 차지하는 것을 인정한 뭰헨협정과 같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낮은 수준이라도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일정 기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터키 등 중동의 이란 반대 측 국가들이 핵을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란의 핵을 완전히 제거하는 합의만이 합리적이고, 단계적 비핵화 합의는 '재앙'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국제기구도 불신한다. 유엔총회를 세계의 독재자들이 '우리가 얼마나 나쁜지'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장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국제법이나 국제기구도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역시 현실주의 견해이다. 버클리대(UC Berkeley) 로스쿨을 나온 국제법 전문 변호사이면서도 국제평화를 위한 국제법·국제기구의 기여보다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국제법·국제기구의 활용에 보다 관심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오브라이언은 평판 좋은 사람이다. 문제를 해결할 때 심한 잡음을 내는 사람은 아니다. 협력의 방법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그를 관료주의가 심하기로 유명한 해군을 담당하는 장관으로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을 추진하고 성사시키는 방법에 관한 얘기다. 그와 별개로 그의 생각, 신념은 강경하다.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대외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군사적 성장을 저지하고, 이란과도 협상보다는 압박을 내세울 공산이 크다. 북한과의 협상도 그런 기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독재자와는 맞서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가 아닌가.

협상에 임하면 끈질기게(doggedly) 협상하는 면은 가지고 있다. 작년에 터키에 억류돼있던 미국인 목사 앤드류 브런슨을 석방시키고, 올해 예멘에 인질로 잡혀있던 대니 버치를 빼내 오는 데에 그런 능력을 발휘했다. 트럼프도 그 점을 높이 사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한 것이다. 북한과의 협상도 인내심을 갖고 해나갈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런 면에 기대를 걸어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기도 하다.

동맹과 함께 할 때, 동맹에게 미더운 친구가 될 때, 미국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동맹 중시의 입장을 오브라이언이 가지고 있는 점도 우리에게 운신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알려진 대로 그가 예스맨의 기질만 발휘한다면 부질없는 기대에 불과할 것이다. 트럼프는 동맹보다도 미국의 이익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니까.

요컨대, 새 얼굴에 새로운 기대를 하는 것은 섣부른 것 같다. 곧 시작되는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의 압박에 대항할 정교한 논리를 만들어내고, 북미 양측이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는 안을 창출해내는 데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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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문석

안문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KBS 통일부·정치부·국제부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를 지냈습니다. 2012년부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북한의 대외관계', '동북아 국제관계'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통일외교 방안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국내외의 저명한 저널에 연구결과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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