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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3만불 시대, 강남역 철탑엔 해고노동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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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3만불 시대, 강남역 철탑엔 해고노동자가 있다

[삼성공화국, 어디로 가나] 죽음을 향해 가는 노동자들

노동자는 다 굶어 죽어야 한단 말인가?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은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왔던 사람이다. 양심수와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인권옹호와 권익에 힘써온 사람이다.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은 매우 컸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그 희망은 고문으로 변했다.

2003년 1월 9일 새벽, 경남 창원의 두산중공업에서 배달호라는 한 노동자가 분신했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이었고, 아무도 없는 공장 마당에서 그는 자기 몸에 불을 댕겼다. 그의 몸은 아낌없이 탔다. 남은 것은 쉰 살 노동자의 검은 시신뿐이었다. 그날, 그는 잠이 덜 깬 아내와 두 딸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나갔다. 그가 분신한 다음날은 월급날이었다. 그는 6개월 동안 월급을 받은 적이 없었다. 회사 측은 그에게 3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손해배상압류를 걸어놓았다. ‘노사분규’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죽으면서도 자신보다는 동료들을 걱정하며 유서에 이렇게 썼다.

"해고자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든 것이 불법이라니, 가진 자의 법 아닌가?"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하기 바란다. 내가 없더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주기 바란다."

그해 10월 17일, 부산의 한진중공업에서는 노조위원장 김주익이 자살했다. “나의 무덤은 85호크레인이다. 너희들이 내 목숨을 달라고 하면 기꺼이 바치겠다.”고 했던 김주익은 크레인 난간에 목을 매어 최후의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대답은 공권력 투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맑고 구름 없는 밤이구나. 내일 모레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월이 다 되어 가는데..... 회사는 교섭 한번 하지 않고 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조합에 협조적인 조합원의 씨를 말리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노동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 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십 몇 만원, 근속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 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힐리스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김주익의 ‘유서’ 중에서)

그는 집에 가면, 생일날 사주겠다고 약속한 '힐리스인지 뭔지' 하는 운동화를 아이들에게 끝내 선물해주지 못하고 갔다. 그가 허공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본 하늘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배달호, 김주익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다. 대구에서는 노조탄압과 구사대의 폭력에 항의하며 싸우던 세원테크 노조지회장 이해남이 분신했다. 그가 남긴 종언도 다를 바 없었다. "나의 가족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노동탄압 하는 기업의 종말이 어떠한지를 보여줘야겠다."

죽음의 행렬은 연이어 이어졌다. 두 사람의 농민이 여의도 농민대회에서 경찰에게 맞아 죽었다. 스무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분신, 자결했고 구사대와 경찰폭력으로 희생당했다. 노무현 정부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응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리해고법은 물론 파견법 등의 비정규직을 법제화했다. 특히 노동시장유연화는 노무현 정부 때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보수정권 재집권에 성공한 이명박은 사실 잃어버린 게 없었다. 이미 보수세력들이 하고 싶은 반노동정책과 사회양극화의 기반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10년 동안 거의 완전히 닦아 놓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강남역 철탑에는 해고노동자가 있다

한국은 세계 경제규모 12위, 국민소득 30위권을 자랑하는 경제대국이다. 2003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2000달러로 세계 49위였는데, 2019년 3월에 이르러 3만 달러를 넘어 세계 30위권으로 진입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국가는 전 세계에도 많지 않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한국뿐이다. 1963년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00달러였던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었으니,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소득은 무려 300배나 늘어났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의 삶은 10년, 20년 전에 비해서 얼마나 부유해지고 행복해졌는가? 전혀 실감할 수 없다. 아니, 더 살아가기 어렵고 힘들다. 도대체 왜 그럴까?

1998년 IMF를 기점으로 자본과 정권이 끊임없는 경제공포를 심어주면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을 극단적으로 심화시켜왔다. 재벌이 주도하는 수출경제는 한국경제 전체를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 속에 가두었다. 재벌에 의한 자국민의 노동착취, 재벌을 위한 중소하청업체 약탈경제, 그리고 정경유착의 부조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1%의 부자들이 모든 부를 독차지했다. 도시가구 노동자 1인의 월평균소득이 560만 원이라는데, 실제 고소득 중산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즉 99%의 서민과 노동자, 농민들은 사회구성원으로서 공정한 분배를 받지 못했다. 결국 2000만 노동자 중에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토록 20여 년의 세월동안 망가진 노동자의 삶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난 6월 10일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강남역 사거리, 20미터 높이의 교통관제용 철탑 위에 한 사람의 노동자가 올라갔다. 24년 전에 삼성에서 해고된 김용희 씨다. 그가 고공농성에 들어간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나도 억울하게 부당해고를 당했으니 복직시켜달라는 것이다. 그는 고공에서 55일간 단식을 했다. 물까지 끊어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살아서 싸우겠다고 단식은 풀었지만, 고공에 오른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그가 내건 현수막에는 ‘국정농단 범죄자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적혀 있다. 9월에 새로 매단 글귀는 ‘무노조경영 80년 삼성에서 노조하자’라고 썼다. 복직보다 중요한 그의 마음은 어쩌면 이 두 가지 요구에 담겨있을 것이다. ‘범죄자와 노조’, 즉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 처벌과 노동조합활동 보장이 핵심이다. 그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절대 내려갈 수 없다고 한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8년 2월 26일, 김용희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1982년, 삼성항공 창원1공장에 입사한 그는 1984년에 삼성시계로 전보발령 되었다. 삼성시계에서 노사협의회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인권유린과 납치, 감금, 성폭행 조작, 간첩혐의, 해고, 구속 등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들을 당했다. 단지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사측은 그를 탄압했다. 괴롭힘을 못이긴 그는 사원아파트에서 극약을 마셨다가 3일 만에 의식을 찾아 깨어나기도 했다. 1990년 8월, 김용희씨는 삼성그룹 경남지역 노조설립준비위원장에 추대되어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해나갔다. 그러자 회사는 그에게 노조설립준비 포기를 강요하며 호텔방에 감금했다. 부모님 자택까지 찾아가서 자식을 설득하라고도 회유했다. 그는 15일 간의 감금 끝에 회사에 돌아가 전 사원들에게 회사의 납치, 공갈, 협박, 회유를 폭로하였다. 이에 회사는 어처구니없는 음모와 조작으로 그를 해고했다. 20세 여사원이 노사협의회에 성폭력 상담 요청을 하러 왔는데, 모 부장이 하계휴양소 사전답사를 한다고 하여 따라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는 노사협의회에서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성추행범으로 고소되었다. 그는 사복경찰에게 강제 연행되었다. 회사는 그가 경찰에 연행된 당일, 사내 게시판에 그를 성추행범으로 몰아 해고를 공고했다. 여사원이 피해상담 한 날을 오히려 김용희씨가 성추행 한 날로 조작하여 해고한 것이다.

누명을 쓰고 해고된 그는 출근투쟁과 해고복직투쟁을 벌여나갔다. 해고 3개월, 무엇보다도 그의 아버지는 사측의 지속적인 공갈에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돌연 ‘자식을 가슴에 묻을 수 없다’는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 회사가 아들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불안이 ‘부모로서 자식을 먼저 보낼 수 없다’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아버지는 영영 행방불명이 되었다. 사측의 마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김용희씨의 가족과 가정을 철저히 파괴했다. 그의 아내는 회사의 인사과 부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창원시 장복산 기슭으로 끌려갔다. 아내를 강제로 끌고 간 사람은 창원경찰서 기동대 소속 경찰이었다. 아내는 경찰관에게 성폭행을 당하던 중, 마침 야간방범 순찰차에 발각되었다. 성폭행을 자행한 경찰은 회사의 사주를 받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가해자 경찰의 직속상관이 찾아와 천만 원에 합의하고 사건을 없던 걸로 무마를 종용했다.

그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악마 삼성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1994년 1월, 해고무효소송 상고심 결심공판 15일을 앞두고 삼성 비서실과 사측 임원이 그에게 찾아왔다. “상고취하서를 작성해주면 계열사에 1년만 근무하다 원직에 복직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복직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복직합의서를 작성하고 대법원에 상고포기서를 제출했다. 그리하여 삼성건설(삼성물산 건설지부 러시아 스몰롄스키 지부)로 발령을 받았다. 러시아 건설현장으로 간 그는 그곳에서도 노조포기각서를 강요받았다. 그가 말을 듣지 않자 사측에서는 그의 손과 발을 포승줄로 5시간 동안 묶어놓았다. 그의 가방을 부수고 복직합의서를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그를 간첩으로 러시아 대사관에 고발하였다. 그는 공안담당 부서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으로 풀려났다. 러시아에서 그런 악행을 당하면서도 그는 ‘1년 후 복직 약속’만을 믿었다. 하지만 국내에 돌아온 그는 복직할 수 없었다. 회사는 해고통보도 없이 그의 출근을 가로막았다. 그는 삼성본관 앞에서 계열사 복직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다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되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대통령은 김용희씨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김용희씨의 해고과정에는 기가 막힌 일이 있다. 여사원 성추행으로 징계해고를 당한 그는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벌였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진술서를 작성해주었다. 그래서 김용희씨는 법원의 판단을 기대했으나 항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의 진술서는 법원에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당시 소송대리를 맡은 변호사는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었다. 문재인 변호사는 왜 피해자가 자필로 직접 쓴 공증확인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을까? 재판결과를 판가름할 결정적 증거를 소송담당 변호사가 내지 않았다는 건 단순한 실수라고 할 수 없는 문제다.

법원은 '원고는 원고에 대한 해고원인이 된 위 성추행 사건이 피고 회사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문재인 변호사의 사무장은 김용희씨에게 술을 사주면서 사과하고 공증서를 그에게 돌려줬다고 한다. 대법원에 상고하고 공증서를 제출하면 100% 승소할 수 있으니 ‘직접하라’고 했다. 2017년, 김용희씨는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봉고차에 현수막을 걸고 다니면서 문재인 후보에게 묻는다. “문재인 후보는 삼성 앞에 떳떳하십니까?”

그는 올해 60세가 되었다. 7월 10은 그의 정년일이었다. 그의 꿈은 정년이 되기 전에 기필코 복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년일도 두 달이 지나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용희씨의 해고경위와 해고무효소송 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의 고공농성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의 복직문제는 정치적 해결이 필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김용희씨 고공투쟁의 배경에는 ‘재벌기업 삼성의 무노조경영 80년’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이 노조설립을 막는 과정에서 수많은 범죄행위를 저질렀지만 국가는 그 어떤 처벌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김용희씨는 삼성재벌과 한편이 된 국가폭력에 맞서고 있는 중이다. 강남역에서 김용희씨의 고공 공조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삼성중공업 해고자 이재용씨(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과 동명이인)의 사례도 김용희씨와 마찬가지다. 납치, 테러, 성폭행 조작, 간첩혐의 등 해고된 과정이 똑같다. 이재용씨은 대공분실에 무려 열한 번이나 끌려갔다고 한다.

이들이 삼성에서 해고된 지가 오래되었다고 과거의 일로 묻어버릴 순 없다. 삼성해고자 문제를 해결하여 ‘무노조 삼성’에 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삼성의 죄악은 되풀이된다.

삼성의 노조탄압, 인권침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와해 재판에서 보듯이 삼성그룹은 경영진 차원에서 노조파괴에 긴밀히 개입했음이 드러났다. 삼성은 국내를 넘어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현지 공장에서도 노조파괴를 자행하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이것이 세계일류 ‘노동탄압기업’ 삼성의 민낯이다.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 평생 존중받지 못한 노동자가 고공에서 근육이 마른 채 죽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은 대화조차 응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용희씨가 땅으로 내려올 수 있는 방안을 누가 마련해야 하는가? 삼성의 노동범죄를 방관한 책임이 가장 큰 정부가 나서서 중재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마땅한 일이다. 만일 삼성이 해고자복직을 거부하고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삼성은 기업으로서의 존재가치가 없다. 삼성의 불법을 바로잡지 않으면 삼성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기업이 될 수 없다.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은 성장하고 발전한다. 노동자들에게 분노와 고통을 안겨주는 기업이 어찌 미래가 있겠는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본과의 무역갈등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삼성과 같은 재벌을 보호하려고 일본을 규탄하는 게 아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식민지 침략기에 저지른 노동착취, 인권유린, 전쟁범죄, 징용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면 삼성의 사과와 반성에도 시효가 있을 수 없다. 삼성도 잘못한 부분을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경제보복으로 아베 규탄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한국의 재벌개혁이다. 삼성이 국민들로부터 진정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인간적인 기업’ ‘노동자를 존중하는 기업’ ‘노조를 인정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자격이 있다. 노동자에게 해고폭력을 휘두르는 뻔뻔한 기업이 어떻게 세계일류가 될 수 있겠는가?

ⓒ프레시안(최형락)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를 보라. 이런저런 의혹을 이야기하고 해명과 사과, 볼썽사나운 충돌이 난무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삼성 재벌비리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검찰개혁은 권력투쟁의 문제이기에 여야 자기네끼리 싸운다. 하지만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검찰개혁보다도 앞선 중요한 과제다. 그동안 정부와 국가기관, 사법부는 노동자의 편이 아니었다.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항상 자본가와 한 몸이었다. 개혁과 진보의 가치를 문재인 정부가 실현하고자 한다면 최고의 행정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엄청난 태풍이 휘몰아친 주말이었다. 철탑이 흔들렸다. 김용희씨는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라고 했다. 그 위험한 태풍과 폭우를 맞으며 그는 삼성자본과 문재인 정부를 향해, 그리고 국민들을 향해 눈물어린 호소를 하고 있다. 다리를 뻗고 누울 수도 없는 곳, 1미터도 안 되는 비좁은 곳, 머리와 다리가 밖으로 삐져나오는 곳, 단 하루라도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곳! 고공농성 사상 역대 최악의 하늘감옥에서 한 노동자가 외로운 목숨을 걸고 이렇게 말한다.

"사과문, 합의서 살아서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요. 왜 이렇게 노동자가 철탑 위에 올라가서 농성을 하는지 먼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삼성이 대한민국 경제를 먹여살린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고통지도 없이 이렇게 길바닥에다 내쫓아 놓습니까? 24년 제 인생은 뭔데요? 서른두 살에 해고됐다가 지금 나이가 육십 됐습니다. 과거 제가 이런 일 때문에 결국은 삼성에서 노조도 만들지 못하고 해고되어 노조도 없이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다가 세상 사람들한테 알리려고 결국은 여기 올라오게 된 겁니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고 다치고 그럽니까. 우리 국민들이 정말 노동자의 생명에 대해서 좀 더 가슴 아파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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