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의 한 재개발구역 내 부동산, 재산분할을 위한 감정평가를 진행하는 중에 드는 단상.
재개발구역이 대체로 그렇듯이 여기는 서울에서 집값이 제일 싼 동네였다. 15평 아파트 가격이 1억 초중반에서 왔다갔다 한다. 주변에 지하철역이 생기고 빈 땅들이 조금씩 아파트로 변해가더니, 급기야 달동네는 재개발구역이 됐다.
재개발구역의 종전자산(헌집) 가격은 1억5000만 원이다. 내 집 권리를 이만큼 인정해준다는 뜻이다. 조합원이 되면 34평 새 아파트를 5억5000만 원에 받게 해준단다. 결국 헌집(종전자산) 가격 빼고 4억 원을 더 내야 새집을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합원이 아닐 때는 일반분양을 받으려면 7억 원을 넘게 줘야한다니, 4억 원을 더 내더라도 1억5000만 원 가까운 이익이 생긴다. 앞으로 집값은 일반 분양가보다 더 올라가서 10억 원을 넘기리라 한다. 1억5000짜리 집 소유자가 재개발로 인하여 10억 아파트 주인으로 변신하는 마법이다.
재개발사업의 함정
1억5000 전후의 주택에 살던 사람들은 보통 4억 원의 추가분담금을 낼 여력이 안 된다. 제아무리 곧 10억이 되고 20억이 될 것이라고 속삭여봤자, 원금은커녕 이자도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원주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추가분담금 4억은 어떻게 나오는 건가? 재개발조합사업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설비용이다. 건설비용은 시공을 담당하는 대형건설사가 거의 결정한다. 대형건설사가 정하는 건설비용이 적정한지 조합원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조합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조합원 몫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의 일반분양가를 최대한 높여 조합원의 부담을 낮추되, 건설사의 인지도와 마케팅 능력을 이용하여 분양이 잘되게 하는 것이다. 일반분양자들 또한 분양가가 적정한지 알 방법이 없긴 마찬가지다. 그저 7억에 분양받으면 10억이 된다는 기대를 믿고 산다.
추가분담금을 낼 여력이 안 되는 조합원들은 프리미엄이 붙기를 기다렸다가 오른 가격에 매도하고 동네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주변의 부동산은 재개발사업으로 모두 올랐다. 프리미엄을 붙여 매도한 돈으로도 갈 곳이 없게 되니 더 변두리 지역으로 밀려난다.
결국 재개발사업은 1억5000이 10억이 되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라, 1억5000짜리가 3억이 되었으나, 3억으로는 갈 곳이 없어지는 마법이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동네 사람들은 갈 곳을 잃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프리미엄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위해 부동산가격이 오르기를 바란다. 재개발구역의 가난한 집주인은 부동산 부자들, 건설자본과 한편이 되어 부동산투자를 규제하고 건설경기를 죽이는 정부를 비난한다. 그래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렇게 많은 물량의 분양이 쏟아지나보다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그냥 1억5000 짜리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5000쯤 들여서 적당히 살만한 집으로 고쳐서 살았으면 좋겠다. 집을 고치는데 들어간 비용이 얼마인지나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1억5천이 10억이 되는 마법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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