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사업지 보상을 위한 감정평가 시 감정평가사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이 있다. '개발이익 배제 원칙'이다.
우리 헌법23조는 국민의 재산권은 보호하되, 공익상 필요성이 큰 경우에 한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강제 수용할 수 있으며, 이 때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정당한 보상'은 시가보상을 하되, 해당 공익사업으로 인하여 발생한 개발이익은 배제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A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고 나면 개발 기대 심리로 인하여 시세가 크게 상승하는데, A신도시 개발로 인해 오른 시세 부분은 배제하고 보상금액을 산정한다는 것이 개발이익배제 원칙이다.
개발이익배제 원칙은 사업이 갖고 있는 공공성 측면에서 당위성을 갖는다. 그러나 리조트 개발 사업, 골프장 건설 사업부터 주택 건설 사업 같은 온갖 개발 사업이 과연 주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을 정도로 공공성이 큰 사업인지, 공공성을 판단하는 절차가 실효성 있게 마련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당국의 무분별한 강제수용권 발동으로 인해 원주민은 개발이익은커녕 내쫓기기만 하고, 오히려 개발업자나 사업자에게 모든 개발이익이 이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지난 7월부터 개정된 토지보상법이 시행되고 있다. 국토부 산하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권한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공익성 검증이 강화되었다(강제적 토지 수용 '공익성 검증' 강화. 7.2 <한겨레>). 그런데 수용 당사자인 주민들을 절차에서 배제한 채 국토부 산하 기관인 중토위 권한 강화만으로 공익성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지난 5월 14일 경실련 발표에 따르면 판교 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공공사업자가 무려 6조 원이 넘는 폭리를 취하였다고 한다. 개발이익 배제 원칙은 국민들 땅 뺏을 때만 적용되는 원칙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대규모 보상금이 풀리면 그 돈은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가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강제 수용하여 조성된 택지 등을 민간 사업자가 분양받아 높은 분양가로 분양하여 자기들의 잇속을 채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과도한 분양가 상승을 막기 위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조차도 시행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
도시재생사업과 개발이익
일괄 수용 보상, 전면 철거 후 개발과 같은 대규모 개발 방식이 갖고 있는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하는 새로운 방식, 대안으로서 문재인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방식이 바로 도시재생뉴딜사업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재생사업지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개발이익 문제다. 재생사업지로 선정되어 예산이 투입되면 어떤 형태로든 동네가 좋아지고, 그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부동산가격이 오르면 임대료가 오르고, 투자자(투기꾼)도 모여들고, 터 잡고 살던 사람들은 떠나게 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난다.
재생사업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개발이익은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부동산 소유자에게 모두 귀속된다. 예산 투입해서 땅값과 임대료를 올려주겠다는데 어떤 소유자가 자신의 부동산을 불쌍한 세입자를 위해, 또는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내어놓겠는가. 팔려고 내놓은 지 3년이 넘었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팔기 싫어지고 가격을 올리는 게 인간의 심리다. '한 번에 쫓아내면 재개발, 한명씩 쫒아내면 도시재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개발이익에 환수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사업은 부동산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어야...
개발이든 재생이든 공공 인프라의 구축과 토지의 집약적 이용은 필연적으로 개발이익을 가져온다. 개발이익의 공공 영역 환수가 바로 부동산의 공공성과 사유재산권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개발이익 환수를 통하여 공익과 사익을 조정하지 못한다면 개발과 재생은 필연적으로 자본과 투기꾼의 먹잇감이 된다.
개발독재시대부터 각종 개발 사업으로 내쫓고, 부수고, 지어대면서 소수의 자본으로 엄청난 부의 이전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도시재생은 부동산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패러다임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되어야한다. 도시재생사업 성공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사업지를 늘리고 속도를 높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탄탄한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고, 부작용을 점검해가며 한발 한발 가야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사업지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개발이익환수 문제에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이미 현장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
재생사업지의 경우 상가임대차보호법,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 보호 방안을 특례 규정으로 두어 강화하여 적용한다든지, 퇴거보상금 규정을 마련한다든지, 재생사업지 지정 이후에 투기목적으로 유입되는 부동산 매수자에게는 공시지가가 아니라 매수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강력한 보유세를 부과한다든지, 사유재산을 공공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하되 재산권 행사에 일정한 제한을 두는 등의 방안을 제안한다.
부동산 소유자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 예산이 투입되어 동네가 좋아지는 만큼 재산권 행사에도 제한이 따라야한다는 뜻이다. 또한 정부는 무엇보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실무자들의 비판을 경청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해야한다.
도시재생사업은 터 잡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사업,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 우리 동네에 대한 자긍심을 살리는 사업, 유능한 청년들이 유입되는 활력 넘치는 동네를 만드는 사업, 살고 있는 주민 간 소통과 협력, 공생을 통해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사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역의 특성과 주민 역량에 따른 다양성을 인정하고, 충분한 기간 시행착오를 통해 주민들의 내재적 힘이 발현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하고, 투기꾼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야할 것이다.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보여주기 식으로 문재인 정부의 치적을 삼을 욕심을 내기보다는, 토지공개념과 부동산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추로서, 장기적인 안목과 긴 호흡을 갖고 접근하기를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