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대표에 앞서 박인숙 의원 등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해 삭발을 했지만, 제1야당 대표가 직접 머리를 깎는 행동에 나서면서 조 장관 거취를 놓고 벌이는 여야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국회의원들이 삭발로 저항 의지를 표한 적은 있지만, 공당의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의 장관 임명에 반발해 삭발을 단행한 일은 헌정 사상 처음이어서 무리한 정치투쟁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황교안 "내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
이날 황 대표가 삭발식을 진행한 장소는 문재인 대통령의 집무실 코 앞에 위치한 청와대 분수대다.
황 대표의 삭발식 이전 한국기독교총연합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문재인 하야 국민운동본부'의 집회가 열렸다. 집회가 끝난 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보수 지지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황 대표의 삭발식을 지켜봤다.
오후 5시 경, 지지자들의 행렬을 뚫고 광장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황 대표가 착석하자 200여 명의 지지자들이 황 대표의 이름을 연호했다.
분위기는 장례식을 방불케 했다. 한국당 의원들 50여 명은 근조 모양이 새겨진 '자유 대한민국은 죽었습니다'라는 문구와 '위선자 조국 파면하라'는 문구가 담긴 손피켓을 들고 황 대표의 삭발을 지켜봤다.
미용사는 이른바 '바리깡'으로 황 대표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기 시작했고, 황 대표는 처연한 표정으로 잘려나간 자신의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기도 했다. 머리카락이 다 잘려나가자 한국당 지지자들은 황 대표의 이름을 다시 연호했다.
삭발을 마친 후 황 대표는 "저는 오늘 제1야당의 대표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의 항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과 조국의 사법유린 폭거가 더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범죄자 조국은 자신과 일가의 비리, 그리고 이 정권의 권력형 게이트를 벗기 위해서 사법농단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고한다. 더이상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마라"며 "조국에게 마지막 통첩을 보낸다. 스스로 그 자리에 내려와라. 내려와서 검찰의 수사를 받으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는 저의 투쟁을 결단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지금은 싸우는 길이 이기는 길"이라며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막아내려면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싸워주셔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저 황교안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지키기위해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대표의 삭발식 현장에는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모습을 보였다. 강 수석은 삭발을 만류하는 문 대통령의 뜻을 전했으나 황 대표가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삭발식 뒤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오후 수석·보좌관 회의가 끝나자마자 강기정 정무수석을 불러 황 대표 삭발과 관련해 염려와 걱정의 말씀을 전달했고, 강 수석이 황 대표를 만나 이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고 대변인은 "강 수석은 황 대표에게 "삭발을 재고해 달라는 의견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다목적 포석 깔린 황교안 '삭발 투쟁'
황 대표가 직접 극한적 대여 투쟁 방식인 삭발까지 해가며 강공 드라이브를 건 배경에는 조국 장관에 대한 거취 문제를 고리로 반(反) 문재인 정부 투쟁의 주도권을 잡아가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추석 연휴를 거친 뒤에도 문 대통령의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한 반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았다고 판단, 장기전을 각오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조국 장관에 대한 검증 국면에서 한국당 지도부가 오락가락한 전술 구사로 임명 저지에 실패했다는 당내 비판론을 봉합하는 한편, '반(反) 조국 연대'를 디딤돌로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과 보수 통합 분위기를 구축하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황 대표가 이처럼 '반조국 전면전'을 선택함으로써 한국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조 장관 공격에 화력을 집중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은 이날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정기국회 의사일정 등을 논의했으나 '조국 문제'에 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진척을 보지 못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교섭단체 대표연설 시 조 장관의 본회의장 출석을 거부하며 공동 전선을 폈다.
한국당은 조 장관을 장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그를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라고 부른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조 전 수석이 출석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피의자 장관을 (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가세했다.
이 문제로 실랑이를 벌인 끝에 여야는 정기국회 일정 조정 합의에 실패, 17일로 예정됐던 교섭단체 대표연설부터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정기국회를 시작하면 조국 국정감사부터 해서 '조국 문제'를 바로잡는데 온 힘을 다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추석 연휴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이 늘어난 여론조사 결과를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하며 "여론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고 노골적으로 지지를 철회중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1야당 대표가 삭발? 금태섭 "한국당 내부 사정 때문"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가 원내외에서 '반(反) 조국 투쟁'에 의지를 보였으나, 황 대표의 삭발에 대해선 정치권에서 곱지 않은 시각이 나온다.
대안정치연대 소속 박지원 의원은 이날 황 대표의 삭발 소식에 "충정은 이해하지만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박 의원은 "21세기 국민들은 구태 정치보다는 새로운 정치를 바란다"며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 장소인 국회에서 조국 사태, 민생 경제, 청년 실업, 외교, 대북 문제 등을 추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제1야당의 모습을 원한다"고 했다.
또한 "특히 한국당에서 윤석열 검찰 총장을 칭찬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나타나기에 조용히 검찰수사를 기다리고 패스트트랙 수사에도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사청문회 당시 조 장관에게 '쓴소리'를 했던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도 이날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조국 장관에 대해 지지하는 분도 있고 비판적인 분이 있지만 이 문제는 이 문제대로 논의하고 민생은 민생대로 논의를 해야 한다. 여기서 삭발하는 건 국회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금 의원은 "야당 대표가 삭발을 하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나오는 건 밖에서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같은 분들이 '조국 장관을 낙마시키지 못하면 당 지도부는 그만둬라' 이런 식의 공격을 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다 보니 한국당 내부적 사정, 개인적인 공천 문제 이런 것 때문에 삭발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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