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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넘어간 정부의 대학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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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넘어간 정부의 대학정책

[기고] 문재인 정부의 '대학정책' 유감

임기 절반을 넘어선 문재인 정부의 개혁 성적표는 어떠한가? 지난 대선 그를 지지했는가의 여부를 떠나 드러난 결과가 기대와 공약에 한참 못 미치는 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학교 현장에 있는 필자로서는 특히 교육은 방기했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 이해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상급식과 혁신학교를 추진하여 '혁신교육의 선도자'로 존경받던 분이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교육부총리가 되었고, 2018년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는 무려 17개 시도 중 14곳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으며, 교육에 대한 비전과 중장기 정책 수립을 위해 '국가교육회의'가 야심차게 출범한 것이 벌써 2년이 흘렀다. 하지만 한껏 기대를 모았던 초대 교육부총리는 대학 입시를 비롯하여 아무런 개혁조치도 없이 중도하차하였고, 국민적 공론을 모아 교육의 백년대계를 쌓게 타던 '국가교육위원회'는 오리무중이다.

규제와 자율 사이에서 길을 잃다

더욱 가관인 것은 문재인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 구체적으로는 대학의 구조조정 정책이다.

지난 8월6일 교육부는 '인구구조 변화와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대학혁신 지원 방안'(이하 '대학혁신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혁신'과 '지원'은 없고 '자율'의 명분 아래 국가의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내팽개치고 아예 그 권한을 시장에 넘겨주고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적지 않은 국민들도 저출산의 여파로 당장 내년(2020년)부터 대입정원과 고교졸업자 수의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2024년에는 올해 입학정원 대비 12만 4천명의 입학생이 부족해져 지방대․전문대부터 심각한 운영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그림 1>참조). 사실 이러한 통계와 대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대학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교육의 질 제고 및 학령인구 급감 대비를 위한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2014.1.28.)이었다. 당시 교육부는 구조개혁 기간('14~'22)을 3주기로 나누어 주기마다 모든 대학을 평가하고 평가등급에 따라 최우수 등급을 받은 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 대해 차등적으로 정원 감축을 단행할 것임을 밝혔다(<표 1>참조).


당시의 발표가 놀라웠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채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무려 당시 입학 정원의 28.5%에 해당되는 16만 명을 줄이겠다는 감축의 방대한 규모였고, 다른 하나는 평가의 결과가 국가장학금은 물론이고 정부의 재정지원사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 그 어떤 대학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교육부의 시퍼런 서슬과 재정지원이라는 당근 앞에서 대학은 앞 다투어 비인기 학과의 폐과와 통합을 단행하였고 1주기 감축 인원은 대부분 지방대에 집중되기는 하였지만 그 목표(4만)를 넘어 4만 4천명에 달하였다.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 정책은 이처럼 철저하게 정부주도·전문가중심의 규제정책이었다. 촛불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대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통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감축 규모를 완화하며 대학의 자율발전을 지원하도록 대학평가의 방향을 전환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최종안이라 할 수 있는 이번 '대학혁신방안'에서는 "정부가 더 이상 인위적인 감축을 하지 않고 대학의 자체계획에 따라 적정규모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대학이 스스로 진단 참여 여부에 대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하였다. 이는 실로 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 궁극적으로는 시장 논리에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교육부장관인 유은혜 장관이 국회의원이었던 시절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1주기 감축의 결과는 '지방대 죽이고 서울은 살렸다'로 요약할 수 있고, 실제로 지방과 수도권의 감축 비율은 77:23에 달했기 때문이다(<충북일보>.2016.09.18.). 이는 한 마디로 시장주도·수도권중심의 방임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해법은 사회적 대화를 통한 교육협약의 체결이다

통계가 현실이 된다면 불과 5년 뒤에는 323개 대학(187개 일반대학과 136개 전문대학)에서 12만 4천명의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할 것이다. 그 규모는 2018년 현재 대학의 평균 입학정원(485,792명)을 기준으로 할 때, 대학마다 평균 1,459명의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를 완전히 시장논리에 맡겨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역적으로는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즉 영호남에서 시작된 대학 폐교 사태가 중부권으로 확산될 것이며, 전문대를 필두로 지방사립대가 초토화될 것이 뻔하다. 이는 단순히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위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부실대학으로 낙인찍혀 폐교된 서남대학교의 입학 정원이 2016년 기준 658명에 그쳤음에도 남원이라는 중소도시에 막대한 경제사회적 타격을 미쳤음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다시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 주도의 획일적인 감축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율과 다원성의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대학혁신방안'처럼 강 건너 불 보듯 뒷손지고 구경하는 것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지방대학의 생존과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위해 정치권의 로비를 통한 구명에 매달리는 것은 사후적인 처방이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회적 합의기구로써 '대학개혁위원회(가칭)'를 만드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와 마찬가지로 '대학개혁위원회'는 교육부, 대학교육협의회, 전국대학교수협의회, 전국대학노동조합, 국공립대총장협의회, 사립대학총장협의회와 같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한다. 여기에서는 단순히 입학정원 감축을 넘어서 대학의 비전과 역할, 구조개혁의 방향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물론 핵심 의제는 이해당사자들의 자율적 합의로 수도권과 지방, 국립대와 사립대,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입학정원 감축 규모와 일정을 담은 교육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물론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객관적 사실 앞에서 대학의 운영은 보다 효율적이고 투명하며, 창의적이어야 하는 것은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대학교가 너무 많아 확 줄여야 한다는 일반 국민들의 인상주의적 비평이나 대학 자신의 절박한 생존 논리 속에서 교육부의 일방적 정책만이 질주하여 왔다. 문재인 정부는 향후 국정운영의 비전을 '혁신적 포용국가'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혁신적 포용국가'가 발전국가나 신자유주의 국가와 달리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당연히 사회적 대화와 협약이다.

이번 조국사태에서 나타났듯이 문재인 정부의 약한 고리는 '교육'이다. 특히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국공립 통합네트워크, 공영형 사립대 등의 공약은 한 발도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당장 백억도 안 되는 공영형 사립대의 시범사업을 위한 내년도 예산은 기재부의 반대로 전액 삭감되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고등교육을 비롯하여 교육 정책 전반의 점검과 가속이 시급하다. 그 첫 단추는 대학의 구조개혁을 정부주도의 규제도 아니고 시장중심의 방임도 아닌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만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 독일의 바흐텔스바흐 협약(1976)이나 스웨덴의 잘츠요바덴 협약(1938)같은 실질적이고 성공적인 사회적 합의 모델의 구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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