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664명이 정부에 기후위기 적극 대응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정부가 현 상황이 '기후위기'임을 대내외에 선포하고 이에 적극 대응할 특별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이들은 밝혔다.
9일 원로 지식인과 연구자 등 664명이 발표한 '기후위기 선포를 촉구하는 지식인·연구자 선언문'에는 우희종 서울대 교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등 관련 분야 지식인과 손호철 전 서강대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등 원로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이어지는 기후행동의 현 상황을 거론하며 "일상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을 체험할 수 있을 만큼 지구의 기후가 급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는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기후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후위기가 초래한 "가뭄과 사막화, 토지 이용방식의 변화는 식량 생산의 감소를 야기할 것"이며 그로 인한 "식량 가격 상승은 가난한 지역과 계층에 식량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기후위기는 "물 공급과 사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현 상황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총체적 위기로 규정했다.
이들은 이같은 위기로 인해 "올해 들어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프랑스 등이 앞장서 기후위기 또는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선거에서 기후변화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그린 뉴딜과 같은 전향적 정책들이 제안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은 "한참 뒤처져 있다"고 진단한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탈핵·에너지전환으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돌린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기후위기 현실에 비춰보면 전환의 속도는 느리고 포괄 범위도 제한적"이라고 개탄했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 43.1%이던 석탄발전 비중을 2030년 36.1%로 낮추고, 미세먼지 배출은 2030년까지 62%로, 온실가스는 배출전망치(BAU) 대비 26%를 감축키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탈핵·에너지전환 추진력이 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특히)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전환의 의지 자체를 의심할 수준"이라며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기후악당국가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후변화 대책의 사각지대가 곳곳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통합적인 기후위기 대응방안은 보이지 않는다"며 "어느 때보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확한 인식, 기후변화 및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후위기 대응은 새로운 기술적 해결책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정책으로 국한할 수 없으며, 핵발전의 유혹에 흔들려서는 더더욱 안 된다"며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변화를 사회적으로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시점이 늦어질수록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 예산은 더 빠르게 줄어들고, 기후위기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1.5~2℃ 상승 억제는 요원해질 것"이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몇 년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오는 21일 전 지구적 기후 파업 일환으로 국내에서도 오후 3시 대학로에서 열릴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정부를 향해 구체적으로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실시하고 온실가스 배출 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기후정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포괄적으로 재검토하며 △신속한 탈핵·에너지전환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국가 특별기구를 설치하고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선언문 전문.
기후위기 선포를 촉구하는 지식인·연구자 선언
지구의 미래를 위한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과 5월, 전세계 수백개의 도시에서 청소년들이 앞장 선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School Strike for Climate)에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동참했다. 화석연료 사용의 신속한 중단을 요구하며 점거 시위를 펼치는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과 토지의 종말(Ende Gelaende) 운동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전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기후행동 정상회의'(Climate Action Summit)가 열리는 기간에 맞춰 펼쳐질 전지구적인 기후 파업에서 다시 한번 분출될 것이다.
기후행동이 세계 각지에서 지지를 받는 까닭은 무엇보다 일상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을 체험할 수 있을 만큼 지구의 기후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폭염이 더 자주, 더 오랫동안, 더 많은 곳을 강타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폭우, 폭설, 가뭄, 홍수, 한파 소식 또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급변하는 기후로 인해 수십년 내 전세계의 주요 도시가 인간의 생존이 어려운 곳으로 변할 수 있다는 암울한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기후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아가 기후위기가 다차원적인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단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사막화, 토지 이용방식의 변화는 식량 생산의 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식량 생산 감소로 인한 식량 가격의 상승은 가난한 지역과 계층의 식량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또한 기후위기와 식량위기는 물 공급과 사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에너지위기이자 식량위기, 나아가 물위기를 포함하는 총체적인 위기의 징후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2019년 들어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프랑스 등이 앞장서 기후위기 또는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방정부로 내려오면, 세계 각지에서 수백 곳 이상의 지방정부가 기후위기 비상 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선거에서 기후변화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그린 뉴딜(green new deal)과 같은 전향적인 정책들이 제안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자원과 역량을 동원해서 2030-2050년 탄소 배출 제로, 신속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 2030-40년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 중단과 같은 장기적인 전환 계획을 수립·실행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한참 뒤쳐져있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에너지전환으로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돌린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기후위기의 현실에 비춰보면 전환의 속도는 느리고 포괄 범위도 제한적이다.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기후악당국가의 불명예를 안고 있으나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많고 폐쇄 계획은 더디다. 도전적인 '탄소 배출 제로' 목표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한국은 아직 국제적으로 매우 불충분한 것으로 평가받는 BAU 대비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에너지전환의 추진력이 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전환의 의지 자체를 의심할 수준이다. 기후변화 대책의 사각지대가 곳곳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통합적인 기후위기 대응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확한 인식, 기후변화 및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후위기 비상 선언과 장기적인 온실가스 배출 제로 계획의 조속한 수립은 기후위기를 헤쳐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기후위기 대응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거나 위험을 새로운 형태로 전가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기후위기 대응의 원칙으로 확립해야한다. 누구도 기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기후위기의 책임과 피해가 동등한 것은 아니다. 기후재난의 피해는 역설적으로 기후위기의 책임이 가장 적은, 가난한 지역과 취약한 계층에 집중되어 이들의 삶의 권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보면, 대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은 점점 더 느는 데 반해 폭염과 같은 기후재난은 야외 노동자나 주거 빈곤층과 같은 취약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국제적 차원과 국내적 차원을 모두 고려해서 기후변화의 책임과 피해 간의 불일치를 교정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나아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나 비용이 특정 지역과 집단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사회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후정의의 문제는 기후위기가 복합적인 사회위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따라서 기후위기는 에너지원의 변화를 넘어서 에너지 다소비적인 산업구조의 변화,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 고용 및 복지 체계의 변화, 사회경제적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등 사회 구조의 변화를 동반할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기후위기 대응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대규모 투자, 녹색 일자리의 창출을 넘어서서 산업구조의 개편, 발전모델의 전환으로 나아가야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새로운 기술적 해결책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정책으로 국한될 수 없으며 핵발전의 유혹에 흔들려서는 더더욱 안된다. 전지구적으로 '기후변화가 아닌 시스템 변화'(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를 곱씹으며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변화를 사회적으로 폭넓게 논의해야한다. 그 시점이 늦어질수록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 예산(carbon budget)은 더 빠르게 줄어들고 기후위기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1.5-2℃ 상승 억제는 요원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몇 년이 채 남지 않았다.
9월 21일, 전지구적 기후 파업의 일환으로 국내에서도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전국 곳곳에서 개최된다. 우리는 기후 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개인을 아우르는 변화가 필요하지만, 정부가 변화를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국제적인 책임을 다하며 국내적으로 정의롭고 신속한 전환을 이끌기를 기대하면서, 전환의 출발점으로 다음의 세가지 사항을 요구한다.
○ 정부는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실시하고 온실가스 배출 제로 계획을 조속히 수립하라.
○ 기후정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포괄적으로 재검토·강화하라.
○ 신속한 탈핵·에너지전환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국가 특별기구를 설치하고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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