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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구가 불타고 있다

[함께 사는 길] '기후악당' 대한민국, 비상행동에 나서야

기후 위기의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 데다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기상 관측 사상 올해 7월은 역대로 가장 더웠던 달로, 지난 4년은 지구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해로 꼽혔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몇 년간 주춤하다 싶더니 2017년엔 다시 상승곡선을 나타냈다. 기후 안정화를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늦어도 2020년 이전부터는 확고한 감소세로 돌아서야 한다고 과학계는 경고했지만, 현실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시베리아를 비롯한 북극권을 강타한 초대형 산불이나 기록적인 그린란드 빙하 감소를 전하는 소식이 매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오늘날 생명을 위협하는 폭염, 대기오염, 식량 위기와 같은 기후변화의 영향은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온도가 1℃ 상승한 결과다.

인류와 생태계 생존의 안전망이었던 기후가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이미 한계를 초과한 상태에서 지구 온난화를 2℃ 또는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뭔가 해볼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1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과연 이번 달 열리게 될 유엔 기후회의가 지지부진했던 '게임'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까.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고 정책 이행을 촉진하려는 목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이 주재하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9월 23일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모든 정부가 내년까지 파리 기후협정 이행을 위해 진전된 기후변화 정책을 제출해야 하는 가운데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각국에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2050년까지 순 제로(0)로 감축하는 수준의 계획을 마련해 이번 달 회의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각국이 기존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너무 소극적이어서 이를 모두 달성하더라도 지구 온도가 3℃ 오를 것이라고 평가됐다.

적극적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과학계의 경고와 시민들의 요구에도,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수수방관하거나 행동을 지체할수록 고통과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한데도 말이다. 아니면, 현재 처한 기후위기를 직면하는 대신 외면하고 침묵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후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과감히 줄여야 하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와 산업 구조를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히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화석연료 산업의 일자리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먹고 소비하고 여행하는 방식의 변화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문제를 방치하다간 훨씬 더 급진적 변화를 맞는 게 불가피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나 국제적 정세의 변화에 의해 강제되기 전에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기후 침묵'의 기류는 이러한 논의 자체를 억눌러왔다.

▲ '기후를 위한 스트라이크'의 청소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9월 23일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 유엔 사무총장의 초청으로 참가한다. 툰베리는 비행기 등 고탄소 이동 대신 바람과 태양광으로 달리는 18미터 크기의 요트를 타고 지난 8월 14일 영국 남부 플리머스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고 있다. 툰베리는 뉴욕 회의 이후 12월 칠레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5)에도 친환경 교통수단을 이용해 참석하려 '지구를 위한 1.5℃ 온난화 제안을 위한 세계적 기후행동'을 촉구할 예정이다. ⓒ그레타 툰베리 페이스북

어린이와 청소년의 외침이 이런 침묵을 깨고 나왔다. 지난해 8월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미온적인 정부의 기후변화 대책에 항의하며 매주 금요일마다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시위를 시작하면서 전 세계 청소년들의 기후 운동을 촉발시켰다. 어떤 이들은 등교 거부 시위를 하는 그레타에게 학교로 돌아가라거나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해 과학자가 돼서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레타는 이렇게 되물었다.

"
왜 더 이상 존재할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할까요, 그 미래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말이에요. 학교 교육 체계 안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바로 그 교육 체계에 있는 최고 수준의 과학에 의해 제공된 가장 중요한 사실조차 정치인과 사회에게 외면받는 상황에서요."

이번 달 유엔 기후 정상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툰베리는 지난달 중순 영국을 떠나 소형 요트를 이용해 대서양을 건넜다. 비행기나 유람선 대신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여행 방식을 위해 바람으로 동력을 얻고 태양광 발전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요트로 2주가 걸리는 대서양 횡단을 한 것이다. 툰베리는 "현재 당면한 기후와 생태적 위기에 대한 각국 지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청소년 수백만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조만간 뉴욕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릴 기후 회의에서 이런 요구에 정부가 어떻게 응답할지 확인하게 될 것"이라며 기후가 빠르게 붕괴하는 상황에서 정치가 과학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툰베리 일행이 탄 요트의 돛에 적힌 기후 정상회의의 테마인 "우리가 이겨야 할 경주(A race we must win)" 그리고 지난 7월 프랑스 의회에서 한 연설 제목이기도 한 "과학으로 단결하자(Unite behind the science)"는 슬로건이 이목을 끌었다.

무거운 침묵은 한국 사회도 강하게 누르고 있다. 한국의 보수적 교육 여건 속에도, 지난 3월 15일과 5월 24일 청소년들이 학교 대신 거리로 나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많은 우리의 미래를 가지고 도박을 하지 말아 달라"며 정부와 어른들의 관심과 행동을 촉구했다. 하지만 책임 있는 정치인 중 누구도 이러한 청소년의 호소에 진정성 있게 응답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이렇게 조용해도 되는 걸까. 한국은 에너지와 곡물 자급률이 각각 6퍼센트와 23퍼센트에 불과한, 에너지와 식량 안보 취약국 아니던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7위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목표 달성은 고사하고 고공행진을 지속 중이다. 지난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 2500만 톤으로, 전년 대비 증가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5억4300만 톤)를 언급하기조차 민망하고 부끄러운 성적표다. 현재도 이런데, 중장기적으로 달성하겠다는 목표 역시 소극적인 바람에 '기후악당' 국가라는 악명까지 얻었다.

불이 난 집에서 앉아있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 '모두의 집'인 지구가 불타고 있는데도 정부 대책은 안일하기만 하다. 비상한 사태에 맞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회적으로 알람을 울릴 때다. 올여름 43도 수준의 폭염에 시달린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18개국의 900여 지자체에서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유다.

기후변화가 문자 그대로 비상사태라면, 기존의 일상 대응이 아닌 비상 대응이 요구된다. 지난 7월, 미국 의회에서는 샌더스 상원의원과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미래 세대를 위한 기후 복원"을 목적으로 한 기후비상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과거 뉴딜이나 2차 세계대전처럼 사회에 커다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적 차원에서 자원과 인력의 대규모 동원이 이뤄진 것처럼, 오늘날 기후변화가 바로 그런 위기라는 것이다. 화석연료와 원전을 에너지 효율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산업과 일자리 구조의 변화를 착수하는 기획과 실행은 공공 부문의 주도가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렵다.


청소년들이 기후 시위에 앞장선 데 이어 어른들도 행동에 동참하겠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기후 정상회의를 맞아 9월 20일부터 27일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글로벌 기후 파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정중한 편지를 보내는 방식만으로는 정부와 정치인의 각성과 행동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9월 21일과 27일 서울 도심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와 행진이 예고돼 있다. 기후위기를 자기의 문제로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는 개인과 단체들이 연대하는 최대 규모의 집회로 기대된다.

이런 요구가 급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현재 직면한 기후위기의 현실 자체가 급진적인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대응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미온적인지에 대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가령, 미세먼지가 '재난'이라면서 올해 정부는 2조 원을 추가경정예산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100일간 열리지 않는 국회에서 미세먼지 저감 추경이 통과되기를 바라면서도, 화석연료 보조금과 유류세 할인 지원에 들어가는 3조 원 이상의 '미세먼지 유발' 예산의 개편에 대해서는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으로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가기구를 출범시켰지만,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유발시키는 경제 구조의 근본적 전환보다는 겨울과 봄철 미세먼지를 잡기 위한 단기 대책만을 궁리하고 있는 형편이다. 당장 눈앞의 미세먼지가 가라앉으면 정부가 '할 일 다 했다'며 구색을 맞추려들지는 않을까. 우리 세금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데 쓰이고 기후 침묵의 정치가 우리를 더욱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툰베리의 이번 미국 방문과 관련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가능성이 있을지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 장면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달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가할지,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툰베리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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