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스라엘의 비호 아래 대담하라, 모사드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스라엘의 비호 아래 대담하라, 모사드여

[서정민의 '인샬라 중동'] 완전(?)범죄, 외교마찰, 그리고 '독특한' 평화론

오랜만에 첩보영화 장면을 한 번 떠올려 볼까 한다.

1월 19일, 예사롭지 않은 눈빛의 한 아랍인이 두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세력 하마스 핵심 간부 마흐무드 알-마부(49)다. 마부는 하마스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의 창설 멤버다. 1989년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해 살해한 사건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집중 감시를 받아 온 인물이다.

그는 가자지구에 무기를 밀반입하기 위해 거래상과 접촉하려고 두바이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바이 입국 당시에도 그는 마흐무드 압둘라우프 무함마드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 빨간 동그라미 속 남자가 이 CCTV 영화의 주인공이다. 두바이 알-부스탄 로타나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는 마흐무드 알-마부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CCTV가 찍어낸 완벽한 첩보영화

이날 오후 3시 20분 마부가 두바이 공항에 내리기 전 다른 일단의 사람들이 두바이에 속속 도착한다. 마무를 살해하기 위해 온 암살단이다. 그들 중 공항대기조는 마부가 공항을 나서자 곧바로 어딘가에 전화한 뒤 미행을 시작한다. 그가 공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알-부스탄 로타나 호텔에 체크인 한 후 객실로 가기 위해 승강기에 올라타자 암살단 중 호텔 정찰조 2명이 테니스복 차림으로 자연스럽게 같은 승강기에 탄다.

마부의 객실이 230호임을 확인한 이들은 맞은편 객실 237호를 예약한다. 마부가 이날 오후 4시 23분 잠시 호텔을 떠나자 건장한 체격의 남자 4명이 230호로 들어가 대기한다. 전자충격 조작으로 카드키를 열었다.

오후 8시 24분 마부가 외출을 마치고 객실로 돌아오자 전기충격기를 들고 있는 남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충격으로 의식을 잃은 마부에게 4명의 남자는 약물을 투여한다. 강력한 근육이완제인 이 약물은 효과가 빨라 마취과 의사나 응급처치 전문의가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베개를 이용해 그를 서서히 질식시킨다. 20분에 걸쳐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그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았다.

이들은 8시 46분 호텔을 떠난다. 그리고 바로 공항으로 향한다. 오후 10시 30분부터 파리, 프랑크푸르트, 홍콩 등으로 향하는 항공기를 타고 두바이를 떠난다. 이들이 두바이를 속속 떠난 지 12시간 이상이 지난 20일 오후 1시 30분 청소를 위해 방문을 연 호텔 직원은 침대 위에서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한 구 발견한다. 후에 현장 조사와 부검을 마친 경찰은 마부가 당시 전혀 저항한 흔적이 없다고 발표한다. 자연사인 것처럼 위장된 것이다.

26명 동원한 '요란한' 암살의 이유는?

이 스토리는 영화가 아니다. 지난 1월 두바이에서 실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정확한 시간이 언급된 것은 마부의 방을 출입하고 또 그를 미행한 사람들을 찍은 CCTV의 녹화 시점에 따른 것이다.

약 한 달 반의 조사를 끝낸 두바이 경찰 당국은 2월 말 살해범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스드의 요원들이라고 밝혔다. "암살범들의 배후에 이스라엘 모사드가 있을 가능성이 99%"라고 두바이 경찰청장은 발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바이 경찰 국이 용의자로 공개 수배한 사람의 수가 26명이며, 이들이 다국적 첩보원들이라는 것이다. 여권 상의 국적을 기준으로 영국인 12명, 아일랜드인 6명, 프랑스인 4명, 호주인 3명, 그리고 독일인 1명이다.

하마스 간부 1명을 살해하는데 왜 무려 26명의 인원을 동원했을까. 대규모 인원을 동원할 경우 보안 유지가 쉽지 않아 수사 기관에 발각될 가능성이 커지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두바이 경찰이 공개한 공항과 호텔 CCTV 화면을 보면 이에 대한 의문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완벽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항 대기조, 호텔 정찰조, 호텔 미행조, 암살 실행조 등으로 나뉘어 각자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토록 했다. 혹시 의심을 살 것에 대비, 호텔에서는 여러 팀의 2인 1조 정찰조가 동원됐다. 남녀 2인 1조의 정찰조도 등장했다.

암살단은 범행이 이뤄진 호텔 외에 마부가 두바이 체류시 자주 이용했던 호텔에도 여러 명의 요원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에 따라 제2, 3의 작전 시나리오까지 준비하며 완전 범죄를 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사드의 이런 완벽주의는 1997년 현 하마스 최고지도자 칼리드 마샬에 대한 암살 작전에서 실패를 경험한 후 더욱 강화됐다. 당시 캐나다 관광객으로 위장한 모사드 요원들은 요르단에 머물고 있던 마슈알에게 접근, 귀에 독극물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살해를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요르단 당국에 체포됐다.

모사드는 그 작전 실패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체포된 요원들의 석방을 위해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돼 있던 팔레스타인 재소자 20명을 석방한 뼈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다.

1973년에도 모사드의 암살 작전이 발각돼 이스라엘은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었다. 노르웨이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모로코 웨이터를 팔레스타인 테러범으로 착각해 살해했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살해한 테러범으로 지목된 인물로 착각한 것이다. 당시 공항으로 이동 중 체포된 모사드 대원의 종이 메모를 바탕으로 노르웨이 당국은 여러 모사드 대원을 체포했고, 이스라엘은 외교적으로 큰 시련을 당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종이가 아니라 전자 장비에 덜미가 잡혔다. 범행을 마치고 곧바로 두바이 공항 등을 통해 해외로 출국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타살 흔적을 남긴데다 모든 동선이 CCTV에 잡혔다. 공항의 CCTV에 담긴 자료를 통해 두바이 당국은 이들 대원들이 유럽 국가와 호주 국민의 명의를 도용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관련국들의 강한 반발로 이스라엘은 '외교적 재앙'에 처하게 됐다. 한 예로 호주는 2월 말 열린 유엔 총회에서 2008~09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교전에 대해 유엔 인권위원회가 제출한 '골드스톤 보고서'를 승인하지 않는 내용의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유엔에서 호주가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수십 년만의 일이었다. 독일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6개 국가도 그동안의 결의안 지지 방침을 철회해 눈길을 끌었다.

이스라엘은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왜 이처럼 무모한 암살 작전을 펼쳤을까. 우방국의 여권을 도용해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면서도 말이다. 이스라엘의 일간지 <하레츠>는 이번 사건이 단순히 하마스와의 전쟁이 아니라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이란과 냉전 중인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이란 간의 고리 역할을 해온 마흐무드 알-마부를 제거함과 동시에 하마스에 대한 무기 지원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이란에 전달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해석이지만 이스라엘 시각일 뿐이다. 국제적인 범죄를 저질러 놓고 중동의 정세를 그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암살 작전의 목적은 크게 둘로 나뉘다. 우선 보복용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나 테러가 발생할 경우 몇 배 이상의 보복을 감행함으로써 두려움과 공포를 팔레스타인이나 아랍에 심어준다는 전술이다.

이보다 더 포괄적인 목표는 긴장고조다. 국제법상 불법적인 점령을 지속하고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평화와 안정이 달성되면 점령의 명분을 상실하게 된다. 일종의 '완충지대'로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점령하고 있다는 주장은 그 근거를 잃게 된다.

때문에 지난 30년 간의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공격과 암살 작전을 분석해보면, 평화 분위기가 지속되지 않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최근에도 하마스와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의 포로교환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중에 있었다.

중동 최대 정보기관이자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가장 치밀한 암살조직이기도 한 모사드는 히브리어로 '기관'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다. 총책임자인 국장의 이름만 공개되고 본부의 주소나 전화번호, 직원 수 등이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지고 있는 모사드는 이스라엘 총리실 직속 조직으로, 대외 정보수집과 특수작전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듬해인 1949년에 출범한 모사드는 1960년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던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찾아 압송해 시민재판에 세우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갈등이 60여 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 점령을 장기화하는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