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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여전히 푸틴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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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여전히 푸틴이 필요한가?"

[화제의 책] 러시아 민주주의 실패 추적한 <러시아의 자본주의 혁명>

가판대에서 1부당 2파운드(약 3400원)에 팔리던 영국의 진보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단 1파운드(약 1700원)라는 헐값에 팔려나간다는 소식이 지난 2일 전해졌다.

신문을 인수할 계획인 이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러시아 금융재벌 알렉산드로 레베데프로 알려졌는데, 그는 이미 작년에 영국의 석간 신문 <이브닝 스탠더드>도 인수한 바 있다.

'러시아 자본주의 혁명'과 그 사생아들

레베데프는 1990년대 초중반 러시아에서 급부상한 막강한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 중 하나다. 올리가르히의 특징 중 하나는 흥행에 밝은 것으로, 이들 가운데는 소위 '미디어 재벌'이 많다.

루퍼트 머독이 1986년 <더 타임스>를 인수한 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나온 기자들이 만든 <인디펜던트>가 이번엔 러시아 '신흥 재벌'의 소유가 된다. 25년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다시 재벌의 그늘로 돌아온 독립 언론의 현실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인디펜던트>의 소유권 이동은 새삼 올리가르히가 러시아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들의 탄생은 철도 같은 사회 기반 산업과 자원 등의 국영화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고, 본질은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는 시장만능주의와 맞닿아있다.

올리가르히는 옐친 전 대통령이 러시아의 국유 재산을 몽땅 민영화시키던 시기, 무능한 구관료들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며 급부상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이였던 이들은 범죄와 편법을 불사하며 정부로부터 석유, 가스, 광물 등을 분양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자본주의적 인류의 탄생. 올리가르히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전환기의 첫 성과물로 간주된다.

그처럼 올리가르히는 러시아가 이제 막 완수한 '자본주의 혁명'의 등장인물 중 하나다. 자본주의 혁명? 1917년 저 유명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기억한다면 1990년대 초부터 20년에 걸쳐 일어났다는 이 사건(?)은 '혁명'이라 부르기 생소할 따름이다.

그러나 한 세기 가까이 냉전의 '왼편' 주인공으로 보냈던 러시아가 21세기를 기점으로 공산주의 독재와 통제 경제 체제의 장렬한 최후를 고한 점을 떠올려 볼 때, 자본주의 혁명은 1917년의 혁명보다 더 큰 지각변동이었을지 모른다.

<러시아의 자본주의 혁명>(안데쉬 오슬룬드 지음. 이웅현·윤영미 옮김. 전략과 문화 펴냄)은 바로 그 지각변동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동시에 냉정하게 평가하는 책이다. 저자는 포스트 공산주의 사회의 경제 전환 분야를 30년 이상 연구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안데쉬 오슬룬드이다.

그는 이 책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던 1985년의 소련으로 거슬러 올라가 20세기 말에 일어난 대사건들을 평가하고, 이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가 겪은 정치적·경제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추적한다.

오슬룬드는 이 과정을 '혁명'이라 칭하면서 그 성격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 "러시아는 시장경제에는 성공했지만 민주주의에는 실패했다". 왜일까?

"아이디어 없는 민주주의는 실패한다"

▲ <러시아의 자본주의 혁명>(안데쉬 오슬룬드 지음. 이웅현·윤영미 옮김. 전략과 문화 펴냄). ⓒ프레시안
이 책에 따르면 러시아 자본주의 혁명은 한 가지 특수성을 갖고 있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에 반항하는 반혁명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 러시아 사회 구성원들은 이데올로기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서유럽 국가같은 부유한 사회를 꿈꾸며 혁명에 임했다. 따라서 혁명은 반사회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반이데올로기적으로 진행됐다. 혁명에 정치성은 개입되지 않았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러시아는 그들의 희망대로 부유한 나라가 됐다. 시장 경제 제도는 안정적으로 구축됐고, 대대적인 민영화가 이루어졌으며 무엇보다 소련이 평화적으로 해체됐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권위주의 체제가 강화됐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러시아를 움직였던, 현재에는 '총리'로 한 발 물러나 있으면서도 사실상 상왕(上王) 노릇을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은 그 권위주의의 상징이다.

권위주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9년간 연평균 7퍼센트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때문에 국민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복지를 확대할 수 있어서 행복해 했다. 혁명 후 나타난 안정 상태는 사람들을 '(정치적) 침묵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 수 있었다. <러시아의 자본주의 혁명>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혁명은 완수되었으나, 여전히 찜찜한 이유를 저자는 밝혀내고자 했다.

이 책은 민주주의가 실패한 이유가 그것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관한 분명한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혁명 상황일수록 급진적이고 단순한 초기 개혁 조치들이 성공하며, 점진적인 개혁 조치들은 참혹하게 실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자본주의 혁명에서 가장 점진적으로 이뤄졌던 것이 바로 민주화였다.

저자는 1991년 8월부터 1992년 4월까지는 러시아에 있어 '격렬한 변환의 시기'였으며 당시 대부분의 국가 기구와 사회 세력들의 기능이 마비돼 있는 만큼 새로운 정책 결정의 패러다임을 짤 독특한 기회였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혁명의 영웅 보리스 옐친은 정치 개혁이 그다지 절박한 것이 아니라며 뒤로 미루었으며, 나아가 그를 포함해 다른 그 누구도 어떻게 민주주의를 건설할 것인가에 관한 분명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치적 후퇴의 시작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옐친은 러시아 민주주의의 돌파구를 제공했던 1991년 8월의 쿠데타 실패 6개월 내에 이미 낡고 대표성 없던 의회를 해산했어야 했다"고 구체적인 방법을 거론해 후회도 하며, "당시 서구가 시장 경제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이식시켜줬더라면"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러시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구상이 없었던 것은 필연적이었다. 왜냐하면 "혁명은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의 도입인 재고(再考)를 의미"하는데, "러시아 개혁가들은 공산주의라는 악명 높은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엔 가정이란 없다. 대신 과거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기록·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 과정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러시아의 자본주의 혁명>을 아주 짧지만 강렬한 낙관으로 끝맺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총 525쪽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과 폭 넓은 분석을 통해 그는 개혁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지목하면서 특히 정부 내에 강력한 개혁팀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낙관한다. "국가는 경제가 부유해지고 개방적이 되고, 국민이 교육을 더 많이 받을 때 정치적으로 다원주의로 발전하기 때문"이라서다. 러시아는 그의 낙관대로 무거운 권위주의적 멍에를 떨쳐낼 수 있을까?

푸틴이 2012년 재집권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는 지금 <러시아의 자본주의 혁명>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풍요 속 정치적 무관심'을 몸소 체험하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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