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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대풍그룹, '허풍그룹'만은 아닌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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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北 대풍그룹, '허풍그룹'만은 아닌 까닭은?

박철수 회장 연이은 언론 접촉…"법·제도 바꾸고 있다"

북한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은 과연 외자 유치의 '대풍'을 가져올 것인가.

이 그룹의 박철수 회장이 3일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10년 내에 최대 4000억 달러(480조 원)에 달하는 외자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그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남한의 초기 산업은행과 유사한 국가개발은행을 만들어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중심으로 자금을 투여해 경제적 도약을 꾀하고 있으며, 지난 1월 20일 국방위원회 재가를 통해 대풍그룹을 외자 유치의 공식 창구로 천명했다.

북한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 일각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외자 유치는 현실성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의 특수하고 폐쇄적인 경제·정치구조도 활발한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거론된다.

중국의 대형 은행과 복수의 다국적기업이 대풍그룹에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는 설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가운데, 40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목표액은 어떤 경위에서 제시됐을까?

▲조선대풍투자그룹의 박철수 회장 ⓒ연합뉴스

대풍그룹의 대찬 자신감

박철수 회장이 2일 재일조선인총연합(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3일 <MBC>와 잇달아 인터뷰를 한 것은 그만큼 사업에 엄중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는 의지를 드러내려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정철 숭실대 정외과 교수는 이 사업이 국방위 재가를 받은 사업임을 강조하면서 "잘 안 될 경우엔 '목이 날아간다'는 각오로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2008년 1월 작성된 국가개발은행 설립제안서가 지난 2월 공개된 뒤 대풍그룹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가 넘치면서 사업은 뜨거운 주목을 받게 됐다. '100억 달러 유치설'도 대풍그룹을 알리는 데 한몫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대풍그룹은 다소 허황된 목표액을 부르더라도, 최대한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북한 전문가는 "숫자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며 "어차피 (목표액은) 현실적으로 달성되지 못할 거라고 보지만 그건 다음 단계의 문제"라고 말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거의 없던 과거의 국가 금융계획에 비해 목표액이 제시된 것만으로도 자신감의 발로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200배에 해당하는 투자 목표액에 수긍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숫자로 표현된 목표 말고, 대풍그룹과 국가개발은행을 통해 추진하는 '경제인프라 구축 10년 계획' 같은 청사진은 어떨까? "10년을 내다보고 먹는 문제, 철도, 도로, 항만, 전력, 에너지 등 6가지 사업을 동시에 밀고나가는 것"(박철수)인 이 계획은 그리 조급하거나 비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현실성은 있나

앞에서 인용한 대북 전문가는 외자 유치를 위한 계획이 세심해졌다는 걸 근거로 "이번엔 (북한이) 확실히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외자 유치 작업을 국가별로, 자본 성격별로, 투자대상별로 분리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인 것 같다며 이는 막연했던 과거의 계획에 비해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평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외자유치 계획에는 △국가별로는 먼저 중국 자본을, 대외 환경이 좋아지면 타국 자본을 받아들이고 △자본 성격별로는 공적자본 형태를 먼저, 민간투자를 나중에 받아들이며 △투자 대상 면에서는 SOC 우선, 기업 나중이라는 식의 단계적 구상이 드러나 있다.

대풍그룹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여러 변수 가운데, 북한의 폐쇄적인 체제와 관련해서 박 회장이 <MBC> 인터뷰에서 "새로운 경제에 맞게 새로운 모든 법과 규제가 나올 것"이라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법·제도 개선을 통해서라면 그러한 약점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북한 전문가는 "박 회장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아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바뀐 법·제도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적으로는 이미 정비를 끝냈을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 전문가는 "2002년 신의주 경제특구 추진을 발표하고 나서도 집중적인 외자 유치를 위해 대외경제 관련 법제를 바꾸는 등 북한은 (개방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또 인터뷰에서 "북한 전 지역에서 외국인 기업을 설치할 때 북한이 합영기업(북한과 외국인투자가가 공동으로 출자하는 방식)을 선호해 단독 외자기업에 대해서는 제한이 많았다"고 인정하며 "외국 기업들의 선호에 맞게 법제도를 풀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의 대외관계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북한의 계획 자체에 대한 현실성 여부를 떠나 국제적인 조건이 뒷받침 돼야 현실성이 발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상식을 염두에 둔다면, 대풍그룹을 내세워 외자 유치를 외치는 것은 6자회담 재개를 이미 포석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뒤를 잇는다.

현재 대북 제재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우회적인 외자 유치 방법을 취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따로' 개선해가는 방법도 거론된다. 이정철 교수는 "미국과 이야기가 잘 되면, 현재 제재는 풀지 않은 상태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경우 북한은 은행에 대한 추가 제재가 없으므로 자유롭게 외자 유치를 할 수 있고, 미국은 제재를 풀지 않았다는 명분을 얻어 '윈-윈'이 될 수 있다.

북한도 개혁·개방을?

북한의 최근 행보가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조치들처럼 북한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쪽으로 나아갈지도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민간인들을 통해 외자를 유치해봤자 공식적인 국가 차원에서 개방 노선을 천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는 회의론도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지난 달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100억 달러 외자유치설에 대해 "시장 요소를 통제하면서 외자유치를 외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한 것에도 그런 시각이 배어 있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식' 개방 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대풍그룹을 앞세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박 회장은 2일 <조선신보> 인터뷰에서 "(계획되어 있는 개방 조치들은)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 제끼는데 집중돼 있으며, 조선은 앞으로도 국가 소유에 기초한 경제운영을 해나갈 것이다. 대풍그룹은 (…) 자본주의 나라의 여느 회사와 다르다"고 못 박았다.

그렇다면 당장 '부분적으로 개방'된 북한을 어떤 식으로 그려볼 수 있을까? 정창현 <민족21> 편집주간은 "중국에서 경제특구를 만들 듯 북한도 몇몇 지역에 특구를 만들어, 그것을 확대하는 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북한은 평양 등 8대 도시를 신(新)경제특구로 지정해 개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정창현 주간은 또 "북한이 해외자본을 유치하려면 자원 개발, 관광 확대, 물류산업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세 가지는 최근 북한의 움직임과 연결 지어 볼 때 일관성이 드러난다. 정 주간은 "김정일 위원장의 최근 현지지도를 보면 명승지나 광산을 많이 찾는다"며 "물류와 관련해서는 먼저 SOC가 필수적인데, 국가개발은행을 통해 우선적으로 투자하려고 하는 분야가 바로 SOC"라고 말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북한이 외자유치를 외치는 것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리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풍그룹의 다각적 행보는 중국과의 경제특구 개발, 물류산업 육성 등 다른 움직임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변혁에 의해 발전될것인가. 조정에 의해 성장할것인가." 2008년 국가개발은행 설립제안서 프레젠테이션 문서 말미에 들어있는 문구는 그들의 속내를 반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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