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시대를 맞는 개인의 저항
지인이 일하던 곳은 작은 서비스 업체였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표이사는 갑자기 업무 전산화를 선언한 후 전산 팀을 다그쳤다. 그러나 말이 전산 팀이지, 별도의 주 업무가 있는 담당자가 부수적으로 전산용품의 관리와 구매를 하는 게 고작인 전산 팀이 그걸 해낼 능력은 없었다. 결국 사내 전산화는 전산 담당자의 관리하에 외주업체에 맡겨졌다.
전문적인 지식의 부재, 너무 긴 사전 작업 기간, 그로 인한 비용 증가 등 그중에 무엇이 이유였는지 몰라도, 사내 업무 전산화는 몇 달간의 사전 작업만 하다가 무산되고 말았다.
이 과정을 지켜보았던 지인은 내게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나도 과거 전산 작업을 좀 했었기에, 왜 저걸 저렇게 오랜 시간을 끄는지, 비용 견적이 저렇게 많이 나오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업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솔루션이 있는데, 그걸 갖다 쓰면 가격도 싸고 편하게 쓸 수 있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언젠가 다른 업체에 갔다가 거기서 그것과 비슷한 솔루션을 사용하는 모습을 지켜보고서는,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전산화가 무산되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전산화된 그 업체는 우리 회사와 거의 비슷한 업무량을 하면서도 직원 수는 절반밖에 되질 않았거든요. 그걸 보고서, '만약 우리 회사가 제대로 전산화를 완료했다면 대대적인 감원이 있었겠구나', '잘리는 인력 중 한 명에 내가 포함될 수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니까요."
이것과 비슷한 경험담을 여러 지인으로부터 다수 들은 적이 있다. 하청업체에서, 또는 부하 직원이 비용 절감을 위한 제안서라며 들고 오고, 그것을 확인한 상사나 담당자는 (그 제안서가) 자신을 포함한 인력의 대대적인 감원을 가져올 것을 간파하고 무산시켰다. 자칫 누군가의 근무 태만 또는 무능의 단편으로도 보일 수도 있는 얘기지만, 동시에 자동화(또는 기계의 역습)라는 큰 흐름에 개인들이 어떻게 저항하는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은 담당자가 중간에서 막는다고 막히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발버둥에 불과하지, 잠시 시기만 늦춰졌을 뿐 그 제안서 중 일부는 결국에는 경영진 손에 들어간다. 시스템이 도입되고 시범 운영이 시작되고, 시스템이 안정화된 후, 불필요해진 인력들에 대한 대량감원이 현실이 된다. 지인의 회사 역시 결국에는 전산화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자동화로 인해) 할 일이 없어진 상당수의 인력은 회사를 나가야 했다.
이것은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개인이 발버둥 치듯 저항을 시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잘해야 개별 사업장의 도입 지연 정도가 고작이다. 이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그저 발버둥이지.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재교육을 통해 전직?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익혀 새로운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은 어떨까?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만이 일할 수 있는 분야는 점점 축소되고 있다. 인간보다 더 정교하고,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저렴한 비용으로 인공지능, 로봇 등 기계들이 인간의 일을 대신한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분야의 기술을 습득시켜 실직자(또는 잠재적 실직자)의 전직을 돕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분야로의 전직을 위한 재교육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대표적인 기술인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량 등 새로운 분야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전문지식과 기술은 수학과 과학에 대한 심도 있는 사전 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금(또는 다가오는 미래에) 자동화에 의해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노동자 대부분은 전문적인 지식도 고도의 기술도 가지지 못한 단순 기능직 노동자들이다. 이들 중 다수는 인공지능, 로봇 등에 필요한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사전지식을 갖추지 못했다. 기초단계에서부터의 교육이 필요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든다. 따라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노동자 대부분은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 노동연구원에서 발간된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위험과 저숙련 노동자 재교육의 어려움'(<노동리뷰> 8월호, 김종욱)에 잘 나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OECD 성인 인구의 50% 이상이 간단한 수준의 전산 업무만 가능하거나 이조차도 불가능할 정도로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용이나 시간 등 환경적인 이유도 재교육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환경 하에서 취업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ICT 관련 지식과 기술이다. 그것도 필수기능의 활용과 같은 단순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해낼 정도로 고도의 전문화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산 업무에 필요한 단순한 지식과 기술의 습득도 어려워하는 것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다. 이들 중 자동화에 의해 일터에서 밀려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고도화되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다시 교육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더구나, 저숙련 노동자들 다수는 낮은 임금, 만성화된 장시간 근무 등으로 인해 재교육을 받을 시간과 비용도 부족하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일자리를 얻기 위해) 기계나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전문화된 지식과 기술을 가져야 하지만, 이것을 갖추기는 해당 분야의 숙련 노동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저숙련 노동자가 이에 대비해 재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숙련 노동자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간, 비용, 기초 지식 등 모든 분야에서 첩첩산중 난관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시스템하에서는, 자동화에 의해 일터에서 밀려난 노동자 중 대부분은 재교육을 통해서도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세계, 기본소득제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일자리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이, 아예 일자리가 없어도 모든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제이다.
기본소득제란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 소유하고 있는 자산과 소득에 관계없이, 또 일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고 모든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최저생계비가 1인당 월 100만 원으로 정해지면, 국가가 아무런 조건 없이 국민 개개인에게 1인당 100만 원씩을 지급한다. 원래는 소득 양극화의 완화를 목적으로 나온 제도였다. 그러다가 최근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잠식의 위협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량 등 기계와의 일자리 경쟁에서 밀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전망 속에서,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받는다면 괜찮을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진다.
기업을 비롯한 재화의 공급자 입장에서도 기본소득제는 꽤 괜찮아 보이는 제도이다. 설사 자동화로 인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각각의 개인이 최소한의 생계비를 국가로부터 보장을 받게 되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구매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동화로 인한 급격한 일자리 잠식이 발생해도 구매력은 유지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여전히 소비시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기본소득제를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가져올 일자리 소멸에 대한 대안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본소득제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기본소득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액수의 금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수를 5000만으로, 기본소득을 월 100만 원으로 산정한다면, 정부가 지출하는 금액은 기본소득에만 월 50조 원이다. 1년이면 600조 원이다. 이는 일반적인 대한민국 정부의 1년 예산 450~500조 원을 100조 원 이상 초과하는 금액이다. 교육, 국방, 치안, 의료, 안전 등 정부의 재정 투입이 필요한 모든 항목을 제외하고도 100조 원 이상의 추가적인 돈이 필요하다. 정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에 들어가는 예산까지 포함할 경우 필요한 국가 예산은 지금의 2배가 훨씬 초과된 약 1100조~1200조 원이 된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정부 예산을 확보할 방법이 있을까? 재정 마련을 위해 부자들이나 기업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얼마나 더 세수를 추가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따져본다면 그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최근 발표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국세 수입은 약 283조5000억 원이었다. 그리고 국세수입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세목은 소득세가 1위 법인세가 2위로, 각각 86.3조 원과 70.9조 원이다. 기본소득을 100만 원으로 산정하고 필요한 재정을 부자 증세와 법인세 인상으로 충당하자면, 소득세와 법인세를 합한 현재의 세수에 추가해서 약 650조~750조 원의 세수를 더 늘려야 한다. 다른 예산을 모두 제외하고 기본소득에 대한 예산만 고려하더라도 약 100조 원의 세수를 늘려야 한다. 기본소득제만을 고려할 경우에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현재의 2배 이상, 다른 예산까지 포함하면 4배 이상 늘려야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한가? 재정을 늘리는 것이 불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자동화가 심화되는 4차 산업혁명의 환경에서는 국가가 거두어들일 세수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소득세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현재 자동화 기술의 발전은 인력 감축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따라서 (근로)소득세를 납부할 근로자의 수가 급격히 감소한다. 인간노동자를 대체하는 자동화 기계들은 회계상으로 비용이나 자산으로 계상되기 때문에, 기계를 늘린다고 세금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장비 운영에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기업은 인간노동자를 해고하고 자동화 기계를 들이는 편이 세금 측면에서도 더 이익이다. 따라서 세율 인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득세의 세수는 감소하게 된다.
감소하는 정부의 세수는 소득세만이 아니다
최근 자동차 시장은 자율주행차량의 시대로의 대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유보다는 공유를 통해 모빌리티 서비스(이동)를 이용하기 때문에 차량구매가 급격하게 감소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그런데 차량 구매가 줄어든다면 거기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들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자동차와 관련되어 징수되는 세금은 상당히 많다. 취득세, 교육세, 개별소비세, 부가가치세, 자동차세 등은 물론이고, 차량을 운행하면서 드는 에너지에 부과되는 유류세도 있다. 자율주행차량의 경우 대부분 전기차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특히 이 중에서 유류세 세수 감소 폭은 급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유류세 비중이 국세 수입의 약 11% 전후이고, 2017년의 경우 약 28.9조 원이었다.
간단히 소득세, 취득세, 유류세만 계산해도 수십조의 세수가 줄어든다. 부자증세와 법인세로 세수를 증가시킨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자동화로 인해 발생할 세수 감소를 보충하는 것조차도 힘겹다. 이런 상황에서, 줄어드는 세수를 보충하면서 추가로 100조 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한 기본소득제가 가능할까?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 일부에서 논의만 되고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충분한 자동화가 아직 진행되지도 않은 현재도 재원 부족으로 도입하기 어려운 기본소득제를, 자동화로 인해 세수가 급격히 감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대안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시스템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을 구제할 대안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 점을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안으로 내세우는 기본소득제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재정이라는 측면에서 불가능하다. 재교육은 능력 있고 선택된 사람들에게나 유효한 대안이다. 그나마 현실적인 제안으로 일각에서 로봇세(자동화세)와 같은 제도가 있지만, 기업들의 반발 등 넘어야 할 난관들은 많고, 그조차도 제대로 된 대안이 되기 어렵다.
우리가 어떤 난관에 부닥쳤을 때, 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지금의 경우 우리가 직시하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현실은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직도 현실성이 없는 것을 대안이라고 부여잡고 대안 찾기에 쏟아야 할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진짜 대안의 마련은 '냉철한 현실 인식',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희망 고문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대안은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자동화에 의한 일자리 소멸'이라는 현실에 대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다음 기회에는 소수를 위해서가 될 수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재교육을 통해서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이라는 흐름에서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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