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부안 주민을 향한 연대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25일부터 해외 핵전문가 및 환경운동가들의 '국제 반핵포럼'이 부안에서 열린 데 이어 오후에는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전국연합, 전농 등으로 구성된 전국민중연대 대표단이 부안을 찾아 주민들과 촛불집회를 함께 했다.
***1백22일째 촛불집회, 부안 주민과의 국내외 연대 움직임 본격화**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 민주노동당 천영세 부대표, 전국연합 오종렬 상임대표, 정현찬 전농 의장 등 전국민중연대 대표단은 25일 오후 부안을 찾아, 부안 주민과 끝까지 연대할 것을 밝혔다.
이들은 "정부가 부안 주민 투표를 연내 실시할 것과 즉시 경찰 병력을 철수시킬 것을 촉구한다"면서 "29일 예정된 대규모 집회에 전북 민주노총 등 전국민중연대 산하 조직들이 참여하고, 이후 전개되는 전국민중연대의 투쟁에서 부안 문제를 적극 쟁점화시키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들은 기자 회견 후, 오후 7시부터 부안 성당에서 열린 1백22일째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전국민중연대 대표단 외에도 25일부터 부안 초등학교에서 열린 '국제 반핵포럼'에 참가한 일본, 대만, 독일, 프랑스 핵 전문가 및 활동가 13명이 참가해 1천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촛불을 밝혔다.
***일본 반핵 운동가,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투쟁에 참가하는 것에 큰 감동"**
특히 일본에서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야마모토 유키코는 한국말로 종이에 적은 연대사를 직접 낭독해 주민들의 커다란 박수를 받았다.
유키코는 "우리는 핵발전소 계획을 철회시키기 위해 21년간 투쟁해왔다. 부안에서는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투쟁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핵을 반대하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투쟁이다. 우리의 연대와 투쟁으로 핵무기도, 핵발전소도, 핵폐기장도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 우리의 투쟁은 핵 없는 세상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과 함께 "세계 시민 연대하여 핵폐기장 추방하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부안 주민들에 대한 강한 연대 의사를 밝혔다.
***촛불집회, 경찰과 충돌 위기 직면**
주민들의 비폭력 촛불집회와는 별개로, 경찰들의 '경찰 계엄' 상태는 계속되었다. 25일 저녁에도 경찰은 부안읍 곳곳에 대규모 경찰을 배치해 삼엄한 경계를 폈다.
경찰들은 24일에 이어 십자가를 지고 부안 읍내를 행진하던 약 30여명의 기독교인들을 전원 연행했다. 오후 9시50분경 집회가 끝난 후 거리 행진을 하려던 전국민중연대 대표단과 부안 주민들을 성당 앞 골목에서 약 1시간가량 가로막아, 대규모 충돌 위기를 낳기도 했다. 한 때 주민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면서 전진했으나, 곧 많은 수의 경찰이 골목의 길목을 막고 더 이상의 전진을 막았다.
약 30분가량 경찰과 주민들은 몸싸움을 하면서 대치를 했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경찰들에게 물을 뿌리고, 흥분한 경찰들이 주민들에게 방패를 휘두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1시간 가량 지속된 경찰과 주민의 대치는, 주민들이 골목에서 집회를 정리하면서 끝이 났다.
한편 수협앞 광장 천막에서 각각 13일째, 7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던 문규현 신부와 김경인 교무가 행진 소식을 듣고 수협앞 광장으로 나갔다가 경찰들에게 방패와 주먹으로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폭행으로 문규현 신부는 오른쪽 허벅지에 방패에 찍히는 부상을 입었다.
***국회의원들의 부안 방문, 사흘째 계속돼**
앞서 오전에는 23일 한나라당, 24일 민주당에 이어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의원 5명이 부안을 방문했다.
한나라당 박상규 산자위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정균환 의원, 신현태 한나라당 의원, 배기운 민주당 의원, 안영근 열린우리당 의원 등은 부안 성당에서 주민 10여명을 비롯한 대책위 관계자들에게 '부안 민심'을 전해 들었다.
앞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이 방문했을 때, 1백여명 이상의 주민들이 모여들어 격앙된 분위기에서 불만을 토로했던 것과는 달리 이날 면담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이것은 24일 촛불집회에서 대책위 관계자들과 주민들이 "연일 찾아오는 국회의원들의 '생색내기 방문'에 일일이 주민들이 맞춰 줄 필요가 없다"고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부안주민들은 1시간30분 동안 경찰들의 주민 폭행 문제를 포함해, 부안 사태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을 질타했다. 특히 주민들은 "의원들이 리베이트 받는 것에만 신경 쓰지 말고, 핵에너지를 극복할 대안에너지에 대한 고민도 좀 하라"는 쓴 소리를 해 의원들을 따끔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우리당 안영근의원, 두달만에 소신 바꿔 정부편 들기도**
이날 면담에서 의원들은 "부안군민들의 고충과 아픔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면서 "핵폐기장 백지화를 비롯해 이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등 부안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부안 사태에 대한 당리당략적 접근이 뚜렷해 주민들과 대책위 관계자들을 실소케 했다.
한나라당 신현태 의원과 민주당 배기운, 정균환 의원이 "주민들의 연내 주민투표 실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나 "완전 백지화"등을 주장한 것과 달리, 열린우리당의 안영근 의원은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모호하게 밝혀 노무현 대통령과 부안 주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당의 현주소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특히 우리당의 안영근 의원은 답변 도중 "개인적으로는 핵폐기장 안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가 일부 주민의 거센 야유를 받기도 했다.
이같은 안영근 의원의 발언은 자신이 두달 전인 지난 9월25일 국회 산자위 한국수력원자력(주) 국정감사 자리에서 "부안 사태 백지화"와 "핵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동시에 인천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을 하는 등 '환경보존론자'로 자처하던 본인의 과거와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안 의원이 '당론'에 따라 의원 개인의 소신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면담을 마친 국회의원들은 부안성모병원에 입원 중인 부상자들을 만나보기 위해 서둘러 부안성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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