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녹색평론사가 주최한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의 두 번째 강연이 개최됐다. 독일 그린피스의 전 의장이자. 독일 '부퍼탈 기후·에너지·환경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볼프강 작스가 강연자로 나섰다.
신학, 사회학, 역사학을 전공한 볼프강 작스는 독일 베를린공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등의 교수를 역임하고, <개발사전>, <글로벌 에콜로지>, <'북'의 녹색화>, <지구 변증법> 등의 저서를 낸 독일의 대표적인 생태주의 사상가다. 특히 2002년에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지구정상회담'을 계기로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연약한 세계에 있어서의 공정성>이라는 책자를 세계 각지의 이론가, 활동가들과 공동으로 펴내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볼프강 작스는 13일 영남대에서 3백여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자신이 참여한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인 생태 위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그 극복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1992년 리우에서 있었던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를 계기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은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면서 "오히려 지난 10년 동안 상위 20%가 지구의 극단까지 손을 뻗쳐 지구 환경은 더 악화되고, 자원 이용의 불평등도 심화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환경위기를 불러온 미국과 유럽 등 북의 부유한 나라들이 환경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껴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자연과 자원을 무한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가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빈곤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며 "'환경보호와 빈곤타파가 서로 대립된다'는 기존의 편견에서 깨어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세계 빈민들의 생계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토지, 종자, 숲, 초지, 어장, 물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물, 공기, 토양 오염은 빈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환경보호가 바로 '빈곤타파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는 '화석연료 기반의 발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전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또 "공정성과 정의를 포함하는 새로운 형태의 부를 창출해야 한다"면서 "얼마나 많이 가지는가에서 얼마나 많이 절제하는가로 인식이 전환될 때 '지속가능한 부'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볼프강 작스는 강연회 후, 14일 하루 동안 김종철 교수(녹색평론 발행인, 영남대 영문과), 김타균 실장(녹색연합), 박병상 대표(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이필렬 교수(에너지대안센터 소장, 방통대 교수), 최성각 소장(풀꽃평화연구소) 등 한국의 급진적인 생태주의자 3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주최측의 배려로 프레시안은 이 토론회를 독점 취재했을 뿐만 아니라, 볼프강 작스가 다음 일정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따로 인터뷰를 할 기회도 가졌다. 인터뷰에는 이필렬 소장과 김타균 실장이 함께했다.
강연회 토론회 내용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프레시안이 재구성한 인터뷰 전문
***볼프강 작스 인터뷰**
질문 : 한국에 처음 왔다. 첫 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볼프강 작스 : 마을을 보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마을을 보기가 힘들다. 유럽에서는 도시라고 하더라도 중심부에 옛날 마을의 구조가 남아있다. 전통과 현대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팽창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도시들은 그 점에서 매우 다른 것 같다.
***한국의 도시에서는 역사를 볼 수 없어**
질문 : 전주 같은 도시에서는 작스 선생이 지적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도시 거주자가 70~80%를 넘는다. 이것은 40년 전쯤에 한국이 농업 국가였을 때, 80%가 농업에 종사했던 것과는 극단적으로 역전된 모습이다. 이런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밀어붙이기식 도시화가 진행됐다. 그게 원인인 듯하다.
작스 : 한국에도 1백년 이상된 도시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런 도시들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역사가 전혀 보존되지 않았나?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도 역사를 볼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시작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변했는지를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유럽에서는 한 도시를 봐도 지나온 과정을 알 수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역사는 꼭 30~40년 전에 시작한 것 같다.
질문 : 밀어붙이기식 근대화를 주도했던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를 지향하면서 전통을 철저히 부정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예를 들어 새마을 운동이 그 단적인 예이다.
작스 : 또 한 가지 접한 인상은 주택의 50% 이상이 아파트란 점이다. 일본의 오사카 같은 도시에서는 주택과 정원을 많이 볼 수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질문 : 원래는 60년대 말부터 급속한 도시화로 급증하는 도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아파트가 지어졌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한국화하는 과정에서 고급 주거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중산층 이상 계층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 후 아파트가 급속히 확대됐다.
작스 : 특이한 일이다. 전세계 어디나 중산층 이상은 보통 녹지가 딸린 자기들 집을 갖는 것을 지향한다. 그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한국의 경향은 매우 독특하다. 결과적으로 땅을 적게 소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나?
질문 : 그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타워 팰리스'와 같은 주상복합형 아파트가 상류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아파트는 60층 정도 되는 건물에 1백평 이상의 집들이 모여 있다.
작스 : 놀랍다. 상상을 못 하겠다.
***환경운동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실천**
질문 : 작스 선생은 독일의 대표적인 생태주의자이자, 독일 그린피스 의장 등을 맡아서 직접 환경운동을 전개한 활동가다. 환경운동에 뛰어든 구체적인 계기가 있는가?
작스 : 독일의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도달했을 때, 내가 겪은 일을 얘기해 보겠다. 내가 17살 때 마을의 공원이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때 '이런 것이 진보라면 이 진보를 부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식의 경제적 성장에 기반을 둔 진보에 회의적이 되었다. 환경운동에 뛰어든다는 것은 다양한 통계적 수치를 통해, 직면한 위기를 논리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자존심이 훼손됐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 나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공평한 세상이란 무엇인가'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나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환경운동에 동참했다.
질문 : 현재 독일 학생들은 어떤가? 작스 선생의 경험이 그들과도 통하는가?
작스 : 대부분의 독일 학생들은 환경문제를 잘 알고 있다. 또 지구의 생물·물리적 한계도 잘 인식하고 있다. '환경을 파괴하는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은 안 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옛날 세대와는 차이가 있다. 옛날 세대들은 좀더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환경문제에 대응했다. 이들은 자동차를 반대하고, 유기농 도입을 주도했다. 녹색당이 연립 정권에 참가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현실 정치에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거리에서 운동을 벌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자기가 속한 영역에서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예를 들어 도시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환경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접근하면서, 도시행정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과 나의 차이다.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은 명백한 실패**
질문 : 작스 선생은 2002년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을 주도해 내놓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선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이 1992년 리우 회의 이후 더 악화된 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할 전환점이 될 것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선생은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작스 :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은 완전한 실수다. 우선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에서는 여러 가지 의제들이 일관되게 '발전'이란 측면에서만 조망되었다. 이것은 명백히 정상회담의 기본 방향을 왜곡시켰다.
미국은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에서도 끊임없이 합의를 방해하고, 의제를 왜곡시켰으며 현재는 리우 회담 이전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적 노력을 되돌리려고 시도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에서 '2015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를 15%로 늘리겠다'는 미래지향적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당연한 일이다.
질문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은 상당히 낙관적인 생각을 깔고 있다. 당신이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을 통해 제안한 것들이 과연 현 국제체계 하에서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작스 :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은 유럽연합의 생태친화적인 입장이 미국이 주도하는 개발주의적 입장에 패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분간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과 같은 다자간 협약을 염두에 둔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현재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려지는 북의 많은 나라들은 문화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소비의 80~90%를 줄이고,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경제에서 탈피하지 않고서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자발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압력이 필요하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이런 위기를 인식하고 일종의 공동행동을 갈망하는 국가들끼리 지역적 협정(subglobal agreement)을 맺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를 유럽과 러시아 등이 주도해서 이행하는 것은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미국과 같은 나라에게 큰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질문 : 지역적 협정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유리구슬과 같다. 언제 깨질지 알 수 없다.
작스 : 물론 지역적 협정은 위협당하고 파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깨질 위협에 처해 있긴 하지만 지역적 협력이나 협정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여기서 생각을 바꾸자. 지역적 협정이든 더 큰 것이든 국가간의 협정으로 문제를 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통해서 그 지역적 협정을 강제하고, 또 지역적 협정을 계기로 아래로부터 운동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접근이야말로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 수 있다.
***교토의정서의 성실한 이행이 절실해**
질문 : 교토의정서 얘기가 나왔으니 묻겠다. 재생가능에너지로의 변환을 주장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교토의정서의 현실적 함의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다.
작스 : 교토의정서는 에너지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너무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배출권 거래제'는 많은 산업화된 국가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지 않고도 이 협약을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더구나 교토의정서의 대부분은 산업화된 국가들만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산업화로 돌진하고 있는 남쪽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토의정서는 전세계 정부가 환경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이마저 없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교토의정서를 이행하고자 하는 노력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바꿀 수 있어, 낙관이 필요해**
질문 :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에 대해 한 가지 더 묻겠다. 그 주장의 궁극적인 결론은 산업화된 부유한 나라들의 발자취가 제3세계에서 또 세계 곳곳에서 줄어들 때, 세계가 좀더 지속가능하고 생태친화적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문이 생긴다. 독일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 또 미국 등 부유한 나라들이 과연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을까? 어떤 전략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작스 : 세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필연', '효용', '새로운 이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필연'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독일의 지방자치단체는 어떤 곳도 쓰레기를 처분할 수 없다. 그래서 당연히 재활용 쪽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거대 정유업체인 쉘이나 BP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2010년 이후 석유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장기적으로 석유 사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것은 객관적인 '상황의 강제'고 '필연'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효용'에 대해 알아보자. 지금 이 자리에서는 에너지 절약형 램프를 쓰고 있다. 이것은 에너지를 적게 쓰고 전기 요금을 절약하기 위한 절약이다. 이런 절약은 이곳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다른 산업체들도 에너지나 자원을 적게 쓰는 것이 그들에게 이득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자동차가 줄어들면 도시가 쾌적해지고 더 살기 좋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길거리나 도로를 전부 자동차에게 내주지 않는 쾌적한 환경을 바라게 된다. 그것이 도시 거주자들에게 이득을 주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사례는 유기농이다. 사람들은 유기농 식품이 건강에 좋고, 더 많은 영양소를 공급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환경친화적인 실천이 가져다 줄 '효용'의 문제다.
세 번째는 '새로운 이상'에 관한 것이다. 가치를 둘러싼 싸움, 이상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는 최고의 매니저에 대한 상이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는 돈을 많이 벌고, 생산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매니저의 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아하게 생산을 하고, 자원을 적게 쓰면서 생산하는 매니저가 최고로 지향될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지금은 건축가가 집을 싸게 짓는 데만 신경 쓰고, 에너지 소비, 쓰레기 처리 문제,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는다. 현재는 그런 건축가가 좋은 건축가다.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지역에서 나오는 자재를 사용하고,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고,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집을 짓는 건축가가 최고의 건축가의 상이 될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독일을 예로 들자면 현재의 정치는 독일의 이익을 지키는 정치다. 앞으로는 자기 나라의 이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남쪽의 저개발 국가의 이해를 함께 고려하는 코스모폴리탄적 안목을 가진 정치가 좋은 정치로 지향될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하나 얘기해보겠다. 1995년 쉘이 그들의 용도 폐기된 시추선을 그냥 가라앉히려고 했다. 이 때 독일 전역에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당시 나는 독일 그린피스 의장으로 그 쉘 불매 운동을 벌였다.
그 운동이 벌어진 1년 후에 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쉘의 기업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MIT, 하버드, 예일 출신의 '최고'라는 생각을 가진 엘리트들이다. "더러운 폐기물을 바다로 바로 빠뜨리는 것은 추악한 일이다"라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스스로 그런 비판에 참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기업 이미지를 바꾸고, 기업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올바르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과거를 돌아봤을 때, '내가 한 일이 괜찮은 일이었다'고 평가할 게 확실하다. 나는 바로 그것이 우리 운동이 가진 큰 힘이자, 변화를 향한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뿐만 아니라 쉘의 엘리트들까지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부안, 외부에서 지원 있어야 승리할 수 있어**
질문 : 당신의 말을 들으니 힘이 난다. 이제 좀더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해보자. 한국은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개발 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에는 고속철도, 핵폐기물처리장, 대규모 간척사업 등이 심각한 사회갈등을 낳고 있다.
작스 : 그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들었다. 독일이 먼저 경험한 적이 있는 핵폐기물처리장을 반대하는 부안 주민들의 싸움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다.
나는 핵발전에 대한 반대 세력이 부안 밖에서 형성돼, 부안 주민들의 싸움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부안 밖에서 핵발전에 반대하는 세력이 조직되지 않고 또 대안 에너지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성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독일의 경험을 보자. 독일에서는 핵폐기물처리장 건설 예정지인 지역에서 주민들이 반대했고, 지역 밖에서는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광범위한 반대 운동이 전개됐다. 그래서 결국 운동은 성공했다. 현재 한국의 부안은 그런 조건이 충족돼 있는가?
질문 : 일부 그런 흐름이 만들어졌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작스 : 그럼 안타깝게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 운동이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경우 이번 일을 계기로 핵발전에 대한 저항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번 운동이 한국에서 대안 에너지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경해 씨 자결은 숭고한 저항 행위, 농업 포기 어리석어**
질문 : 농업 문제로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자. 한국의 이경해 씨가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린 칸쿤에서 자결한 일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스 : 칸쿤에서 자결한 농부에 대해 그 사람이 직접 쓴 증언을 읽은 적이 있다. 산업화에 대한 극단적인 저항이다. 현재의 세계화는 산업화를 위해서 농업을 절멸시키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WTO는 그것을 주도하고 있다. 그의 자결은 이런 WTO로부터 농업을 지키기 위한 저항 행위였다. 생명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비극적이지만, 숭고한 저항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질문 : 최근 한국은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논리는 한국 시장을 칠레의 농산물에게 개방하는 대신, 한국은 칠레에 공산품을 수출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농민들은 크게 저항하고 있다.
작스 : 공업 때문에 농업을 희생하자는 얘긴데, 한 마디로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다. 자기 나라에서 필요한 식량 전체를 수입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상태는 매우 우스운 일이다.
레스터 브라운 등에 따르면 현재 세계 식량 시장은 굉장히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식량 소비가 점차 늘어나고 있고,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식량을 수입하기 시작하면 식량 가격의 상승은 불가피하다. 한국은 어느 정도 부유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식량을 수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 동안 아프리카의 많은 능력 없는 나라들의 굶주리는 이웃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한국이 비싼 식량을 수입하는 것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식량을 외세에 크게 의존하는 현재의 흐름은 전세계에 시한폭탄처럼 작용할 것이다.
한국과 칠레의 FTA의 경우, 한 가지 생각해 볼 게 또 있다. 칠레도 남미에서 꽤 산업화된 나라다. 나는 농산물과 공산물을 1 : 1로 교환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한국 정부의 사고가 매우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환경운동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
질문 :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서로 대립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둘의 논리가 조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독일의 경험은 어떤가?
작스 : 독일의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은 크게 세 가지 단계를 거쳐 관계를 정립해 왔다.
초기에 둘 사이는 적대적이었다. 노동운동 측에서 볼 때 환경운동은 산업에 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적대적인 관계는 곧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변화의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노동운동 측은 '경제성장이 반드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제성장이 항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은 것이다.
또 환경운동의 주장을 수용한 환경정책이 일자리를 없애기보다는 중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일관성 있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한 결과, 환경산업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특히 지역에 기반을 둔 소기업들을 중심으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금속, 화학 산업과 같은 오염산업이 환경운동이 발전하면서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런 이유로 입장이 오락가락한다. 금속노조나 화학노조는 환경운동에 적대적이지만, 노동운동의 다른 쪽에서는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이 환경운동과 환경정책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질문 : 방금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관계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설명했는데, 현실은 훨씬 더 어렵다. 어제 11월 13일은 한국에서는 뜻 깊은 날이다. 30여 년 전에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킬 것을 촉구하면서 분신을 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최근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파업권을 보장해달라면서 전태일 열사와 똑같은 방식으로 분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생태주의자들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분신 노동자들 대부분은 금속 산업과 같은 오염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다. 한국에서 환경운동은 이런 오염산업에 반대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그들 노동자의 생존권과 권익을 옹호하는 데 연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한국의 현실에 대해 아는가?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작스 :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어려운 문제다. 대답하기도 쉽지 않다. 내 경험에 비춰 몇 가지 얘기를 해보겠다.
요즘 독일의 금속 산업은 새로운 희망을 보고 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희망은 바로 풍력발전 산업이다. 현재 독일에서 풍력발전 산업은 가장 큰 금속 산업의 구매자다.
물론 문제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까지 파괴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이득을 얻었던 그런 산업들이 앞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환경운동은 그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대응을 해야 한다. 이런 환경운동의 논리는 독일의 예처럼 각 산업이나 노동운동에서도 점차 수용될 것이다.
질문 : 독일에서는 그런 논리가 일부라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거나, 현재로서는 요원하다. 이 차이는 어디서 생겼다고 생각하는가?
작스 : 어려운 질문이다 . 나는 한국 상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답밖에 할 수 없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경제성장의 독재를 얼마나 누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인 이득을 노리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 가지 비유를 해보자.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이 만든 피라미드에서는 소년, 소녀들이 처형을 당하고 그 피가 신에게 바쳐졌다. 절대로 재미삼아 그들을 죽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즈텍 문명의 논리 안에서는 필연이었다. 그들은 59년마다 태양하고 달의 원 운동이 멈춘다고 생각했고, 소년, 소녀들이 피를 흘려야 그 운동이 계속된다고 믿었다.
우리 현대인들도 결코 멕시코의 아즈텍 사람보다 낫지 않다. 우리도 경제성장을 위해서 피라미드에 우리의 농업, 일자리, 경제, 살 만한 도시를 희생하고 있다. 바로 이 논리 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남북한 긴장 관계 완화해야 미국의 파병 요구 거부할 수 있어**
질문 : 방금 한국 정부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대한 파병 결정을 언급했다.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작스 : 나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매우 혐오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말하는 것이 어렵다.
내가 알기로 미국은 한국 정부가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유럽이 아직 냉전 상태라고 한다면 독일이나 프랑스, 특히 독일 같은 경우 미국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현재 남북한의 긴장 관계가 어떤 수준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또 한국 정부가 파병 요청을 거부했을 때, 미국이 한국 경제나 남북 관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판단을 할 만한 근거나 논리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재 남북한의 긴장 관계가 지속되는 한, 한국 정부가 파병 결정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질문 :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상은 무엇인가?
작스 : 남북한 긴장 완화가 가장 중요하다. 남북한 사이에 항구적인 평화협정 같은 것이 체결돼 있다면, 한국 정부의 미국에 대한 발언권은 훨씬 더 세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에 한국 정부가 반대하는 것이 올바르다.
다만 현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얼마나 자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또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을 때 한반도에서 미국과 어떤 식의 갈등을 빚을지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북한 경제협력에 환경운동이 더 관심을 쏟아야**
질문 : 현재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남북한 긴장 완화의 일환으로써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협력의 내용들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오염산업을 북한으로 이전하고, 북한의 관광지에 골프장을 짓는 등 환경 파괴적인 것도 꽤 많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스 : 동독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현재 북한은 산업화 과정에서 상당히 심한 생태계 파괴를 자행했을 것이다. 또 한국 정부가 북한에 오염산업을 이전했을 때, 북한 정부가 그대로 수용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이런 점들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는 (독일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국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 중 하나가 남북한 긴장완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협력으로 오염산업이 북한으로 이전되는 나쁜 결과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남북한 긴장완화가 가속화된다면 나는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환경운동은 남북한 긴장완화와 경제협력의 결과에 대해서 좀더 기민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험을 상기해보자. 동독이 무너진 후, 독일의 환경운동이나 환경정책은 굉장히 큰 타격을 입었다.
일단 환경운동의 논리를 상식 차원에서 수용한 서독의 엘리트들은 개발주의로 무장한 동독의 엘리트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동독은 환경운동 측에서 주장한 대안적인 동독의 발전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환경운동이나 독일의 좌파들은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동독은 낡은 경제발전의 길을 따라갔고, 민영화를 비롯한 온갖 나쁜 논리를 수용했다.
물론 독일 환경운동이나 좌파들의 모습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의 예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통일은 그 자체가 정치적으로 큰 진전이기 때문이다. 환경운동과 좌파들에게는 큰 패배였지만 말이다. 한국의 환경운동도 이런 점에 대해서 좀더 고민을 심화시켜야 할 것이다.
***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부정은 재고해야**
질문 : 최근 반세계화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중요한 흐름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이다.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아나키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스 : 아나키즘의 핵심은 '국가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나는 정확하게 이 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국가를 통해서 폭력을 가능한 한 억제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문제는 국가를 정통성 있고 민주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게 이런 질문을 왜 했는지 알고 싶다.
질문 : 국가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전지구적인 개발이나 발전은 상당수 국가가 주도한 것이다. 더구나 국가주의는 이질적인 문화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대와 교류를 국가라는 이름으로 구획 짓고 가로막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근대 이후 국가는 인류가 자행한 폭력의 원인 제공자였다.
게다가 아나키즘은 국가만이 아니라 다양한 위계나 독점에 반해서 개개인의 자율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작스 선생이 주도한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에서도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공감이 녹아 있다고 판단돼 물어본 것이다.
질문을 바꿔서 다시 해보자. 작스 선생은 방금 '국가가 폭력을 억제하는 순기능을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가 겪은 체험은 그것과 다르다. 국가는 폭력을 억제하기보다는 행사하거나 방조했고, 우리를 보호하기보다는 상처를 줬다. 가장 단적인 예는 국가가 파견한 군대가 민주화를 주장하는 양민을 학살한 1980년 광주에서의 체험일 것이다.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에는 인간의 자율 능력에 기반을 둔 다양한 정책 제안들이 포함돼 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해야만 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자율 능력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현재의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국가 형태를 극복하고 다른 형태의 국가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폭력 독점, 정당성·합법성 없어**
작스 : 나도 한때 국가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가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그 생각을 수정했다.
첫 번째 이유는 현재 국가에 대항해 가장 날카로운 공격을 펼치고 있는 세계화된 지구적 자본의 위험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우리는 국가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민영화나 경쟁, 효율 지상주의를 강조하면서 끊임없이 국가의 보호 기능을 약화시키고자 한다.
나는 아프리카나 인도 등 많은 나라들의 동료들의 국가에 대한 태도가 변하고 있음을 관찰하고 있다. 나처럼 그들도 20년 전에는 국가에 비판적이었고 또 대항했다. 하지만 지금 이 친구들은 국가에 대해서 태도를 바꿨다. 그들은 지구적 자본이 추구하는 민영화나 규제 철폐, WTO 체제에 대항해서 국가를 방어하고 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발칸 반도나 아프리카 등에서 한 나라가 해체되는 것을 지켜봤다. 국가가 무너진 후, 그 자리에는 폭력이 불타올랐다. 이것이 내가 생각을 바꾸게 된 두 번째 현실적인 이유이다. 수십 년 동안 어울려 잘 살던 사람들이 국가가 해체된 후 서로 죽이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나는 이 일을 겪은 후 국가라는 것이 '문명의 통치'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고전적인 국가 이론은 '국가가 폭력을 독점했기 때문에, 그 안에 속한 구성원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고전적인 국가 이론은 서구 역사, 특히 유럽 역사에 기반을 둔 것이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대신, 다른 한편에서 국민들은 국가에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요구했고 그 권리를 확장해 왔다.
우리는 현재 굉장히 크고 폭발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는 초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문제다. 한편에서는 테러라는 통제되지 않는 초국가적인 폭력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폭력을 정당하게 독점하는 존재가 없다.
우리의 과제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폭력을 어떻게 정당하게 독점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다툼의 핵심에는 결국 '누가 폭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존재한다.
현재는 그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는 가장 힘이 센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은 현실적으로는 폭력을 독점하는 존재이지만, 정당성이나 합법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더 나은 국가를 향한 노력도 필요해, 진보정당 꼭 필요해**
질문 : '정당한 폭력'이란 것이 가능할까? 작스 선생의 고국인 독일은 국가가 끔찍한 폭력을 행사했던 나라 중 하나다.
작스 : 인정한다. 지난 세기 유럽만큼 국가에 의해 폭력이 자행된 곳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폭력의 사유화가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알 카에다가 그 예가 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알 카에다는 현재 초국가적인 기업처럼 활동하고 있다. 알 카에다는 경계 없이 여기저기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자기들이 행동을 벌일 수 있는 가장 조건이 좋은 곳에서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 국가가 설사 심한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그것이 사유화된 폭력보다는 덜 나쁘다. 이것이 내가 국가를 인정하는 이유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나는 독일 사람이다. 독일 사람은 헤겔 이후로 국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웃음)
질문 : 작스 선생은 '국가가 어떤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국가는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정부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당신의 얘기는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전통이 확립된 독일의 현실 조건 하에서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작스 : (웃음) 선생의 의견을 인정한다. 이탈리아 사람인 내 아내는 이런 국가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웃는다.
나는 내 경험을 통해 얘기를 하고 있다. 내가 성장한 전후의 독일은 시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 시민들은 그런 국가에 대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경험 때문에 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지탱하는 국가를 선호하는 것이고, 국가가 없는 상태를 지향하기보다는 더 나은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질문 : 아까 한국에서 노동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얘기를 했다. 한국의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은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를 정부나 의회의 대의 기능이 미흡하다는 데서 찾고 있다. 정부나 의회가 기득권의 카르텔을 형성해, 노동자·농민·사회적 소수자를 비롯한 약자들의 목소리를 전혀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독일의 사회민주당이나 녹색당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정치 운동이 존재한다. 민주노동당 등이 그것인데, 아직 현실적인 힘은 미약한 상태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스 : 여러 번 강조했듯이, 좀더 나은 국가를 만드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진보적인 정당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질문 : 남북 관계나 국가에 대한 작스 선생의 얘기를 들으면서 작스 선생의 태도가 '굉장히 조심스럽고 다중적인 대응을 모색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이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일단 이런 작업을 한 것 자체가 요하네스버그 지구정상회의를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작스 선생의 생각을 요약해보자. 당신은 우리가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중심에 놓되, 국가와 국가로 이루어진 국제 관계의 틀을 좀더 좋게 만드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북관계에 대한 조언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는다. 남북관계가 틀어질 경우, 한국의 환경운동이나 진보 진영이 쌓아온 많은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작스 : 그렇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좀더 솔직히 얘기하면 나는 국가에 대한 전통적인 좌파들이 가진 생각이 상당히 옳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내놓은 국가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지배 구조 중에서 국가보다 더 매력적인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국가의 틀이 가장 최선의 것이다.
아나키즘이나 자유주의(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가능하면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사회 개개인의 자율 능력을 신장해 자치의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는 것은 확실히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국가를 없앰으로써 폭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어떤 형태가 민중들을 폭력의 지배로부터 보호하고 또 민중들이 그것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생태적 실천은 아래로부터 확산되는 것**
질문 :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겠다. 환경운동이 녹생당과 같은 정당을 통해 의회에 진출하는 데 주력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스 : 이것은 다른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환경운동이 제기하는 생태주의적인 문제제기는 궁극적으로 의회로 대표되는 대의민주주의를 위기로 가져갈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이기적인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조정하는데, 근원을 두고 있다. 지주나 자본, 노동 등이 자기들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을 조직해 의회에서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서로 경쟁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태주의는 다르다. 생태주의의 이해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해가 아니라 인류의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운동의 물음은 모든 새로운 형태의 물음에 다 해당된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도 그렇다. 여성운동이나 발전에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 등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해와 관계된 것이 아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각각의 계급을 위해서 의회에서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기존 패러다임은 환경운동이나 생태주의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의회와 거리를 둔다.
의회 정치는 궁극적으로 환경운동이나 생태주의 운동의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환경운동가와 생태주의자들은 지역이나 직업, 언론, 학문 등 각자가 발 딛고 선 현장에서 사고의 변화와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모색하고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넓은 의미의 문화적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건대, 좁은 의미의 의회 정치는 생태주의와 맞지 않는다. 한 가지 예로 답변을 마치겠다. 지난 20~30년간 가장 중요한 정치운동은 여성운동이었다. 그러나 여성운동은 서구에서 정당 같은 의회 정치의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 아니다. 여성운동은 이런 흐름에서 비켜나 아래로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활동을 전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느 누구도 여성운동을 피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환경운동도 마찬가지다.
질문 : 방금 말씀하신 지향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런 언급은 녹색당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독일의 현실을 염두에 둔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작스 :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환경운동이나 생태주의 운동은 현실 정치 이전에 문화와 문명을 변환하는 굉장히 장기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좁은 의미의 현실 정치와 환경운동이나 생태주의 운동을 등치시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사빠티스타 운동 내부, 개발 사이에 이견이 존재해**
질문 : 최근 가장 주목받은 반세계화 운동 중 하나는 멕시코의 사빠티스타 운동이다.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스 : 사빠티스타 운동은 반세계화 운동을 촉발한 상징적인 흐름이다. 그들은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는 것과 같은 시점에 자기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이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그 운동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반식민주의'다. 치아파스 지방의 원주민들은 멕시코의 식민주의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세계화에 종속되는 것에도 반대하고 있다.
그 안에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는 개발 쪽으로 나아가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반개발 쪽으로 나아가는 방향이다. 전자는 치아파스 지방에도 개발의 열매를 끌어들이자고 주장하고 있고, 후자는 치아파스 지방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를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질문 : 사빠티스타 운동 내부에 친개발과 반개발이 있다는 얘기는 아주 생소한 얘기다. 좀더 자세하게 얘기해 달라.
작스 : 물론 나는 사빠티스타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치아파스 지방에 가본 적이 없다. 그 정보는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것이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사빠티스타 운동의 일부에서는 '더 많은 학교, 더 많은 병원, 더 많은 석유 개발 이득을 치아파스 지방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또 다른 쪽에서는 '우리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병을 고치고, 아이들을 키우고, 석유 같은 것은 전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질문 : 우리는 후자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작스 : 여러분을 실망시킨 것 같아서 안타깝다.
***여성,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해**
질문 : 아까 여성운동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얘기했다. 남성만 참여했을 때와 여성이 함께 참여했을 때 도시계획의 양상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결과가 있다. 여성이 참여할 경우, 도시계획의 세세한 모습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쪽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도시계획을 할 때 꼭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참여하도록 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독일의 사정이 어떤지 알고 싶고, 이런 사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작스 : 맞는 말이다. 나는 여성의 참여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고, 그게 독일의 도시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현재 독일에서는 여성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그리고 그것이 독일을 좀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데 확신한다.
또 독일에서 나온 연구들은 '도시계획의 상당 부분이 자동차를 타는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큰 문제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도 인구의 절반만이 자동차에 접근할 수 있다. 수입이 적은 사람, 여성, 어린이, 노약자는 자동차에 대한 접근 능력이 없다. 그 얘기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계획이라는 것이 체계적으로 국민의 절반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는 도로는 자동차를 모는 남성들의 삶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대신, 그 접근이 차단된 여성, 노약자들에게 나쁘게 작용한다.
도시에 대한 토론, 누구를 위한 도시계획인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여성, 노인, 어린이, 청소년, 자동차가 없는 사람들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를 더 해야 한다.
***이반 일리치는 27년의 스승**
질문 : 작년 12월 2일 20세기의 위대한 생태주의 사상가인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가 독일의 브레멘에서 타계했다. 그 때 당신은 장례식에 참석했나?
작스 : 물론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금년 12월15일부터 이반 일리치의 1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독일의 브레멘에서 열릴 예정이다.
나는 이반 일리치를 27년 동안 알고 지내는 특권을 누렸다. 작년에 그가 운명한 후, 8시간 후에 나는 그를 찾았다.
그는 오후 2시에 운명했다. 그때 그는 여학생 한 명과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여학생이 한 30분 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세상을 등졌다. 여학생이 돌아왔을 때 그는 소파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의 기준에 비춰봤을 때 그의 죽음은 '좋은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틀 반 동안 소파에 누워 있었고, 그의 주변에는 촛불들이 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그의 곁에서 한 시간 정도씩 머무르면서 그와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그 분위기는 진지하고 침착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아주 유쾌한 것이었다. 그 후 가톨릭 식의 장례식이 있었고, 우리는 그를 보냈다.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이반 일리치가 16년 전부터 암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왼쪽 뺨에 큰 혹이 있었는데, 10여 년 전부터 굉장히 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했었다. 그렇지만 그의 죽음이 이 혹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죽음은 보통 사람이 죽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질문 : 이반 일리치는 종양에 대해 진단 받는 것을 거부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볼프강 작스 : 수년 전부터 이반 일리치는 이름 있는 의사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 의사들은 이반 일리치에게 "3일이면 그 혹을 깨끗하게 제거해 주겠다"고 제안하곤 했다. 그는 물론 이런 제안을 거절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반 일리치는 '의학은 치료를 할 수 있지만 죽음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암이 자기한테 오고, 그게 죽음을 가져온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암 치료는 종종, 자주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는 1970년대 중반에 아주 유명한 현대 의학을 비판하는 책(<병원이 병을 만든다>)을 쓴 적이 있다. 그 책에서 그가 말하고자 한 의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판은 '현대 의학이 인간으로부터 죽음을 탈취해 간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굉장히 일관성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현대 의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거리를 뒀기 때문이다.
질문 : 작스 선생도 나중에 암에 걸린다면, 진단을 거부할 것인가?
작스 : (잠시 주저한 후 웃으면서) 모르겠다.
질문 : 아주 솔직한 대답을 해 줘서 감사하다.
작스 : 이반 일리치의 이름이 한국에서 유명한가?
질문 : 이반 일리치의 사상은 김종철 선생과 <녹색평론>을 통해서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의 중요한 저작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번역돼, 현재 5권 이상의 책이 번역된 상태다.
작스 선생은 이반 일리치의 어떤 점에 특별히 호감을 가지고 있는가?
작스 : 그의 사상이 저에게 어떤 점에서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는 발전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서 예민하게 만들어줬고, 그런 것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영감을 제공해줬다.
질문 : 이반 일리치에 대해서 좀더 얘기를 해보자. 작스 선생의 주장에는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많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감명 깊게 읽은 작스 선생의 글 중에 "지금 우리들의 큰 과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빈곤에 시달리는 많은 이웃들을 어떻게 환대(hospitality)하면서 동시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 것인가'이다"란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환대'라는 개념은 이반 일리치의 독특한 개념이다.
그러나 작스 선생과 이반 일리치 사이에는 큰 거리도 있다. 단적으로 이반 일리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의 사상이 너무 급진적이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작스 선생의 활동은 <요하네스버그 비망록> 등에 잘 나타나 있듯이 아주 현실적인 정책 제안으로 연결된다. 특히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의 5장에서는 외교적인 노력, 정부와 NGO들 사이의 교섭 등에 대한 믿음을 전제하지 않으면 내놓을 수 없는 실천적인 정책 제안들이 들어있다. 이것은 이반 일리치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작스 : (웃음) 나와 이반 일리치에 대해 정말 잘 관찰했다.
사실 이반 일리치는 나의 활동을 비웃을 것이다. 일리치가 <요하네스버그 비망록>을 본다면 비현실적인 애들 장난으로 간주할 게 뻔하다. 이반 일리치는 어떤 형태든 지구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지구적으로는 절대 생각할 수 없고, 단지 통계를 통해 생각하는 시늉만 한다고 보았다. 그는 생각하고, 경험하고, 함께 실천하는 것은 자기가 사는 바로 그곳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겼다. '지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과 모순된다.
이반 일리치는 또 정치적인 활동에 대해서도 경계를 했다. 독일 그린피스 본부는 함부르크에 있다. 나는 함부르크에서 부퍼탈로 오는 중에 종종 중간에 있는 브레멘에 내려 이반 일리치를 방문했다. 그 때마다 일리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그린피스에서 일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정치적인 행동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그린피스가 하는 일이 굉장히 고상하지만, 유머가 없다'고 지적하곤 했다.
그에게 그린피스라고 하는 것은 세계를 경영하는 한 가지 형태에 불과했다. 그게 대안적인 것이든, 반체제적인 것이든 간에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만을 신뢰했다. 그래서 그는 죽기 10여 년 전부터 우정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정말 진정성 있는 경험에 대해서 고민을 진전시켰다.
질문 : 이반 일리치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묻겠다. 이반 일리치는 우정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는데, 그것은 지난 10년 동안의 생각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일리치가 다른 형태로 제기하고 있었던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이반 일리치는 현대 문명을 '자급적 삶의 방식(subsistence)'에 대한 파괴라고 지적했다. 이 '자급적 삶의 방식'은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라고 정의내릴 수도 있는데 이것은 작스 선생이 지적한 우정과 일맥상통하다.
작스 : 내가 보기에 이반 일리치의 사상은 크게 다음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땅에 발 디디고 서 있는 개인의 자율성을 기관(institution)에 대항해서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반 일리치는 학교에 대항해 독학을, 의학에 대항해 돌봄·치료를, 자동차에 대항해 걷는 것을, 텔레비전에 대항해 보는 것을, 스피커에 대항해 듣는 것을 옹호했다.
그는 사회적 기관이든 기술적 기구든 간에, 그런 것들이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원초적 기능을 빼앗고, 다양한 서비스를 독점하는 것에 대해 항상 불안해했다. 그는 이런 기관들이 사람을 압도해 서비스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에는 움직임을 압도해 사람들을 단지 승객으로 만든다. 학교의 경우에는 배우려는 자발적인 개개인의 계기를 뭉개고 학생들을 배워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텔레비전의 경우도 사람을 단순한 대상으로 간주한다. 결국 인간이 사라지고 온갖 기관이 인간의 행동·감정·사고를 프로그램해 거대한 기관의 부속물로 만든다는 지적이다.
***아래로부터의 설득만이 정부의 정책 방향을 바꿔**
질문 : 이반 일리치에 대한 인상적인 얘기 잘 들었다. 다시 어려운 질문을 던지겠다. 개발주의를 버리지 않는 한국 정부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한국의 환경운동에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은가?
작스 : 일반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라.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다른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정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제외하고 핵에너지 정책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이것이 큰 흐름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전개된 반핵운동이 사람들을 설득한 탓이다. 또 독일에서 새로운 고속도로, 매립지를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다. 주민들이 정부의 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처럼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정부는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정책'이 문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10년이 지나면 석유 매장량은 줄어들 것이고 이후 석유 가격은 폭등할 것이다. 그럼 한국 경제는 더 어려워진다. 가장 보수적인 정부도 이런 논쟁을 피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핵에너지로 갈 것인가? 그것은 원료를 원거리에서 이동해 와야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핵기술에 의존해야한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세계의 어느 곳도 핵폐기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공공의 토론을 유발시켜야 한다. 이 토론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재생가능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 그것은 곧 정부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부는 결국 농업, 에너지, 발전 방향과 관계된 정책을 바꾸게 될 것이다.
발전에 대해서도 첨언을 해보겠다. 미국은 가장 부유한 국가지만 15%가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화가 일정 수준에서는 가난을 없앨 수 있지만, 결국 환경에 대한 비싼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미 많은 자연을 희생하고 일정 부분 부를 획득했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좀더 주의 깊게 성장하는 문제, 주의 깊게 산업화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환경운동에 대해서는 아주 가벼운 제안을 하나 해보겠다. 우리는 환경운동, 생태주의 운동을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것으로 대중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나는 더 나은 먹을거리를 추구하는 운동이 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음식의 질을 즐기게 하자. 많은 사람들은 이미 살찌게 만드는 음식, 건강에 안 좋은 음식에 질리고 있다. 대신 좀더 건강에 좋고, 지역에 기반을 둔 음식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자.
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도시를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지를 고민할 수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도시의 자동차를 도시에서 줄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대중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그 의도가 불순한 책**
질문 : 한국에서는 최근 <회의적 환경주의자>란 책이 번역돼, 언론이 중요하게 다뤘다. 이 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도 촉발돼 여러 차례의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독일에서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가?
작스 : 그 책은 독일에서도 번역이 돼 나왔지만, 반응도 시원치 않았고 그 책의 주장에 대해서도 거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 동안 그 책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반론과 평가가 있었다. 심지어 덴마크 정부 산하 '과학적 부정직성 검토위원회'에서 '부정직의 범주에 해당한다'는 평결을 내리기도 했다. 나는 이런 부정적인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더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책에 나온 신통치 않은 주장과 내용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했고, 그 책 역시 그것을 의도했다는 점이다.
***언론, 환경문제 접근할 때 대안적 가치를 추구해야**
질문 : 마지막 질문이다. 한국의 언론은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아주 호의적으로 소개했다. 또 각종 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정부나 개발주의자 편에 설 때가 많다. 한국 언론의 이런 태도는 한국에서 생태주의나 환경문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언론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작스 : 과학이나 지식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다. 그것은 모두 어떤 가치를 지향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언론의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양한 과학적 사실과 정치·사회적 사실들 사이에서 대안적 가치를 끄집어 독자들에게 제대로 소개를 해줘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이 한국 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매체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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