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창간한 뒤 12년 동안 <녹색평론>을 내면서, 국내 생태ㆍ환경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쳐왔던 녹색평론사가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등과 함께 21세기 우리가 가야할 근본적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연속 강좌를 개최한다.
녹색평론사는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9월부터 매월 새로운 문화, 삶의 양식, 사회조직 원리를 탐구하는 데 헌신해온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철학자, 전문가, 이론가, 활동가들을 초대해 <21세기를 위한 연속 사상강좌>를 개최하기로 했다.
첫 강좌가 열리는 9월29일에는 일본 나가사키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토다 키요시가 "환경과 평화의 세기를 위하여"란 제목의 강좌를 한다. 토다 키요시는 <환경정의를 위하여>(창작과비평사 간), <환경학과 평화학>(녹색평론사 간) 등의 저서가 국내에 소개된 사회학자로, 오랫동안 평화와 환경을 화두로 환경 운동, 반핵 운동, 소비자 운동을 이끌어 왔다.
***"21세기 새로운 대안을 구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해"**
<녹색평론>을 발행하는 김종철 영남대 교수를 비롯한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 운영위원회는 현 시점에서 "인류는 극히 불안한 사회적,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런 절망의 현실에서 지식사회가 '전문가주의'라는 편협한 시야에 갇혀, 기성체제와 주류문화를 옹호하는 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운영위원회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진 새로운 대안을 구상할 수 있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상의 힘"이라면서 "새로운 삶의 가치와 방식을 탐구하는 일"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운영위원회는 이번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가 "국내외에서 개별적으로 또 산발적으로 이루어져온 다양한 새로운 생각과 실천들을 결집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운영위원회는 9월의 토다 키요시에 이어, 10월에는 <오래된 미래>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르-호지의 강좌를 개최할 예정이며, 그 이후에도 반다나 시바 등 생태ㆍ환경운동과 반세계화 운동 등 실천적인 활동을 이끌면서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확립하고 있는 이들을 초청할 예정이다.
토다 키요시의 첫 강좌는 9월29일 오후 3시, 영남대학교 인문관 101호에서 개최된다.
다음은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 개최사 전문.
***지금은 위기의 시대이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이다. 지금 21세기 초두의 시점에서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 우리의 인간다운 생존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뿌리로부터 흔드는 극히 불안한 사회적,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적어도, 지난 세기까지 인류 문명사회를 조직해온 기본원리인 근대적 가치와 세계관이 더이상 우리의 삶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수백년간 사회적 진보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경제발전과 그것을 뒷받침해온 과학기술의 논리는 이제 기후변화, 자원고갈, 생태계 오염 및 파괴 등 가공할 환경재앙 앞에서 명백히 그 유효성과 타당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에서의 생태학적 위기는 결국 지금 이 세계의 경제, 정치,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화 경제의 논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이후 미국이 추구해온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세계화의 논리는 모든 다른 사회적 조직원리를 압도하는 패권적 지위를 누리면서, 지구 도처에서 토착적 문화양식과 풀뿌리 민중의 자치적 역량을 빠른 속도로 훼손해왔고, 그 과정에서 오랜 세월 유지되어온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급격히 소멸을 강요당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생태적, 사회적 위기에 정당하게 대응하려는 노력에 진력하는 대신에 세계의 주류를 표방하는 정치, 사회세력은 오히려 전례 없이 호전적인 자세로 군사적 모험을 감행하고, 그로 인해 지금 세계평화는 테러와 전쟁의 악순환에 빠져들어 혼돈을 되풀이하고 있다.
어느모로 보나, 이것은 절망적인 현실임이 분명하다. 사태를 더 어둡게 하는 것은, 이러한 절망의 현실에 직면하여 마땅히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오늘의 지식사회가 전문가주의라는 편협한 시야에 갇혀, 기성체제와 주류문화를 옹호하는 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오늘날 급속히 발달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자본과 국가의 요구에 순응적인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장기적으로 볼 때, 인류에게 구원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저주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테크놀로지와 군사기술의 첨단화에 헌신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독립적인 과학자 자신들에 의해서 지적되고 있는 사실이다. 이들 양심적인 과학자, 지식인들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이상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포스트휴먼의 세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경고를 발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지식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는, 역사적 전환기에는 늘 그래왔지만, 특히 지금과 같은 가치척도의 근본적인 변환이 요구되는 시대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긴급히 필요한 것은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진 새로운 대안을 구상할 수 있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상의 힘이라고 믿는다. 한 사람의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소수의 견해가 되고, 그것이 드디어 다수에 의해 공유될 때, 그 아이디어는 한갓 몽상이 아니라, 매우 강력한 현실의 힘으로 전환된다는 이치를 생각할 때, 지금 우리가 닥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삶의 가치와 방식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사상적인 성공을 거두느냐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를 계획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계획이 의도대로 실현된다면, 그동안 국내외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산발적으로 이루어져온 다양한 새로운 생각과 실천들을 결집함으로써 적어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딘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얻는 데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세계의 생태적, 사회적 위기에 직면하여 세계 곳곳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창조적인 대안을 모색하려는 운동과 실천과 이론이 꾸준히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다만 이러한 움직임을 대표하는 사상가, 활동가들을 한자리에 연속적으로 초대함으로써 이러한 창조적인 움직임의 전체적인 윤곽을 집약적으로 그려보려는 것인데, 그와 같은 연속강좌의 결과로서 우리에게는 21세기를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데 진실로 필요한 지혜와 힘을 주는 믿을 만한 사상적 지도가 마련되는 행운이 주어질지도 모른다.
그러한 기대가 가능한 것은, 우리가 이 강좌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사상은 현실과 유리된 연구실과 실험실을 근거로 하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지적 유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늘날 인류사회가 당면한 핵심적인 위기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요구에서 나온 철저히 실천적인 활동들과 결부된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구상하는 이번의 사상강좌는 종래 대학에서 관례로 되어온 이른바 엘리트 지식인들 중심의 난삽한 지적 향연이 아니라, 철저히 현장중심의 시각에 뿌리박은 보다 실천적인 지식인, 사회운동가들의 긴장된 의식과 고통과 열정이 상호 교류되는 살아있는 교육적 실험의 장이 될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재 새로운 문화, 삶의 양식, 사회조직의 원리를 탐구하는 데 열정적으로 헌신하면서, 널리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철학자, 전문가, 이론가, 활동가들을 주로 초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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