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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9월 18일, 9시 18분이 특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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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9월 18일, 9시 18분이 특별한 이유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국치일(國恥日)을 기억하라

친일의 길

필자는 십수년간 만주지역 사적지 실태조사를 다니면서 현장에서 느낀 소감을 그때 그때 보고서로 정리하여 책으로 발간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왠지 허전한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당시 한 공간에서 벌어진 독립운동과 친일의 간극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주는 한국독립운동의 안전판이자 한편으로는 일제와 결탁한 세력들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들은 어쩌면 일제의 감시와 탄압보다 밀정이나 친일파들의 눈초리를 벗어나야 했다. 그 고난의 삶을 편안한 우리가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독립운동은 '나'를 버리는 길이다. 그것도 온전히. 안중근, 윤봉길 의사가 그러하듯, 나를 버리고 온전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 바로 독립운동의 소중한 자산이자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편안한 길은 어떠한가. 나를 버리기는 커녕, 세상의 악과 결탁하여 조국에 위해를 가하고 결국 민족에게 죄를 저지르게 된다. 친일의 길은 그래서 정의나 공의와는 동떨어진 삶일 수밖에 없다. 반민족적 행위는 어떠한 이유나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흥무관학교의 국치일 기념

1911년 6월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에서 토착민들의 옥수수창고를 빌려 시작된 신흥강습소는 신민회의 '신'자와 다시 일어나는 구국투쟁이라는 의미의 '흥'자를 합한 것으로 나라를 새로 일어나게 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초기 신흥강습소의 학생은 약 40여 명이었다. 추가가 신흥무관학교 교장은 이철영과 이동녕이었으며, 본과 또는 원반과 군사학을 전수하는 특별반으로 나뉘어졌다.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 6형제와 안동의 이상룡, 김동삼 등을 비롯한 명망가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들은 사회지도층으로서 기존의 모든 기득권과 영예를 포기하고 전 재산을 바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이 사실은 한국인의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전형으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기까지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유'를 상실한 민족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민족과 조국은 동일개념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발간한 <신흥교우보>에서는 우리민족의 나아갈 길을 통해 잃어버린 조국을 찾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의 부재로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우리민족에게 국치일을 맞이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글이 <신흥교우보> 제2호에 연속으로 실렸다. 왕삼덕은 '8월 29일 기념취지서'를 통해 국치일을 눈물로 기념할 것이 아니라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신흥무관학교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많은 학생들을 배출해서 국내 진공작전을 개시하기까지 실력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1913년 유하현 추가가 교회에서 행해진 국치일 기념식에는 400여 명이 모였다. 그 가운데 40여 명의 소학교 학생들이 노래를 부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는 좀더 충격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이주 한인 중년 여성이 식지를 잘라 대한독립만세라는 혈서를 썼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하여 보시오. 나는 다른일은 못하고 집에서 자식들은 좀 길러 보았소. 또 어린 자식들이 말을 듣이 아니하여 머리를 안이비스면 이가 끼여 갂어준 적도 있어 여러분은 왜 머리를 깍었소 이가 석여서 깍었소 이곳을 올때에 밭고랑에 업드려 강낭바끄이나 베랴고 왔소 내가 이곳에 온 후 이 원수의 날을 벌써 두 번이나 지낫소그려 여러분 이날을 또 지나고 싶은 생각이 계시오"

그는 큰칼을 꺼내 기록표를 남긴다고 식지를 잘라 대한독립만세를 썼다.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이 부인을 따라 만세를 세 번 부르고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고향이 평안남도 안주군 출신인 박혜숙이라는 중년 부인의 격정적이고 파격적인 모습은 민족의 참담함을 여인의 힘으로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두고 두고 회자됐다.

중국의 국치일

오늘날 중국 대륙의 국치일은 9월 18일이다. 1931년 일본제국주의가 만주를 본격적으로 침략한 날이다. 중국은 이 때부터 1945년까지를 항일전쟁기로 부른다. 선양시 황고툰 유조호에 세워진 9.18 역사박물관에는 중국의 전 국가주석 장쩌민이 쓴 '물망국치'가 선명하게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 중국은 1931년 9월18일 랴오닝성 선양에서 벌어진 일본의 남만주철도 폭파 및 이어진 침략을 '9.18 만주사변'이라 부르며 선양에 역사박물관을 세워 일제 침략상을 알리고 있다. 사진은 9.18 역사박물관의 상징인 대형 기념물 ⓒ연합뉴스

항일전쟁시기 3500만 명의 중국인이 다치거나 죽었다. 비단 사람만 희생되었을까. 그들의 문화, 영토, 풍속 등도 상당 부분 훼손됐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날을 국치일로 정했다. 해마다 선양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방 대도시에서는 9월 18일 오전 9시 18분에 경적을 울려 이날이 국치일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1915년 5월 9일. 중화민국시기 이 날이 바로 국치일이었다. 위안스카이가 일본에 굴욕적인 21개 조약을 체결한 날이다. 소위 만몽조약으로 일컫는 이 조약으로 중국 국부의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다. 중국 곳곳에서 일화배척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또다른 치욕의 길을 차단하려 했다.

이렇게 중국의 국치일은 모두 일본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용서는 하지만 절대 잊지는 말자고 강조한다. 왕정위를 비롯한 한간(漢奸)에 대한 역사적 단죄, 만주국 황제였던 부의를 중생(重生)했던 무순전범관리소를 운영했던 중국인의 눈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친일'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애써 우리의 현실은 중국과 다르다고 자위해 보지만 과연 우리의 자화상은 어떠한가.

우리가 기억하는 경술국치

'경술국치', 나이든 세대에게는 익숙한 용어이다. 하지만 용어일 뿐이지 실생활에서 전혀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청소년들에게는 잊혀진 세월이자 먼 이야기다. 기성세대는 한일관계를 의식해서 또는 과거이기 때문에 라고 얼버무리며 국치일에 대한 아픈 기억을 애써 봉합한다. 가슴 쓰린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에게 우리의 메시지는 정확하게 전달될 리가 없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경복궁을 찾는다. 그 가운데 중국인을 비롯한 상당수의 외국인도 있다. 그들은 광화문을 지나 근정전으로 바로 가기도 하고 좌측에 자리잡은 국립 고궁박물관을 관람하기도 한다. 관람객들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부터 영조의 어진을 둘러보고 나온다. 1910년 9월 경복궁 근정전 앞에 일장기가 펄럭일 것을 조선시대 왕들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로부터 109년이 지났다. 마치 천년전의 이야기처럼 아주 먼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저마다 현실 속의 삶의 무게를 견디느라 돌아볼 여유를 찾지 못하거나 또는 아예 망각해 버리고 싶은 과거의 역사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본다.

2007년 민간단체에서 친일인명사전이 나왔다. 그 뒤 정부차원에서 친일단체 및 인명을 정리하는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아직도 법원에서는 친일과 관련된 줄소송이 판사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강제징용에 관한 한국 사법부의 결정에 대해 일본 아베 내각은 다시 한 번 칼끝을 한반도를 향해 정조준하고 있는 느낌이다. 정리되지 않는 역사의 갈무리 작업은 그만큼 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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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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