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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 日강제동원 피해자 "사실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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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온가족 日강제동원 피해자 "사실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해방 74년 강제동원 문제의 어제, 오늘, 내일

김정주 할머니(88)가 일본에 간 건 13살 때였다. 한 해 먼저 일본에 간 언니와 함께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일본인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를 기다리던 건 언니가 아니라 군복 한 벌이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도야마의 후지코시 강재공장으로 보내졌다.

나이도 어렸고 키도 작았던 김정주 할머니는 사과 궤짝 두 개를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하루 종일 쇳덩어리를 깎았다. 한참 후에야 그때 만들던 것이 비행기 발통이라는 걸 알았다. 노예처럼 일만했다. 하도 배를 곯아서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였다.

"신발을 벗고 잔 적이 없어요. 언제 공습이 있을지 모르니까. 공습이 시작되면 도망갔다가 새벽에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오는 길에 죽은 사람을 보기도 했어요. 저렇게 처참하게 죽는구나, 우리도 언제 저렇게 죽을지 모르는구나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해방된 줄도 모르고 한국에 돌아갈 땐 맡겨 놓은 돈도, 옷 보따리도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고향인 순천으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징용에 갔다 왔고, 일본에서 공부한다던 언니는 나고야의 미쓰비시 중공업 공장에 갔다 왔다고 했다. 다시 만난 언니의 손가락 끝은 잘려 있었다.

김정주 할머니의 언니 김성주 할머니(90)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를 확정 받았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 ⓒ프레시안(조성은)

강제동원, 해결되지 못한 문제

지난 14일,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주제로 한 ‘해방 74년 강제동원 문제의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주최했다.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88)는 이날 증언대에 올랐다.

근로정신대는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군수공장에 강제로 동원한 여성들을 말한다. 김 할머니처럼 '일본에서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서 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조선 여자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조선 여성은 약 7만 명으로 추산된다.

근로정신대는 한국사회에서도 방기되다시피한 문제다. 일제 강제동원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2018년 10월에는 이춘식 할아버지 등이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근로정신대'는 사람들에게 개념조차 희미하다. 몇 년 전까지 '일본군 위안부'와 혼동해 사용될 정도였다. 김 할머니가 가슴아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국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상임대표는 "근로정신대에 관한 제대로 된 진상조사나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해서는 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 제도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강제동원은 국제인권법 위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많은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했다. 강제동원된 이들은 사할린 섬 등 일본의 탄광에서 노역하거나 일본이 침략한 동남아시아와 남양 군도 지역의 군사 기지 건설 등에 동원됐다. 대부분 임금 없이 과중한 노역에 시달린 노예상태였다. 많은 수가 전쟁이 끝나고 해방을 맞이해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심지어 전범으로 희생되기도 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강제동원은 식민지배하의 불법행위라는 문제를 넘어 국제법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1904년이래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를 금지한 국제협약, 1926년 국제연맹의 노예철폐협약과 1930년 ILO의 강제노동금지협약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또 "일제 강제동원 문제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의식하고 있는 문제"라며 "1996년부터 국제노동기구는 일본이 강제노동금지 협약을 위반했다 판단하고 지금까지 수차례 일본정부를 향해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제동원 해결 문제의 쟁점은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낸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2012년에도 "일본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일본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조 연구위원은 "'불법한 식민지배'와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대법원 판결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보고 그에 따른 강제동원 역시 불법으로 본다"며 "그러나 일본법원은 식민지배를 합법적인 것으로 보고 강제동원의 근거가 된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이 한반도와 원고들에게 적용된 것도 합법적인 행위로 본다"고 설명했다.

식민지배에 관해 일본은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없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부터 2010년 간 나오토 총리가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과 사죄의 뜻을 보인 적이 있지만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나 청구권 협정에서도 식민지배나 식민지배하의 불법행위 등을 규정하지 않았다. 아직 식민지배의 법적 성격은 한일 양국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인 이유다.

조 연구위원은 "연합국에 의한 전범재판이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며 "일본은 독일처럼 스스로 자국의 법정에서 전범을 처벌한 적도, 배상판결을 내린 일도 없다"고 지적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청구권 협정이 덮어놓은 문제

야노 히데키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대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합법' '불법'의 의견 대립을 보류한 채 반공 냉전을 위해 체결된 조약"이라며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도 없고 경제원조를 이유로 대일청구권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아노 사무국장은 한국정부 또한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야노 사무국장은 "박정희 정권은 이 틀에서 후속조치를 구체화했다"며 "경제발전을 우선시하며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요구를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노 사무국장은 과거 일본제철이 가마이시 소송에서 원고인 전 징용공 유족과 화해하고 미쓰비시 중공이 나고야 미쓰비시 소송에서 원고인 여자근로정신대원과 화해를 위해 2년 가까이 협의한 것을 예로 들며 "정치적 환경이나 조건이 정리되면 기업은 화해 및 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야노 사무국장은 또 일본 기업에게 판결 수용을 촉구하는 것과 동시에 "강제동원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독일의 '기억·책임·미래' 재단의 경험을 참고해 피해자가 납득하고 기업 등도 수용하는 재단을 구상해야 한다"며 "한일 양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강제동원소송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강제동원은 한국과 일본 양국 사회가 들여다보지 않고 흘려보냈던 문제"라며 "일본 국내 법률이나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은 일본사회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며 "지금이라도 이를 제대로 해결해야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주 할머니는 증언을 마치며 "사실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일본이) 삼성이나 롯데한테 (경제 보복을 가해서)"라며 "아베는 나쁜 놈이에요. 내가 아주 치가 떨려. 아베는 우리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반드시 사죄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현재의 한일관계와 일본 경제보복 사태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정작 책임지고 사죄해야 하는 이들은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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