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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험 풍부한 60대는 성적 수치심 크지 않다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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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회경험 풍부한 60대는 성적 수치심 크지 않다는 법원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②여전히 '피해자다움' 강요하는 법원

광주고등법원(제1행정부 부장판사 최인규)은 지난 7월 17일 60대 여성 택시운전기사를 성추행한 초등학교 교감에 대한 해임처분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피해자가 사회 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이고, 진술 내용상 성적 수치심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라는 이유에서였다.

위 판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수십년 동안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은 많이 맞아서 덜 아픈 것인가', '나이들은 여성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없느냐',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강화하는 판결'이라는 등 비판을 했다. 위 판결은 나이 많은 여성(섹시하지 않은 여성), 사회 경험 많은 여성(성경험이 많은 여성)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잘못된 통념에 근거한 것이라는 혐의를 벗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위 판결을 보고 '요즘에도 이런 판결을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판결문에 등장하는 시대에 말이다. 과거 피해자의 사회적 경험, 성경험 유무, 나이를 근거로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노골적으로 법정에서 다투던 때가 있었다. 가해자들은 법정에서 대놓고 피해자가 처녀인지 물어보고, 사건 당시 피해자의 옷차림, 평소 행실까지 샅샅이 파헤쳐 무죄를 입증하려고 했다. 요즘은 최소한 대놓고 저렇게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왔는데, 위 판결을 보니 내가 너무 앞서간 게 아닌가 반성했다.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가 유발한 남성의 성적 충동으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이는 종종 성적 충동을 유발한 피해자의 행실 책임론으로 귀결되어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형을 감면받거나, 심지어 무죄를 받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야한 옷을 입었거나, 평소 행실이 방정하지 못했다거나, 남성과 데이트를 즐기며 남성과의 관계를 허락한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등 여성이 남성의 성적 충동을 유발해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 재판에서 종종 나이가 많은 여성이거나 예쁘지 않은 여성에게는 남성의 성적 충동이 생길 리가 없다면서 위 광주고등법원 판결처럼 혐의를 부정하는 논거로 인용된다.

과연 성폭력 범죄가 피해자가 유발한 남성의 성적 충동의 결과물인가. 경찰청에서 집계한 성범죄 통계 분석결과를 보면, 전체 성범죄에서 40대 이상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14. 9%(2012년), 19. 5%(2016년)에 이른다. 이처럼 성범죄 피해자 5명 중 1명은 40대 이상 중.노년층이다. 또한 여성가족부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위탁하여 수행한 '2017년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분석'(2016년 1년간 유죄판결이 확정된 신상정보 등록대상자의 판결문 분석)에 따르면, 아동 청소년 성범죄 피해자의 평균연령이 14.6세이고, 19.7%가 13세 미만의 피해자이며, 6세 이하의 피해자도 2.7%(105명)를 차지한다. 이러한 통계치는 무엇을 말하는가.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의 나이, 외모, 상황에 관계 없이 일어난다. 6세 이하의 어린아이나 70대 노인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취약한 상황의 여성들이 주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 통계치가 말해주듯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로부터 유발된 남성의 성적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피해자의 나이, 외모, 의상, 성경험 유무, 사회적 경험 등은 피해자가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인지 여부를 따지는 데 전혀 고려대상일 수 없다.

1960년대 성폭력 사건 피해여성이 억울하게 실형을 살게 된 이유는...


최근 나는 1960년대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하나 알게 되었다. 2018년 미투 열풍이 뜨겁던 때, 한 여성이 평생을 가슴에 품은 사연을 갖고 여성단체를 찾아왔다. A씨는 성폭행 피해자였음에도 오히려 남자에 대한 중상해범으로 기소되어 6개월 이상 감옥생활을 했다. 그 억울함을 평생 품고 살아오다 미투 열풍을 보면서 용기를 내서 여성단체를 찾아오신 것이다. 지금이라도 본인의 억울함을 풀 길이 있는지, 방법이 있다면 끝까지 싸워 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A씨의 사연이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라는 영화의 내용과 유사하여 깜짝 놀랐다. 배우 원미경이 주연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가정주부인 한 여성이 젊은 청년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상황에서 청년의 혀를 깨물었는데, 오히려 청년은 그녀가 자신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하고 혀를 깨물어 자신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구속된 후 1심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천신만고의 법정 투쟁 끝에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살까지 시도하게 되는 등 여성에 대한 갖은 편견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성단체를 찾아온 A씨는 사건 당시 만 19세였고 성폭력범은 25세의 청년이었다. A씨는 자신의 집 앞에서 지인과 함께 찾아온 남자를 처음 만났고 남자가 잠깐 걸으면서 이야기하자고 집요하게 매달려 집에서 150미터 정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는 갑자기 돌변하여 A씨를 쓰러뜨리고 키스를 하려고 하였고 도망가려는 그녀를 세 번이나 붙잡고 쓰러뜨렸다. 바닥에 쓰러진 A씨는 실랑이 끝에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온 남자의 혀를 깨물어 혀가 일부 절단되었다. 며칠 뒤 남자는 A씨가 자신의 혀를 끊었다는 이유로 1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그녀의 집에 침입하여 식칼로 A씨의 아버지를 죽인다고 위협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A씨 부친의 신고로 남자는 체포되었다. 남자는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자른 A씨를 중상해죄로 고소하였고, 경찰은 그녀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판단하였으나 검찰이 이를 뒤집었다. 검찰은 A씨 행위가 과잉방위라면서 그녀를 중상해 혐의로 기소하고 구속하였다.

법원은 A씨의 정당방위 주장에 대하여 강제키스로부터 처녀의 순결성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젊은 청년을 일생 불구로 만들었고, 사춘기의 처녀가 범행 장소까지 자유로운 의사로 따라간 것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소치이며, 이는 남자로 하여금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게 한데 대한 도의적 책임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초에 남자는 그녀에 대한 강간 미수나, 강제 추행으로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특수주거침입, 특수협박으로만 기소되었다. A씨는 재판 종결 시까지 130일을 구속된 채 재판을 받았고, 흉기를 들고 A씨의 집에 침입하여 생명을 위협한 남자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고, 최종 형량도 A씨 보다 경한 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처녀임을 증명해야 했고, 성폭행범과 같은 재판의 피고인이 되어야 했다. 그녀는 피고인 1, 남자는 피고인 2였다. 심지어 재판과정에서 어차피 이런 험한 일 당한 처녀가 혼인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남자도 불구의 몸으로 혼인이 어려울 것이니 둘이 혼인하라는 설득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A씨는 성폭행범과의 결혼 권유를 끝까지 거부하였고, 결국 13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구속된 채 재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한 A씨의 억울함은 평생 그녀를 지배하였고, 지워지지 않은 문신처럼 그녀의 몸에 새겨졌다. A씨는 7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 억울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여성단체를 방문했다.

처녀의 몸으로 처음 만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 죄는 A씨를 감옥에서 썩게 만들고 석방된 후에도 감옥 생활과 다를 바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했다. 1960년대의 '그녀'는 성폭행의 피해자는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죽도록 저항해야만 하는 순결한 여성 판타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감히 낯선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 그것 자체가 죄이며, 죄지은 여인이 앞날이 창창한 청년을 불구로 만들고도 결혼마저 거부하였으니 몇 달 감옥에 가두는 단죄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실화는 1980년대 일어난 일이다. 1980년대의 '그녀'는 가정주부의 몸으로 20대 청년의 성폭행을 피하려고 혀를 깨물었다가, 오히려 구속되어 재판을 받으며 유부녀가 총각을 유혹했다는 손가락질과 과거가 다 파헤쳐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재판에서 이 여성은 총각이 나이든 유부녀에게 성적 충동을 느낄 리 없다는 통념으로 시작하여 오래전 과거까지 파헤쳐져 단죄당했다. 영화 속에서 시누이의 위증이 밝혀져 결국 무죄를 선고받지만, 성폭력 피해자일 리 없는 유부녀가 청년의 혀를 깨물어 창창한 앞날을 망친 죄는 충분히 단죄되었다.

2019년의 '그녀'는 60대의 나이 많은, 사회 경험 많은 여성이기에 성폭력의 수치심조차 가볍게 취급당했다. 그녀들은 단지 조금 덜 노골적(처녀인지 아닌지)으로 공격당하지 않을 뿐, 여전히 성폭력 재판에서 피해자인지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고, 가해자에 의해 평소의 성격, 행실, 말 한마디가 까발려 지고 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그녀'들이 있기에


성폭력 피해자는 똑똑해서도 안 되며(똑똑한데 당할 리가 있나), 성폭행을 당한 후에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해서도 안 되며, 밝고 쾌활하게 살고 있어도 안 되며, 결혼한 경험(이혼 경험)이 있어도 안 된다(여전히 행실이 중요하다).

이 땅의 여성들이여 이러한 점을 잘 숙지하자. 성폭력의 피해자로 인정될 만큼 젊지 않거나, 이쁘지 않거나, 정숙(?)하게 생활해오지 않았다면 더더욱 잘 숙지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이 판결문에 기록되는 세상이 왔어도, 피해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잘 숙지하지 않고 있으면, 언제 어떻게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둔갑하게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은, 1960년대의 그녀들부터 2019년의 그녀들까지 온갖 모욕과 굴욕에도 멈추지 않고 싸워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1960년대의 그녀는 오랜 시간 기다려왔지만 오늘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2019년의 그녀들은 싸워서 성인지 감수성을 제대로 판결문에 새겨 넣었다. 그녀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법원이 성폭력 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우리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인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 사건에서 성폭행 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과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18노235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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