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대에 하던 운동을 지금 와서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는 그 일을 마친 후 원상복구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죠. 때론 100% 회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어떻게 될까요? 빨리 늙습니다. 손상의 누적에 따른 만성염증, 그리고 노화.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것 때문에 생기는 병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 앞으로의 건강관리의 기준은 보다 빠르게, 보다 멀리가 아니라, 기능의 보존과 천천히 늙는 것에 두셔야 해요."
계절에 한번 정도 운동을 하다 다쳐서 오시는 분께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책상에 앉아 며칠 간 읽던 책의 마지막 장을 읽습니다. 24번째 장의 제목은 '여섯 번째 대멸종'입니다.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섯 번째 대멸종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20년 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시작되었다. 좀 과도한 걱정을 하는 과학자들은 앞으로 500년 안에 생물종의 50%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길어야 1만 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세 번째 대멸종보다 100배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 지금까지의 대멸종을 볼 때 당시의 최상위 포식자들은 반드시 멸종했으며, 지금의 최상위 포식자는 인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규칙에 따르면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공생 멸종 진화>(이정모 지음, 나무나무 펴냄)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현생 인류 종의 나이는 20만 년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생물종은 1만15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말기에 홍적세가 끝나고 충적세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아주 행복한 한 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빙하기 사이에 존재하는 간빙기로 알려진 따뜻한 기간이 지속되고 있지요.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시간은 바로 이 시기, 지구의 시계로 보면 찰나와도 같은 순간인 셈입니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책의 구절처럼 여섯 번째 대멸종의 속도는 과거에 비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탐욕의 화신인 인간이 존재하고 있지요.
인간은 다른 생물종과는 다르게 문명이라는 것을 이룩했습니다. 자연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에 맞게 자연을 이용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여기에는 인간 두뇌의 가소성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덕분에 생존을 위한 단순한 생활상의 반복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갈수록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었지요. 그 결과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육지에 사는 모든 생물종이 사용가능한 에너지의 25~40%를 사용하는 사치스러운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발자취는 지구 전체 생태계에 영향을 주어 대멸종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현재 살고 있는 세대 정도는 환경의 오염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상황에 어찌어찌 적응하면서 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어린아이들, 그리고 미래 세대를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인간문명의 방향은 분명 전환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럼 과연 이러한 상황은 왜 벌어졌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저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직 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 생물종을 하나의 개체로 전환해서 생각해 보면, 젊을 때는 가만히 있질 못합니다. 많이 먹고 마시고 소비하고 성장합니다. 조금 더 수준을 낮춰서 세포수준으로 내려가면 쉼 없는 분열을 통해 세포수를 늘려가는데 열중합니다. 주변의 환경을 맘껏 약탈할 수 있는 상황이니 거칠 것이 없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나 많이 진행되어, 이것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세포 수준에서 벌어지는 통제 불가능한 분열(생식)의 결과가 바로 암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류를 암세포에 비유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질학적인 행운과 인간이 가진 뇌의 가소성 덕분에 지금의 인류는 어떤 생물종도 경험하지 못한 한 시절을 보내고 있음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생물종보다 급속히 번성한 덕분에 종의 미래를 더 빨리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앞서 환자에게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시점이 오면 몸과 마음을 다루는 기준점을 바꿔야 할 때가 옵니다. 좋은 유전인자를 타고 나고 나를 둘러싼 환경도 최고여서 그럴 걱정을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조금 다르게 살아야 건강과 행복의 확률을 키울 수 있습니다. 세포수준에서 말하면 생식(분열)의 스위치를 내리고 생존의 스위치를 켜는 쪽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지요.
우리 인류도 생물종으로서의 역사는 짧지만 그러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해법으로 다른 행성을 테라포밍해, 선택받은 인류가 그곳으로 이주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창백한 푸른 점으로 비유되는 이 지구란 별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생물들과 보다 조화롭게, 그리고 좀 더 오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늘 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 생물종을 관통하는 어떤 의식의 흐름이 있다면 호포 사피엔스의 정신도 스스로 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늦기 전에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개인도 생물종도 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우연에 기댄 행운은 어느 한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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