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이 아파서 죽겠어~. 밤에는 다리에 쥐도 나고. 아무 한 것도 없는데 그러네."
"맞아요. 그냥 가만있어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져서 그래요."
"안 그래도 아들이 엄마가 혈색도 안 좋고 밥도 잘 못 먹는다고 공진단 사다 줘서 먹고 있는데도 그러네."
"공진단, 좋은 약이죠. 그런데 지금 환자분 상태에는 잘 맞는다고 할 수 없어요. 비유하면 속이 안 좋은데 진수성찬을 차려준 것과 비슷해요.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나한테 맞아야 하거든요. 무엇보다 혈액 검사결과를 보니 고기를 조금 더 드셔야 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한 번에 많이 드시지는 말고 조금씩,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주 드세요. 오늘은 치료 받고 들어가시는 길에 좋은 닭이나 오리 사다가 황기랑 마늘 듬뿍 넣고 푹 삶아 드세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날씨 때문에 몸에 탈이 나서 진료실을 찾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찬 것을 먹거나 저녁 늦게 음식을 먹고 탈이 나기도 하고, 냉방이 강한 실내에 오래 있는 탓에 체온이 떨어져서 여름감기나 냉방병에 걸려서 오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환자 중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힘이 없고, 자꾸 아프고, 입맛도 없고, 소화도 안 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의 변화에 몸과 마음이 적응을 잘 못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흔히 몸이 많이 지쳤을 때 기진맥진(氣盡脈盡)이란 표현을 즐겨 씁니다. 여름철 더위에 지친 환자는 이런 상태가 되어 본래 갖고 있던 병이 악화하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기진과 맥진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진이란 기운이 다했다는 말인데, 여름철 더위에 축 늘어진 몸의 상태를 떠올리면 쉽게 연상이 될 것입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자연스레 우리 몸은 이완되고 땀을 잘 흘리게 됩니다. 높아진 기온에 적응하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지요. 그런데 근근이 신체 건강 균형을 유지하던 노년층이나 허약한 사람의 경우, 이러한 변화를 몸이 따라가지 못하게 됩니다. 즉,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할 내부의 압력이 떨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순환 능력이 떨어지고 몸은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심장과 폐의 펌프질이 온 몸의 기운을 충만하게 채울 정도로 순환시키기에 힘이 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 여름철의 습기가 더해지면 몸은 물먹은 솜마냥 무겁고, 피로가 가시질 않고, 다리가 붓는 증상이 잘 생기게 됩니다. 이럴 때 한의학은 황기와 같은 약재를 써서 순환의 힘을 높여주거나, 복령이나 창출과 같은 약재를 써서 정체된 체액의 배출을 돕도록 합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이제 맥진의 상태가 됩니다. 순환의 활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침체된 대사와 땀으로의 체액배출 등을 통해 몸을 자양할 수 있는 물질적인 부분들이 부족해지는 것이지요. 특히 호흡과 혈액의 순환을 담당하는 폐와 심장의 기능이 영향을 받습니다. 이럴 때는 단순한 에너지 공급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심폐의 기능을 키우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름철 대표적인 음료로 꼽히는 맥문동, 인삼, 오미자로 구성된 생맥산이 바로 이럴 때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기진맥진의 단계에서 더 나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탈진(脫盡)이 됩니다. 우리가 더위 먹었다고 표현하는 일사병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심하면 심부체온이 상승하는 열사병의 상태에 이르기도 하지요. 이럴 때는 빠르게 체온을 낮추고 체액을 공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응급처치와 함께 몸의 상태에 맞는 한약을 복용하면 효과적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위장기능이 떨어져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날씨가 덥고 습해짐에 따라 위장 기능이 어느 정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만, 평소에도 위장이 좋지 않았거나 더운 날씨에 찬 것과 날 것을 많이 먹고 몸을 차게 해서 문제가 더 크게 발생합니다. 한의학에서 더위로 인한 질병을 의미하는 서병(暑病)의 대표처방으로 향유와 후박, 그리고 백편두로 구성된 향유산을 꼽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위장관의 운동성을 향상시키고 운동성 저하로 인해 정체된 체액의 순환을 도와서 여름철에 지친 소화기능을 키우고자 했던 것이지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사는 것은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건강 측면에서는 불리한 점이 많습니다. 한여름과 한겨울은 환자나 몸이 약한 사람에게는 무척 괴로운 시기이지요. 하지만 ‘햇볕을 싫어하지 말고 마음에 성냄이 없어야 한다‘는 내경의 구절처럼, 변화에 맞게 적절하게 몸을 관리하고 마음을 넉넉하게 갖는다면 이 더위 또한 즐길만한 그 무엇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를 잘 다루다 보면 건강과 질병의 문제, 더 나아가 삶의 문제 또한 조금은 더 잘 다룰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직 한참 남은 더위, 여유로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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