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국이 국내총생산(GDP)의 5% 이상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한 민간 연구소의 분석에 대해 청와대가 "매우 과장된 수치"라며 진화에 나섰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민주평화당 유성엽 의원이 "한국경제연구원이 GDP의 5.4%까지 손실이 추정된다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본 적이 있다"면서 "매우 과장된, 굉장히 과장된 수치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실장은 "외국 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연말까지 0.1% 미만의 매우 적은 영향을 미치고, 상당히 장기화된다고 하더라도 (피해 폭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유 의원이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일본의 3차, 4차 보복으로 농수산물 수입금지, 금융시장 동결 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고 질의하자, 김 실장은 "금융과 농수산물 부분의 보복으로 제2의 IMF 사태가 올 수 있다는 호사카 교수의 발언에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직접 통화를 통해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판단'이라고 말했고, 호사카 교수는 앞으로는 그런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답변했다.
김 실장은 '제2의 IMF' 등의 표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20년 전과 우리 금융·경제의 펀더멘탈이 매우 다르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일본이 금융 부문에서 대한(對韓) 불이익 조치를 할 가능성과 관련해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정부 당국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강구하고 있고, 시장 불안정 상황을 데일리 모니터(일일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으로부터 예상되는 추가 사태에 대해 정부 대응책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 차원에서 세심한 사안들에 대해 다 검토하고 반영하도록 하겠다"면서 "일본이 무역 보복 조치를 취했을 때 3개 품목이나 화이트리스트 제외 자체보다도 그것을 통해 한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기업 심리가 위축되는 것에 대한 피해가 더 우려됐고, 아베 정부가 노린 게 바로 그런 부분이라 생각된다. 정 의원의 우려에 정부도 깊이 생각하고 있고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고 있지만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고 단정하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부가 외교적 해결 노력을 태만히 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공로명 전 대사 등 많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충고를 해주고 있는데, 그런 사회 지도층, 전문가들이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충고하는 말씀 중에 우리가 시도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며 "상대방(일본)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 실장은 한일 양국 기업이 참여하고 정부가 관여하는 이른바 '2+1' 방안을 이낙연 총리가 건의했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여러 제안이 있었다"며 "이 총리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아이디어를 내 주셨지만 구체적으로 제안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한국당 의원들이 '피해자 의사가 최우선이라더니 결국 피해자 단체도 정부안에 반대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자 노 실장은 "저희가 대법원 판결 이후 6~8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인 것이 피해자 설득"이라며 "저희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도출해 냈다. 저희는 피해자와 '발표해도 될 수준의 합의'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 정도는 합의했다"고 반박했다.
노 실장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와 관련해서는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결정한 일본에게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계속하는 게 맞는가 의문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면서도 "하지만 현재까지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이에 대해 "검토를 7월 18일부터 계속 해왔다.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이제 입장을 확고히 정해서 일본에 우리 정부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노 실장은 이에 대해 "이달 24일까지가 통보 시점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신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고 의원이 "(정부가) 눈치를 보면서 미적댄다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하자 노 실장은 "그런 것은 아니고, 무엇이 국가에 이익인지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노 실장은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군사협력체계를 지속하는 것에 대한 강한 희망이 있었다"면서도 "공식적으로는 (GSOMIA 유지 의견이) 전달돼온 바 없다"고 했다. 'GSOMIA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협정 아니냐'고 고 의원이 묻자 "그렇게 알고 있다"고도 했다. 다만 그는 "우리가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지는 않는다"며 "앞으로도 중재를 요청할 생각은 없다. 중재라는 표현보다는 미국의 관심, 관여 등의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일본 사태뿐 아니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중국·러시아의 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침범 사태 등 안보 사안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정태옥 의원은 전날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발언에 대해 "북핵 폐기 전에 남북 경협을 먼저 하겠다는 것이냐"며 "한일 갈등을 남북경협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김정재 의원은 카디즈 침범 사태 당일에 문 대통령이 여당 원내지도부와 오찬을 하고 다음날 부산을 방문한 일 등을 거론하며 "그야말로 천하태평이다. 오찬 등 일정을 취소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직접 소집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노 실장은 이에 대해 "(대통령은) '안보실장 주관 하에 신속하게 대응하라.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라. 카디즈 침공과 영공 침공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정확히 대응하라'고 지시를 했다"며 "NSC는 저희가 건의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오찬을 취소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부분에 대해선 강기정 정무수석이 "안보 일정은 안보 일정이고, 일상 일정은 일상 일정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김 의원은 또 러시아가 카디즈 침범에 대해 사과했다는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이 사실과 달랐다는 논란에 대해 윤 수석을 추궁했고, 윤 수석은 이에 대해 "그날 브리핑에 '러시아 (주재)무관의 말을 전달했다'고 표현돼 있다"고 해명했지만 김 의원은 재차 "러시아 무관 대변인이냐"고 공세를 이어갔다.
운영위에서는 청와대 참모들의 답변 태도에 대해 야당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김상조 실장이 '국익'을 언급한 데 대해 "청와대와 다른 의견을 내면 국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야당 입을 틀어막고 있다"며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고 주의를 촉구했다. 정양석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자꾸 그렇게 하니까 '말이 많다'고 지적을 받는 것 아니냐"고 김 실장에게 면박을 줬다.
한국당 곽상도 의원이, 문 대통령이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근무했던 기업인 고(故) 김지태 씨를 변호했던 이력과 관련해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자 노영민 실장은 "지금 말씀에 책임질 수 있느냐"고 날을 세우며 "여기서 말씀하지 말고 정론관 가서 말씀하시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국회 상임위에서의 발언은 면책특권 대상이 된다는 점을 역으로 지적한 것이다. 야당에서는 노 실장의 발언 태도를 문제삼았고, 노 실장은 잠시 후 "(곽 의원이 주장한)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재차 답변했다.
노 실장은 야당 의원들이 의사진행발언 등을 통해 답변 태도를 지적하고 사과를 요구했지만 재차 "토리게임즈 관련 발언은 고소돼 있고, 김지태 관련 (발언) 역시 고소된 걸로 알고 있다. 사법적 판단에서 사실관계가 밝혀질 것으로 본다"면서 "일본의 경제 보복을 다 국난이라고 하고 국민들은 힘을 모아서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 국회에서 말이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도 않고 고소·고발된 것에 대해 대통령을 모독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대통령은 밥도 못 먹느냐!"고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