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버스 탈 때 시간이 더 걸리니까 돈을 더 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다수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부는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봄직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펴냄)의 저자 김지혜 씨는 일부러 장애인을 차별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기에 더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장애인이 더 돈을 내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했을까.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 질서 속에서 버스의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것은 장애인의 결함이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다. 비장애인에게 유리한 속도와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이미 편향된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장애인이 돈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도적인 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차별에 무지한 이들, 즉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명명했다. 공정성에 유달리 집착하는 현세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들이 말하는 공정성에 대해 '기울어진 공정성'이라 말한다. 이들은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나고 자라 차별을 철저하게 내면화했다. 기울어진 세상에 쭉 살아서 기울어진 줄 모르는 것이다. 기울어져 있다면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이 풍경 전체를 보려면 구조 안에 있을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밖으로 나와야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은 차별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특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저자는 특권이 무엇인지 다시 짚고 넘어간다. 특권은 일부 재벌이나 고위층의 권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모든 혜택이 특권이다. 시외버스 뒷자리에 서서 퇴근하는 것도 하나의 특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시 반감을 품을 수 있는 부분이다. 아침마다 지하철 안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이며 아등바등 출근하는 내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 불편한 지하철 속에서 나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본 적이 없다. 저자는 말한다. 차별이 심해지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고. 구조가 이들의 존재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차별은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공고한 구조적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어 차별을 내면화한 것이다. 의도하지 않고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면서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상황은 직관적으로도 부당한 차별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성이 애초에 임금이 낮은 직종에 진출하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성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할까. 차별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런 선택을 할까.
저자는 구조적 차별을 공고화하는 기제중 하나로 능력주의를 꼽는다. 사람들은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면 평등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계층이 존재하고 있는 불평등한 구조는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능력주의하에서는 경쟁에서 쏟은 노력을 보상하기 위해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정의가 된다. 불평등은 정당해진다. 설령 본인이 불리한 위치에 놓이더라도, 능력도 없고 노력도 부족하다 여겨지는 집단에 대한 차별은 정당해진다. 실제로 그 능력이나 노력을 측정하는 지표조차도 편향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말이다.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부당해진다. 두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거나 실제 능력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능력주의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치가 다른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든 차별이 있어야 한다.
불평등한 사회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종용한다.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차별을 당하는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늘 불안하다. 아프거나 실패하거나 어떤 이유로건 차별당하는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차별이 공기처럼 만연하다. 저자는 그러므로 차별과 억압이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인 습관, 농담, 감정, 용어 사용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내가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차별을 지적받을 때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차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것에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증가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무의식적인 차별의식을 방어할 것이 아니라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차별에 관한 논의가 과도하고 부당하다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평등을 위해 감당해야 할 변화가 현재의 불평등보다 더 부담스럽고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그럼 현재의 불평등은 편한가"라고 되묻는다. 일상의 성찰과 함께 평등의 실현을 위한 법과 제도에 관한 논의 필요한 시점이다.
책을 쓴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 학과 교수는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한다. 그리고 사회에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법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서울특별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 헌법재판소 등의 기관에서 일했으며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공저. 오월의봄 펴냄) <인권 행정 길라잡이>(공저. 국가인권위원회 펴냄) 등을 쓰고 <헌법의 약속>(후마니타스 펴냄) <사회보장론 입문>(사회평론아카데미 펴냄)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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