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럼스펠드의 전쟁’
김재명의 뉴욕통신 <23> 출구전략 못 세워 고민하는 펜타곤 수뇌**
미국의 3.20 이라크 침공 주역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이다. 장군들을 제치고 침공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던 럼스펠드다. 그가 이즈음 흔들리는 모습이다. 그의 얼굴은 바그다드 함락 때의 여유를 잃었다. 기자들로부터 공격적인 질문을 받을 때마다 험상궂어진다. 얼굴 주름살도 더 깊어져 보인다. 침공 3주만에 바드다드를 점령했을 때만해도 럼스펠드의 권위는 막강했다. 바드다드 함락 당일(2003년4월9일) 미 하원에 출석했을 때, 그동안 그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의원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로 맞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즈음 그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고단한 처지다. 그의 입지가 흔들리는 징표는 크게 네 갈래에서 찾아진다. 첫째는 부시 행정부 내부에서, 둘째는 미 의회에서, 셋째는 군부 안팎에서, 넷째는 반전 세력들로부터다.
***“럼스펠드를 짤라라”**
첫째, 부시행정부 내부에서. 지난 10월6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안정화 그룹’(ISG)을 구성, 현재 국방부가 맡고 있는 이라크 전후처리 업무를 백악관이 직접 조정․감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ISG 책임자를 맡게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럼스펠드의 이라크 독단(獨斷)을 견제하는 모습이 됐다. 지금부터 곡 1년 뒤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부시다. 이라크 사태에 어떤 극적인 진전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낙선의 위기에 몰릴 게 뻔하다. 그런 위기감이 부시로 하여금 럼스펠드의 펜타곤을 제치고 백악관이 직접 나서도록 몰아간 것으로 풀이된다.
럼스펠드는 ISG 구성논의 과정에서 부시로부터 이렇다 할 언질을 받지 못한 채 소외돼 불만을 터뜨리며 라이스 보좌관을 비난했다. 매파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이론적 선봉을 자처하며 이라크 침공 나팔을 불어댔던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 윌리암 크리스톨도 라이스 비난에 가담했다. “라이스가 중간 조정자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이었다. 이와 관련, 럼스펠드는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백악관에 가까운 한 공화당 인사의 말을 빌려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일은 각료 자신이 대통령보다 더 세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둘째, 의회에서의 비판과 견제. 럼스펠드는 취임 초부터 미 의회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펜타곤 내에서 의회 업무보고를 담당하던 인력을 줄이고 의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무시하곤 했다. 이를테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국방부에 공군의 보잉 민항기 임대계획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펜타곤은 “의회에 알릴 만큼 다 알렸다”며 거부했었다. 그런 앙금이 이라크 사태 혼란과 맞물려 럼스펠드에게 비난이 부메랑처럼 돌아가는 모습이다. 낸시 펠로시(하원 민주당 원내총무)를 비롯한 의회내 비판세력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정책을 결정하는 데 관여한 참모들을 해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래야 동맹국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의회 비판자들의 시각에선, 럼스펠드는 부하인 월포위츠 부장관과 함께 ‘짤려져야 할 인물’의 0순위다.
***장군들보다 전쟁을 잘 안다?**
셋째, 군부 안팎에서의 비판. 군부와 럼스펠드 사이의 불화와 갈등은 부시행정부 출범 때부터 시작돼 이제는 골이 파일대로 파인 상태다. 럼스펠드는 “성격이 사납고 요구하는 것이 많은 까다로운 인물”이다. 그는 펜타곤 고급장교들이 올린 보고서들을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무려 7번이나 다시 쓰라고 물린 일도 있었다. 펜타곤 장성들은 럼스펠드와의 업무회의를 가시철망에 얼굴을 비비는 것과 같다”고 입을 모은다. 럼스펠드 자신도 그런 부분을 인정한다. “때때로 나는 되풀이해서 어떤 사안을 강조한다. 풍선을 찔러 터뜨릴 때 두 번 찌르는 걸 좋아한다고나 할까...” 올 10월에 나온 럼스펠드에 관한 한 평전(『럼스펠드, 개인적 초상화』)에 따르면, 군장성들은 ‘마취제 없이 이빨을 치료하는’(root canal without novocain) 것과 같은 마음고생을 겪었다(<월간중앙> 11월호 필자가 정리한 평전 요약본 참조 바람).
1970년대 중반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최연소 국방장관(1975-77년)을 지냈고, 25년만에 다시 국방장관에 올랐던 럼스펠드다. 그 나름의 독특한(어떤 의미에선 괴팍한) 개성과 신념을 지닌 인물이다. 포드행정부 시절, 헨리 키신저 국무는 럼스펠드 국방을 가리켜 ‘위태로울 정도로 숙련된 관료주의자’(dangerously skilled bureaucrat)란 평가를 내렸었다.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뒤 세계적인 제약회사 설(Searle)의 대표(1977-85년)로 있을 때 럼스펠드는 부하직원들 목 자르기로 악명을 떨쳤다. 그의 독선적 리더십은 펜타곤의 장군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토마스 화이트 육군장관과 에릭 신세키 참모총장이 물러난 것도 맥락에서였다.
럼스펠드는 장관 취임 초부터 펜타곤 내에서의 문민 우위를 강조하며 군기 아닌 문기(文氣)를 잡아왔다. 이라크 침공 초기 한동안 포로가 생겨나는 등 지지부진하자, 럼스펠드에 적개심을 품는 미 퇴역장성들과 군사평론가들은 한결같이 그를 비난했었다. 그들은 “이번 전쟁은 명백히 위험한 전쟁이다. 미군은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게될지 모른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바그다드 점령 성공으로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럼스펠드에 대한 군부 안팎의 비판은 현재 이라크의 혼란스런 사태와 관련,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다. 그 비판의 가닥은 폭로전문기자 시무어 허시의 지적처럼 “럼스펠드는 스스로 장군들보다 전쟁을 잘 안다고 여기고 독단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넷째, 반전세력들의 비판.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비판이 단순한 반전운동가들뿐 아니라 우파로까지 확산되면서, 그 과녁이 럼스펠드와 그의 핵심참모인 월포위츠 부국방으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 10월15일 케네스 월츠(컬럼비아대 교수, 국제정치학)를 비롯, 우파에서 중도좌파에 걸친 미 국제전문가 44명이 반네오콘(anti-neocon) 선언을 통해 부시 미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위험한 제국주의’로 규정한 것도 그 한 보기다. 이들은 발기문에서 “우려스런 제국주의 성향들이 미국의 전세계 군사지배를 다짐한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다”며 미국의 군사패권 추구가 결국 자기 파멸적이라며 럼스펠드를 비롯한 부시행정부 내 매파들을 맹공했다.
***“길고도 고된 강행군“**
이라크전쟁 승리 뒤 6개월. 아직도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펜타곤 2인자인 월포위츠 부국방이 최근 바드다드 방문길에 머물고 있던 호텔이 공격을 당해 사상자가 생겨날 정도다. 그러나 럼스펠드는 자신에 대한 비판자들이 이라크 혼란상을 과장한다고 못 마땅해 한다. “지금 바그다드의 상황은 만족스런 모습이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미국 도시들에서 벌어지는 살인 강도 방화 등 강력범죄들과 떠올린다면, 그리고 인구 5백만에 이르는 대도시 바드다드의 크기와 견준다면, 바그다드는 세계 어느 도시 못지 않게 안정적인 도시라 말할 수 있다”(평전 『럼스펠드, 개인적 초상화』).
럼스펠드는 이 혼란이 승리 뒤의 일시적인 것이라 여기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현실을 장밋빛 환상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을 그는 깨닫고 있다. 럼즈펠드가 지난 10월16일 핵심 참모 4명(폴 월포위츠 부장관, 펜타곤 서열 3위인 더글러스 페이스 정책담당 차관,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 피터 페이스 합참차장)에게 비관적인 내용을 담은 메모를 내려보낸 것도 그의 초조함을 되비춘다. 그 메모에서 럼스펠드는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어떻게든 이기겠지만, 이는 길고도 고된 강행군이 될 것”이라 적었다(이런 메모가 외부로 유출돼 <USA 투에이>에 실린 것도 럼스펠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펜타곤 내부 세력이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국제정치학자들이나 군사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명확한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단 후세인 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린 럼스펠드는 그런 출구전략을 뚜렷이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에 주둔 중인 13만2천명의 미군이 철수할 시점은 불투명하다. 럼스펠드는 “1년 뒤는 물론이고 6개월 뒤의 미군과 연합군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럼스펠드가 그의 월포위츠 부장관으로 하여금 최근 3박4일 일정으로 이라크 현지 상황을 파악하도록 보낸 것도 답답함을 드러내는 징표다. 럼스펠드와 월포위츠의 최대현안은 미국의 전쟁비용과 병력 희생을 최소로 줄이면서 이라크 수렁에서 빠져나올 출구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모든 것이 안개 속이다.
***월포위츠에 업혀 일 저질렀다?**
그렇다면 멀지 않은 시점에서 럼스펠드는 혼란스런 이라크 사태의 책임을 떠안고 주군(主君)인 부시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할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라크에 민주화된 친미정권을 세워 석유자원의 안정적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 부시와 럼스펠드의 이라크전쟁 목표다. 유대인 출신 네오콘인 월포위츠 부국방은 여기에 덧붙여 이스라엘의 국가이익을 챙겨주었다. 후세인 체제 붕괴 뒤의 이라크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안보위협이 아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스라엘이 바라던 대로 중동의 군사적 균형은 이미 무너졌다. 그래서 일부 반전론자들은 “럼스펠드가 유대인인 월포위츠에 업혀 이라크 침공이란 큰 일을 저질렀다”고 풀이조차 내놓는다.
분명한 진실은 부시-럼스펠드-월포위츠, 이들 세 사람은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이다. 비록 백악관 안에 ‘이라크 안정화 그룹’(ISG)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럼스펠드가 소외되긴 했지만, 부시는 이라크 침공주역인 럼스펠드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자세로 이라크 사태 안정에 온몸을 던지길 바랄 것이다. ISG 구성에서 럼스펠드를 제친 것은 그로써 자극을 주려는 부시 특유의 리더십(?)에서 나온 것이란 풀이도 있다. 비록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부시는 그 자신의 2004년 재선을 위해 럼스펠드-월포위츠와 함께 “힘으로 미국의 평화를 지킨다”는 그들만의 일방주의 정치이념을 앞으로도 밀어붙일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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