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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에 집단으로 임신 포기 각서 쓰게 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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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에 집단으로 임신 포기 각서 쓰게 한 학교

[영남공고, 조폭인가 학교인가] 끝없는 괴롭힘, 왕따, 난임 치료 방해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대구광역시에 있는 영남공고를 심층취재했다. 현재 영남공고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떠난 수십 명의 교사 증언에 따르면, 현재 이 학교 이사장인 허선윤 씨는 사실상 학교에서 왕처럼 군림해왔다. <셜록>이 그간 취재한 내용을 <프레시안>에 함께 싣는다.

여성으로서 난임 치료 문제로 남성 교장에게 읍소해야만 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치가 떨린다. 왕따 괴롭힘도 모자라 임신까지 방해했던 이사장의 이 말은 꿈에 나올까봐 무섭다.

"내가 아버지처럼 너를 대했다. 아이가?"

이들의 어떤 모습은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딸처럼 생각해서 그랬다는 범죄자를 떠올리게 한다. 여성 교사들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준 허선윤 영남공고 이사장과 이상석 교장, 이 두 남자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산부인과 진단서를 들고 교장실 문을 두드렸을 때 교사 장수연(가명)의 몸은 심장보다 떨렸다. '난임 치료를 요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최대한 잘 설명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상석 영남공고 교장은 눈빛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마음을 다잡고, 건강 상태를 설명했다.

"6개월 넘게 노력을 해도, 임신이 잘 안 됩니다. 제가 난임 판정을 받을 거라고 예상 못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주사나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고 안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오후 4시 30분 이후 추가 근무만 배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게 부탁하고 배려를 구해야 하는 일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대한 저 자세로 말했다.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이상석 교장은 차가웠다. 다시 한 번 사정했다. 업무를 완전히 배제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휴가를 쓰겠다는 요구도 아니었다. 정시 퇴근인 오후 4시 30분 이후의 추가 근무만 빼달라고 요청했다.

대구광역시 소재 사립 영남공업고등학교에서 전기 과목을 가르치던 장 교사는 2016년 6월 당시, 기능지도 담당으로 오후 10시까지 학교에서 근무했다.

기능지도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주로 참가하는 기능경기대회 준비반 교육을 뜻한다. 하루 14시간, 휴일도 없는 고강도 노동은 난임 치료가 필요한 장 교사에게는 무리였다.

기능반 업무는 육아 등의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중년 교사가 주로 맡는다. 장 교사는 이례적으로 이 업무를 30대 초반부터 3년이나 했다. 허선윤 이사장한테 제대로 ‘찍혔기’ 때문이다.

장 교사의 읍소에 가까운 사정에도 교장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학기 초에 (장 교사에게) 업무를 지시했기 때문에 (업무 배려는) 안 된다. 초과근무도 근무다."

장 교사도 쉽게 물러서지 앉자, 교장은 이상한 걸 요구했다.

"네가 그렇게 정 배려를 받고 싶으면 전기과 소속 13명 교사한테 네가 난임이라는 사실을 다 오픈하고, 그 사람들과 회의를 거쳐 '동의'를 받아 와. 그러면 내가 생각은 해볼게."

▲ 이상석 영남공고 교장. ⓒ셜록

당시 전기과 부서는 장 씨를 포함해 교사 13명이 근무했다. 장 씨를 제외하고 모두 남성이었다. 장 교사는 선심이라도 쓰듯이 말하는 교장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여성에게는 난임을 오픈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민감한 일이거든요. 저보다 후배인 남자 교사들을 상대로 제 이야기(난임)를 다 오픈하고, 회의를 거쳐서 '동의'를 받아 오면 (이상석 교장이) 생각은 해보겠다는 게 저에게는 인격모독으로 느껴졌어요."

학교가 교사들의 임신, 출산을 방해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병원진단서까지 무시할 줄은 몰랐다. 장 교사는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 2016년 7월 초, 장 교사는 익명으로 대구시교육청에 민원을 접수했다.

며칠 뒤 교육청에서 장 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장 교사는 당시 교육청 장학사의 조언이 협박처럼 들렸다고 밝혔다.

"장학사가 저한테 ‘대구 수성구 기능지도 여자 선생님이면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더라고요. 제가 교장의 말을 불복종하면 항명죄로 징계를 당할 수 있다는 말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교장과 저를 중재하는 것 밖에 없다고 했어요. 장학사의 말이 저에게는 협박처럼 들렸어요."

장 교사는 장학사와 2~3차례 더 통화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당시 장 교사는 허선윤 이사장에게 찍혀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했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교감 두 명이 들어 와, 장 교사의 수업을 한 시간 동안 지켜본 적도 있다. 참관이 아닌 감시였다. 교감은 수업을 끊고 수업 내용과 상관없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사물함 안에 와이리 쓰레기가 많노?"

끝이 안 보이는 괴롭힘, 왕따, 난임 치료 방해... 장 교사는 견디지 못하고 사직을 결심했다. 영남공고에 사표를 제출하던 날, 장 교사는 행정실 직원의 권유를 못 이겨 마지막 인사차 이사장실로 들어갔다. 허선윤 이사장은 장 교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니가 어떻게 퇴사 결정을 내릴 수 있노. 대구에 아무 연고도 없는 니를 위해, 내가 얼마나 아버지처럼 대했는지 아나? 어려움이 있으면 내한테 직접 이야기하지 그랬노."

늘 똑같은 수법. 앞에서는 "아버지처럼 대한다"면서, 뒤에서는 장 교사를 따돌리도록 교사들에게 지시한 사람이 허선윤 이사장이다. 장 교사는 기가 찼다. 퇴사를 앞두고 꼭 말해야겠다 싶어 서러움을 토해냈다.

"난임 치료 때문에 업무를 배려해달라고 했지만, 교장이 거부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십니까?"

그러자 허선윤 이사장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니를 딸처럼 생각했던 내게 가장 먼저 이야기를 했었어야지."

소름이 확 끼쳤다. 장 교사는 허선윤 앞에서 더는 구차해지고 싶지 않았다. 2009년 영남공고에 입사한 장 씨는 2016년 10월에 사표를 제출했다. 퇴직 사유는 난임 치료였다.

허선윤 이사장, 이상석 교장의 임신-출산 방해는 유서 깊다. 박현숙(가명) 교사는 영남공고 면접 때 이사장과 나눈 대화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허선윤 : 아이는 우짤 생각입니까?
박현숙 : 아직 생각 없습니다.

허선윤 : 생길 수도 있지, 그걸 우찌 압니까?
박현숙 :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영남공고 전경. ⓒ셜록

허선윤 이사장은 못이라도 박듯이 말했다.

"임신하면 안 되는 거 압니꺼? 임신, 출산으로 학생들 학습권 침해하면 안 됩니데이."

허 이사장은 2013년, 2014년 계약직으로 들어온 신입 교사들에겐 아예 단체로 각서를 쓰게 했다. 영남공고에서 계약직 교사로 일한 뒤 퇴사한 정미경(가명)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최종 임용 시험에 합격한 계약직 교사들을 한 교실에 다 몰아넣었습니다. 남녀 구분 없이 선생님들이 거의 한 반 가득 찼습니다. 학교에서 근로 계약서와 함께 어떤 각서를 나눠줬습니다. 그 자리에서 각서에 사인한 뒤 바로 제출해야 했습니다."

각서에는 이런 취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병가·임신·출산 등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학습권 보호로 포장된 임신포기 각서. 정 씨의 회고는 이어졌다.

"(당시에는) 원래 각서를 쓰는 건가 싶어 서명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걸 받는 학교가 없더라고요. 문제가 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물론, 일부 교사들은 당시에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던 몇 명은 각서를 쓰지 않고 임용 계약을 파기하기도 했습니다."

연애, 임신, 출산은 성인이면 누구나 자율적으로 선택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영남공고에서 이 권리는 왕따를 부르는 화근이다. 인간의 기본권을 해쳤으니, 여러 교사의 민원으로 교육청 감사가 진행된 건 당연한 수순.

2018년 5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감사 결과를 논하기 전에, 박근혜 정권 때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의 과거 말을 복기해 보자.

"일과 가정의 양립은 저출산·저성장의 벽을 넘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이뤄야 할 사회 공동의 목표입니다. 상습적인 야근이나 불합리한 보고체계 등 잘못된 기업문화 개선을 통해 근로자들이 건강하게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 2016년 7월경 충북 미래 여성플라자에서.

강은희 교육감 체제의 대구시교육청이 영남공고를 감사한 뒤 내놓은 보고서는, 허선윤-이상석에게 주는 면죄부에 가깝다. 영남공고 절대 다수 구성원이 아는 ‘임신, 출산, 특별휴가 방해’에 대해 교육청의 감사 결과는 이렇다.

"관련자의 진술이 달라 사실 확인이 어려움."

▲ 대구시교육청 감사보고서. ⓒ셜록

특히 강은희 교육감 체제의 대구교육청이 쌍둥이 출산을 앞두고 학교를 떠나야만 했던 이선미(가명) 교사를 다룬 대목은 놀랍다.

이선미 교사는 쌍둥이 태아 상태가 좋지 않아 출산휴가를 출산 예정일 45일 전에 사용하겠다고 학교에 밝혔다. 하지만 수차례 사정을 해도 허선윤 이사장과 이상석 교장은 법으로 규정된 권리를 직권으로 금지했다. 결국 이선미 교사는 쌍둥이 태아의 건강을 위해 학교를 떠났다.

이선미 교사는 교육청 감사팀에 당시 상황을 진술하고, 많은 교사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 했다. 그럼에도 허선윤 이사장과 이상석 교장은 감사팀에 거짓말을 했다.

“저는 교사 복무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허선윤 이사장
“이선미 교사가 출산휴가를 신청한 적이 없습니다. 태아의 건강이 좋지 않아 자발적으로 퇴사했습니다.” - 이상석 교장.

여성가족부 장관 출신이 교육감으로 있는 대구시교육청은 "서로 진술이 달라 사실 확인이 어렵다"고 모든 진실을 뭉개버렸다.

▲ 강은희 교육감. ⓒ대구시교육청

쌍둥이를 임신한 몸으로 울면서 허선윤-이상석에게 읍소했던 이선미 교사.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그는 최근 <셜록>과 짧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또 울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허선윤 이사장, 이상석 교장, 면죄부를 준 교육청... 전부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마음이 아파 지금은 인터뷰를 못하겠습니다."

허선윤 이사장에게 전화로 반론을 요구하자 그는 "나는 심장이 좋지 않다, 놀라게 하지 말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뒤 일체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상석 교장을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았을 때, 그는 6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퇴근할 땐 경찰차 두 대를 불러 학교를 빠져 나갔다.

대구시교육청은 "우리는 최선을 다해 감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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