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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경제침략' 틈타 '화평법' 손보려는 자들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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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경제침략' 틈타 '화평법' 손보려는 자들 누구인가

[안종주의 안전사회] 화평법 개정 논란으로 번진 일본 '경제침략', 웃는 쪽은 일본

서울중앙지검은 23일 독성물질인 염화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사용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등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GS리테일 등 6개 기업의 전·현직 임직원 1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하는 등 관련자 34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2011년 불거진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우리 사회가 화학물질 안전에 대해 소홀히 해오다 단군 이래 최대의 참사로 기록될 만큼 심각한 상처를 대한민국에 안겼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당시 충격으로 우리는 국민적 합의에 따라 화평법, 즉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대한 법률 등을 제정해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했다.

2012년 9월 27일,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구미 제4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화학제품 생산업체 휴브글로벌에서 불화수소(불산) 가스가 유출되어 노동자 5명이 숨지는 등 모두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공장 일대의 주민과 동·식물들에 대해 엄청난 피해를 준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대표적 화학물질 누출사고이다. 기업의 화학물질 안전 관리 부실이 빚은 참극이었다.

아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사업장 내 화학물질이 사업장 밖에서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사고를 예방하며 사고 시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유해물질 관리 인력과 화학물질의 시설관리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화관법, 즉 화학물질관리법을 제정해 2015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화학물질 안전을 위한 이 두 법의 제정에 대해 당시 재계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두 사건이 준 충격이 강해 재계는 더는 버틸 명분이 없어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폭 반영하는 선에서 적당한 합의를 보았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노동자와 국민 생명을 확실히 보장하기 어려운 불완전한 내용의 법을 만든 것이다. 반쪽짜리 법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뒤 부실한 내용을 약간 손을 보는 등 한 차례 개정을 했다.

제2가습기살균제 참사 막기 위해 제정된 화평법, 일본 도발에 유탄 맞나?

어렵사리 만든 이 두 법이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제대로 시행도 해보지 못한 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재계와 이를 지지하는 보수언론이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법 제정·시행 뒤에도 화학사고가 전국 곳곳에서 끊이질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요즘도 화학공장 노동자와 인근 공장 노동자, 주민들은 언제 사고가 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불안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환경시민단체와 주민, 그리고 일부 언론이 기업의 요구를 빌미로 정부가 화학물질 안전 관리를 느슨하게 하는데 동조할까봐 우려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논란의 발단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시작됐다. 반도체 등에 핵심적으로 쓰이는 화학물질 수출 규제를 일본이 선언한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일본 아베 정부는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에칭가스' 등 화학물질 3종을 한국 수출제한 품목으로 지정했다. 모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한국 제조업의 대표적인 전략 수출 분야 제조 공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 물질이자 우리 기업들이 일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품목들이다. 일본의 이런 조치가 엉뚱하게 한국에서 화학물질 안전 관련법들을 두고 내부 갈등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다.
기업인 청와대 간담회 뒤 보수언론 화학물질 안전 관련법 후퇴 한목소리

일본의 '경제 침략' 전략에 맞서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지난 10일 청와대에서는 재계 주요 인사들을 한데 불러 모아 초청간담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고 이들의 건의 등 의견을 수렴했다. 재계는 이때다 싶어 일제히 화관법과 화평법이 기업투자를 막는 걸림돌이라며 대폭 개정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여러 규제를 개선해볼 여지가 있다는 건의가 있었다."며 "이 부분은 적극 검토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조중동과 경제지 등 보수언론은 일제히 지금의 화관법과 화평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 보도를 보면 이 두 법은 한마디로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귀태법' 내지는 우리 경제를 망치는 '악법'처럼 되어 버렸다.

<동아일보>는 12일 하루 동안 화학물질 관련 기사를 마치 융단 폭격하듯 쏟아냈다. '"화학물질 1개 등록에 수억"... 규제에 막힌 소재 국산화, '"화학물질 배합 바꿀 때마다 신고...이래서 기술 개발하겠나.", '소재·부품 국산화 막는 '망국법' 6년간 눈감더니 뒤늦게 기업 탓'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중앙일보>도 13일 '"화평법 풀면 실패한 대통령"이랬던 김상조 "규제 풀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내심 규제 완화를 환영하면서도 반어법적으로 김 실장을 비판했다.

일본의 화학물질 수출 규제 발표 이후 조중동과 경제신문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근거로 가짜뉴스에 가깝거나 왜곡된 보도를 일제히 쏟아내자 화학물질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환경부는 일일이 보도해명자료를 잇따라 냈다. 언론과의 마찰을 꺼려는 정부 부처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환경부, 일부 언론 가짜·왜곡 보도 내용 이례적 적극 반박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보면 먼저 화학물질 1개 등록에 '수억 원'이 든다는 보도에 대해 1개 물질 등록에 최소 200만 원에서 최대 1억2100만 원, 평균 1200만 원 드는 것으로 파악돼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또 기업의 등록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업체 간 공동등록 등 다양한 장치가 있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등 균형을 잃은 보도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화평법을 제정할 때 이미 기업의 부담을 고려하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화학물질 등록 기간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부여하고 있음에도 보도는 마치 올해부터 7000여 종의 물질을 일괄 등록해야 하는 것처럼 왜곡해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화학물질 등록을 위해 더 많은 시험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EU REACH, 최대 60개)보다 국내 화평법(최대 47개)이 엄격하다는 엉터리 내용과 '망국법', '족쇄', '과잉규제' 등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왜곡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한마디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애쓰다 보니 가짜·왜곡으로 점철된 보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를 늘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 이런 강한 반발 표현을 담은 해명자료를 정부 부처가 내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그만큼 보수언론 등이 일방적이고도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정부 부처에 비쳤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 반올림 등 그동안 국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화학물질 안전을 줄기차게 강조해온 환경시민단체와 산재추방단체는 재계와 보수언론의 짬짜미 같은 화관법, 화평법 대폭 개정 요구에 대해 정부가 혹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주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산업보건·화학물질 안전 전문가들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환경단체, 유럽보다 한국이 화학물질 규제 훨씬 더 약해

이들은 화관법과 화평법의 재개정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 안전이 훼손당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정미란 대안사회국 부장은 "우리 화평법은 유럽의 REACH 제도를 조금 완화한 형태로 본뜬 것이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유럽에 화학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우리보다 더 강력한 REACH를 잘 따르고 있으면서 유독 국내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일본에 비해 한국의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만인률은 3배에 달한다. 화학물질로 노동자와 시민이 목숨을 잃는 참사를 반복하는 문제를 막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며 "한번 법체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제·개정된 화관법과 화평법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한 규제 또는 기업 경쟁력 약화 등과 관련해 논란이 되거나 주요 의제가 된 적이 없다. 한데 반도체 산업 등에 쓰이는 원료물질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를 빌미로 마치 이 두 법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일본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사회 일각에서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기업과 우리 사회가 핵심 대응 전략과 방안 마련에 대해서는 소홀하고 사소한 것에 대해서만 딴죽을 거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기업과 일부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일부 야당 정치인까지 기업 편에 서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동맹' 때문에 인권과 기본권에 해당하는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기업 이익 논리에 의해 상당 부분 위협을 받는 상황, 다시 말해 1980~90년대로 산업·환경 안전 정책이 후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기업과 언론, 정치권, 정부는 곁가지가 아닌 핵심을 보아야 한다. 화관법과 화평법 개정은 일본 경제 침략에 맞설 수 있는 카드가 결코 아니다. 엉뚱한 일로 우리 사회가 논란과 소모전을 벌이게 되면 웃는 쪽은 오롯이 일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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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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