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에게 특별히 무거운 날이다. 노회찬 (전 원내)대표가 돌아가신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노회찬 대표가 최초로 교섭단체 대표가 돼서 저에게 만들어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내려놓는 날이기도 하다.
꼭 9개월 만에 마무리하게 됐다. 정개특위 위원장 자리는 특별하고 무거웠다.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정당이 된 이후 처음 주어진 위원장 자리였고, 제가 3선 의원을 하면서 맡은 첫 국회직이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정치개혁이었던 만큼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임해왔다. 위원들께서 애써 주셨음에도 선거제도 개혁은 순탄치 않았다. (위원장으로서의) 9개월은 끝없는 인내와 도전의 시간이었다."
23일 국회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심상정 위원장이 한 '이임사'의 일부다. 심 위원장은 정개특위·사개특위 위원장을 여당과 제1야당이 각각 맡기로 했던 지난 6월 28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 간의 합의에 따라 이날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심 위원장은 8월말까지로 정개특위 활동 기한이 연장된 데 대해 위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자신의 위원장 사임의 건을 "위원장으로서 진행하는 마지막 회의"에 마지막 안건으로 상정했다.
심 위원장은 안건 처리 전 한 인사말을 통해 "여야 간 원만한 합의를 이끌 수 없어 불가피하게 여야 4당 합의안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하게 됐지만 아직까지 그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위원장으로서 정치개혁 과제를 제 손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송구하지만, 새 위원장이 국민 열망을 새기고 선거제 개혁을 완수할 것으로 믿는다. (선거제도 개혁이) 표류되는 일이 없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심 위원장은 이어 "이 자리를 빌려 자유한국당 위원들께도 부탁 말씀을 드린다"며 "한국당이 요구한 '위원장 교체' 요구가 수용된 만큼,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선거제 개혁에 임해 달라. 8월말까지 합의 처리될 수 있도록 변화된 모습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신임 위원장에 홍영표 전 민주당 원내대표…"이제 결단의 시간"
여야 6.28 합의에 이어 민주당이 '장고' 끝에 지난 18일 사개·정개특위 가운데 정개특위를 선택하면서 후임 위원장에는 홍영표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선출됐다. 이날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된 홍영표 신임 위원장은 첫 인사말을 통해 "시간이 없다"며 조속한 합의 의지를 피력했다.
홍 신임 위원장은 "정개특위는 합의를 원칙으로 하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원만한 처리에 저부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저희가 8월말까지 시간이 별로 없다. 이제 여야 간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있었고, 이제 결단을 내려서 합의를 도출할 시간이 와 있다"고 말했다. "불가피하게 공직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사명감을 갖고 선거법을 비롯한 정치개혁 관련 법들을 진정성과 의지를 갖고 합의를 도출할 시기"라고 그는 재강조했다.
홍 위원장은 "심상정 전 위원장과 김종민(민주당)·장제원(한국당)·김성식(바른미래당) 간사가 작년 하반기부터 내용적으로 많은 논의를 해왔고 함께 공감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주어진 시간이 짧은 것 같지만 충분하다. 간사들을 중심으로 공식·비공식적 대화와 합의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선거법과 정치 관련 법들이 정개특위의 논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도 많다"며 "여야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 의원들 전체가 함께 참여하는 그런 과정이 돼야 한다"고 여야 지도부 간의 정치협상도 병행돼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앞서 이날 아침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도 "선거법 같은 경우에는 특히 한국당 지도부의 결단도 필요하다"며 "전향적인 자세를 가지고 협상안을 새로 마련한다든지 하는 노력을 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지금 '비례대표제(폐지), 270석'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좀 현실적인 안으로 바꿔서 논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부연했다.
특히 이 인터뷰에서 그는 '8월말 시한이 임박하도록 합의가 안 된다면 어떡할 것이냐'는 질문에 "국회는 또 국회법에 따라서 하는 절차가 있지 않느냐"면서 "최대한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고, 안 될 경우에는 또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진전시킬 수밖에 없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패스트트랙은 본격적인 논의를 위한 한 과정이기 때문에, 한국당이 진정성을 가지고 열린 자세로 논의하면 얼마든지 우리가 그 논의를 수용해서 여야 간 합의처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나"면서도 "패스트트랙을 통해서 올린 안을 중심으로 해서 여야 간 합의점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여야 4당 합의안이 논의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야 간사도 6.28 합의 후 첫 전체회의부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종민 민주당 간사는 "8월말까지 마쳐야 한다. 어떻게든 8월말까지 합의를 이뤄야 한다"며 "실질적 협상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홍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속도전에 힘을 실었다.
반면 장제원 한국당 간사는 "이 문제를 개혁 대 반(反)개혁 프레임으로 가져가지 말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개혁이고, 그것을 반대하면 반개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논의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 의원은 "패스트트랙 안(案)은 한국당의 어떤 의견도 담지 못한 안"이라고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당 정유섭 의원도 "또다시 합의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면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가세했다.
새로운 '뇌관' 된 정개특위 1소위
정개특위가 이처럼 8월말까지를 시한으로 39일간의 새 여정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본격적 논의 시작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정개특위 1소위 소위원장 문제다. 기존까지는 정의당이 위원장을, 민주당과 한국당이 각각 1·2소위 위원장을 맡았으나, 한국당은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은 만큼 1소위 위원장은 우리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여당은 정개특위 관련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민주당이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으면 한국당이 1소위 위원장을 맡기로 합의했는데 이제 소위원장을 내놓지 않겠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소위원장은 합리적으로 정리하기로 했고 합의문에 쓰지만 않았을 뿐"이라면서 "이제는 합의한 대로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하고 "소위원장을 내놓지 않겠다는 것은 선거법을 그대로 강행 처리하겠다는것 아니냐"라고 공세를 제기했다.
민주당은 '그런 합의는 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홍영표 위원장은 이날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작년 하반기 원구성을 할 때 여야 간 원칙과 기준을 세워서 상임위를 배분했고, 그 과정에서 당시 원내대표였던 제가 저희 당에서 '노른자 상임위를 많이 양보했다'고 원망도 많이 들었다. 그 결과로 정개특위·사개특위는 정의당·민주당이 (각각) 맡은 것"이라면서 "(한국당이 주장하는) 그런 논리대로라면 하반기 원구성도 무효로 하고 다시 해야 된다"고 반박했다.
홍 위원장은 또 "정개특위가 이제 한 달 열흘 남았다. 시간이 많지 않다"며 "위원장 교체 외에 나머지 문제를 이야기하면 본질적 문제는 논의도 못하고 끝날 수 있으니, (논의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는 (기존 소위원장 배분을) 유지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 위원장은 앞서 MBC 인터뷰에서도 "소위원장 문제는 정확하게 합의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며 "정개·사개특위 위원장 중 하나를 한국당에 양보하기로 한 것은 민주당으로서는 정말 큰 결단이다. 대승적으로 양보를 한 것인데, 또 소위원장까지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참 납득하기 힘들다"고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당의 "아주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그는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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