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3개 물품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로 말미암은 한일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첫 고비가 18일이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 5월 21일 한국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한국 정부에 제안하고, 18일이 끝날 때까지 한국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이날 밤까지 한국 정부의 공식 답변이 없다면 바로 추가 대응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카드가 유력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3국 중재위 방안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16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제3국 중재위 설치에 관한 청와대 입장은 수용 불가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처럼 한일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제3국 중재위 설치 여부를 최종 확인할 이날(18일)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는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맞대응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징용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새 안을 제시해 일본을 협상 국면으로 유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한국언론진흥재단(KPF)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과 한일관계’라는 이름으로 개최한 KPF포럼에 참석한 남 교수는 이번 사태를 장기적으로 65년 체제(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를 재구축해 한일 관계를 대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를 지렛대 삼아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남 교수는 조언했다.
이날 조찬 토론회는 남 교수의 발제 이후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유의상 식민과냉전연구회 이사(전 주 영국 한국대사관 총영사),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의 참여로 진행됐다.
일본 수출 규제는 심리전... 앞으로 공세 더 강해질 듯
남 교수는 일본 정부의 3대 물품 수출 규제 조치를 두고 '저강도 복합 전술'이라고 단언했다. 엄밀히 말해 현재 일본의 대응 수준은 수출 금지나 수출 규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심사 규제이므로 일종의 심리전이라고 정리했다.
다만 앞으로 상황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더 거센 강도의 대응책을 일본이 추가로 꺼낼 여지가 크다고 남 교수는 지적했다. 그가 '복합 전술'이라고 정의한 이유다. 남 교수는 "현 수준만으로 대응이 끝나리라고 한국 정부가 '고강도 단일 전술'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한편 이번 수출 규제 조치는 아베 정부가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 국가로 남기 위해 엄격한 수출 관리 체제 유지를 위한 국제적 협력에 충실히 응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대북 제재 유지를 강요하게 된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가 이번 조치를 빌미로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전했다.
남 교수는 이처럼 다방면에 포석을 깔아둔 아베 정부의 저의 상, 추가 조치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일본 정부의 조치도 복합 전술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 사례로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인 수소 경제에 영향을 미치려 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산업계는 수소 경제를 위해 필요한 탄소섬유 전량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수소 경제 대표 수혜자로 꼽히는 현대차의 경우, 수소탱크에 사용되는 탄소섬유를 일본 도레이사에서 수입하고 있다. 도레이와 토호, 미쓰비시레이온 등 일본의 3개 업체는 세계 탄소섬유 생산량의 약 66%를 점유하고 있다.
남 교수는 "그밖에 인공지능(AI), 로봇, 의료, 우주산업 등의 4차 산업, 태양광 관련 산업을 아베 정부가 차후 조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또 "아베 정부가 향후 경제 조치에 더해 정치적 압박 조치도 병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예를 들어 대북 제재 유지를 요구하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견제해야 한다는 국제 여론전을 전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남 교수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왜 우리 정부가 여태껏 일본의 공격에 맞대응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며 "수출 규제 국면에서 보인 일본의 논리 자체가 파탄 수준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보낸 협의 요청 공문을 보면, 지금껏 그들의 한일 청구권 협정 해석에서도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두고 한국의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는 내정간섭으로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배상청구를 받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어 청구에 응하지 말라고 한 행위 역시 일본이 부정한 외교보호권을 실행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특히 "A급 전범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 것이야말로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결정적 사례"라며 "한국 정부가 확전은 경계해야 하지만, 사안별로 분리해 차분하게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 적극 나서야
남 교수는 특히 이번 사태의 핵심 계기가 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국 정부가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통해 불거진 만큼, 한국 정부가 국제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펴나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남 교수는 현재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3조(제3국 중재위 구성)에 따른 해결을 한국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일본과 국제 사회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청구권 협정 3조를 둘러싼 해석 공방은 현재 시점에서 한일 두 나라 사이에 치열하게 일고 있다. 한국은 청구권협정이 1965년 당시 두 나라 간 기본적인 관계를 규정했을 뿐, 징용 피해자와 성노예(위안부) 등 일제 강점기에서 일어난 반인도적 행위의 사과와 배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본다.
반면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일제 강점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본다.
남 교수는 "한국 대법원 판결은 전시에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일본 기업이 적정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것으로, 이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음을 전제로 한다"며 "한국 정부가 향후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원칙에 입각해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가 일본의 기본 조약 해석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해 시정하고, 장기적으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관한 두 나라의 엇갈린 해석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남 교수는 아울러 한국 정부가 '1+1 방안(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출연금으로 피해자 배상)'을 내놓았으나 일본 정부는 한국 책임론(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피해자 배상)을 제기하는 가운데, 정부가 '1+1+알파', 즉 한일 기업의 출연금에 더해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과 별도로 책임을 지는 새로운 해결 방안을 일본 측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즉 한국 정부도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정 부분 국가 책임을 배상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당시 임시 정부가 한국의 뿌리이므로) 피해자 구제는 임시 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한국 정부의 책임이기도 하다"며 "외국의 강점 상태를 용인해, 그 불법 행위로 인해 자국민이 생명을 잃고 재산을 보호받지 못한 상태를 시정하지 못한 책임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있으며, 그 책임은 한국 정부로 귀속된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이어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를 한국 정부 책임 하에 실시하는 것이야말로 임시 정부 수립 100년째 해에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단절 없이 이어진 우리 법통을 확인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평했다.
남 교수는 이처럼 한국 정부가 '1+1+알파'의 역제안을 일본에 한 후 "특사를 파견해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에 화해에 응하도록 길을 열게끔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을 협상 국면으로 유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그는 이번 사태를 위기로만 보지 말고 △국내 산업구조 대전환 △국내 정치 지형 대전환 △65년 체제 극복을 통한 한일관계 대전환 △동아시아 질서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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