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6일 오후 미국에 거주하는 페이스북 친구가 급하게 메신저를 보냈다. "변호사님 도와주세요!" 페이스북에 한 베트남 여성이 어린아이 앞에서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고 구조요청을 하는 영상이 올라왔으니 내가 나서서 확인을 하고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뒤늦게 메신저를 확인하였는데 다행히 이미 여성단체 등이 나서서 여성과 아이를 구한 상황이었다. 남편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여러 예가 떠올라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음날 회사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던 중, TV를 통해 이 사건을 두고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을 우려하는 '애국 보도’를 보았다. 누가 애국의 공든 탑을 무너뜨리나. 베트남 국적의 부인을 폭행한 한국 남자가? 아니면 한국인 남편의 폭행 사실을 알린 베트남 여성이? 애국의 이름으로 개개인의 삶을 저울질하는 공든 탑이라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애초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을지.
나는 꽤 오랫동안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이주여성법률지원단의 일원으로 이주여성들에게 법률지원을 했다. 정기적으로 센터를 방문하여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이혼 사건 변론 등의 지원을 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결혼 이주를 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고,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아시아 국적의 여성들이었다. 상담하는 여성들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으나, 한결같은 내용은 남편과 시집 식구들의 학대, 자신의 출신국이나 출신 가정에 대한 무시와 모욕,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상담을 진행할 때마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고, 사과의 말로 상담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잔혹사는 이미 여러 사례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져 있고, 나 역시 센터에서 상담과 변론을 하면서 목격했다. 이들의 잔혹사는 죽도록 맞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심지어 법정에서조차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잔혹사의 실체다.
법원에서 머리 박고 자해하는 남편...그래도 친권은 아빠에게?
A씨는 베트남 국적이었고, 어렵게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센터에서 마련한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부친이 대학교수이자 작가인, 꽤나 유복한 집안의 자제였다. A씨와 스무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남편은 무슨 사연인지 부모와 연을 끊고. 택시운전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녀를 집에 가두고, 여권을 뺏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친정으로 돈을 빼돌릴까 의심하여 현금은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의심이 날 때마다 폭행했다. A씨는 어렵게 센터의 도움을 받아 아이와 함께 남편으로부터 탈출했고, 나는 그녀의 이혼 소송을 도왔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남편이 무서워서 숨어 있던 그녀였으나, 자녀를 남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프랑스, 미국과 천년을 싸워 이겨낸 베트남 사람답게 용감했다. 남편은 A씨가 한국으로 돈을 벌러 오기 위하여 위장 결혼을 했다, 베트남에 남자가 있었다는 등 거짓말을 하면서 그녀에게 결혼 파탄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아이를 뺏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연을 끊고 살던 부모까지 어떻게 설득하였는지 법정에 등장했다.
재판 진행 중 판사는 면접교섭과 친권자를 정하는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법정에 데려오라고 하였다. A씨는 남편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와 남편의 면접교섭에 협조하기 어려울 때였다. 나는 그녀와 법정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A씨와 함께 온 센터의 자원봉사자로부터 다급히 전화가 왔다. 남편이 깡패들을 동원하여 법정 앞에서 애를 납치해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법원으로 달려갔다. 그 와중에도 사무실에서 폭력 상황에 혹시나 무기라도 될까 싶은 마음에 커다란 우산을 하나 챙겨 나갔다.
법정 앞에서 벌어진 광경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아이를 납치해 가다 실패한 남편은 괴성을 지르며 법원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자해를 하였고 피를 흘리며 A씨와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경비원들도 우왕좌왕하며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나는 그녀와 아이를 데리고 피신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재판이 있을 때마다 법원의 경비들이 동원되고 A씨와 나는 법원 경비원의 경호를 받는 VIP(?) 신세가 되었다. A씨와 나는 처음부터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생명의 위험까지 느끼는 상황임을 판사에게 호소하면서 아이와 남편의 면접교섭이 시기상조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판사는 무조건 아이는 아빠와 만나야 한다는 원칙만을 강조하면서 무리하게 아이를 데려오도록 했고, 그 과정에서 폭력배를 동원한 아이 납치와 폭력 상황이 벌어졌다. 처음부터 판사는 이주여성인 A씨의 친권 자격과 양육능력을 의심하였다. 비록 폭력 아빠라도 한국인이며 중년 남자인 남편 쪽이 아이 양육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자주 내비쳤다.
이주여성의 이혼 사건을 변론하다 보면, 이주여성의 자녀에 대한 친권 및 양육 자격에 대한 의심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남편이 아무리 폭력을 행사하고 아내를 학대해도 이주여성의 친권과 자녀 양육 능력은 의심 받는다. 여기에 한국인 남자의 자식을 허락도 없이 이주여성의 본국으로 데려가 버릴 상황에 대한 의심까지 얹어진다. 한국에서도 자격이 없고, 본국으로 데려갈 수 없는 모성이 바로 한국에서 이주여성의 모성인 셈이었다. A씨는 비록 어렸지만, 아이를 폭력적인 아빠에게 내어 줄 수 없었고, 지키고 싶어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아이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확보하고 이혼할 수 있었다. A씨는 현재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한국에 살며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고, 전남편의 위협은 상존하고 있다, 아이마저 이런 엄마가 가진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송이 끝난지 수년이 지났지만 가끔씩 한밤중에 A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온다. '변호사님 저 많이 힘들어요.'
'품행이 단정하지 못해' 국적 취득 불가?
캄보디아인 결혼 이주여성이었던 B씨는 이혼소송을 하였으나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학대로 인한 이혼이었으나, 그녀의 경제력과 캄보디아로 아이를 데리고 갈 가능성 등의 이유로 친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다행히 B씨는 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양육비를 지급하면서 자녀를 면접 교섭하며 지낼 수 있었다. B씨는 결혼을 이유로 한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적법에 따라 일반 국적 취득 요건을 갖추어(거주기간, 일정한 재산) 국적 취득 신청을 하였다가 국적 취득이 거부됐다. 나는 법무부의 B씨에 대한 국적 취득 거부처분이 위법하다는 행정소송을 지원하였다.
법무부가 그녀의 국적신청을 거부한 이유는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B씨는 국적 취득을 위한 거주 요건, 일정한 재산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고, 거주기간 동안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었으며, 한국 국적인 자녀를 위하여 안정적으로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고 했다. 재판과정에서 법무부가 밝힌 B씨의 '품행 미단정 사유'는 결국 '그녀의 잘못으로 이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B씨의 잘못'에 대한 증언 청취를 '이혼한 전남편과 시어머니'에게 했다. 그들은 B씨가 '돈을 벌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였으며, 아이도 낙태를 하려는 것을 겨우 말려서 낳았다' 등의 내용으로 진술서를 법무부에 제출하였고, 법무부는 그 진술에 근거하여 그녀의 품행이 단정치 못하니 한국 국적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국적 부여에 대한 것은 다음 기회에 국적 취득 신청을 할 수 있어 법무부의 재량이 매우 광범위하게 인정되기 때문에 소송을 하는 경우도 드물고, 승소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B씨의 경우는 이례적으로 법무부의 국적 거부처분이 재량권 남용으로 위법하다는 판단을 받았고, 승소할 수 있었다. 도대체 B씨의 품행 단정 여부를 이혼한 전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물은 법무부의 뜻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법무부는 이주여성에게 국적을 주기 싫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으로 시집오는 혜택을 누리고도 감히 한국 남자와 이혼한 그녀에게.
영화 <파이란>을 더이상 좋아할 수 없는 이유
결혼 이주 여성하면, 나는 영화 <파이란>을 떠올리곤 했었다. <파이란>은 2001년 개봉한 송해성 감독의 영화다. 파이란은 중국인 여성인데,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찾아 한국에 오기 위해 삼류 깡패인 강재와 위장결혼을 한다. 강재는 어느 날 잊고 있던 법적 아내인 파이란의 사망 소식을 듣고서야 그녀를 찾게 되고, 그녀의 유품 속에서 자신과 결혼해준 강재에게 고마움과 절절한 사랑을 전하는 일기를 읽게 된다. 강재는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절절한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청초한 중국배우 장백지와 강재 그 자체였던 배우 최민식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하지만 이주 여성 변론을 하게 된 뒤부터 나는 영화 <파이란>을 더 이상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좋아할 수가 없었다. 청초하고, 순종적이고, 순수한의 사랑의 결정체로 그려지는 이주 여성의 모습. 이는 다름 아닌 한국 남성들의 판타지다. 한국 남성에게 가난한 아시아 국가의 여성과의 결혼은 판타지의 구현이어야 하는데, 이는 결혼과 동시에 깨진다. 이주 여성들은 청초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순수하지만도 않은, 살아있는 여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국 남성들, 특히 국내 여성과 결혼을 성취하지 못한 남성들은 한국보다 가난한 아시아의 다른 여성을 찾게 되고,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결혼을 한다. 여러 명의 여성을 하루 만에 만나고, 그중 한 명을 선택하여 다음 날 결혼하는 경로가 부지기수다. 부강한 한국에 대한 동경을 품은 이국의 어린 여성들은 속이기 쉬운 대상이고, 남자들은 나이, 직업, 질병 여부, 결혼 여부 등 많은 것들을 속이고 결혼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결혼 소개업자들은 짭짤한 수입을 챙긴다.
큰돈을 주고 데려온 어린 아내가 청순하지도, 순진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이다. 또 본전도 못 찾았는데 아내가 도망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시달린다. 도망갈 것을 우려하여 한국말은 배우지 못하게 집안에 가둬두고, 본전 생각에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기도 한다. 내가 변론한 사건에서, 남편이 돈을 벌어오라고 이주 여성을 성매매업소에 팔아넘긴 사건도 있었다. 집안 남자들(시아버지, 시동생들)의 성욕 해소 대상으로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이 여성은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탈출하였으나,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위자료 청구소송 만을 변호사들에게 맡기고 한국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자국으로 돌아갔다. 견디다 못한 아내가 도망가는 일들이 발생하자, 급기야 결혼 알선업체들은 '우리 업소가 소개하는 여성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업소 광고를 한 적도 있다. 아이를 낳아도 시어머니가 뺏어가는 일도 자주 있었다. 한국의 혈통은 한국 사람이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많은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결혼알선업체에 대한 제재도 강화되어 가고 있고, 국적 취득 요건도 개선하여 남편의 책임으로 이혼하게 되는 경우 한국 거주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여전히 이주여성들은 죽도록 맞거나, 도망쳐서 불법체류자가 되고 있고, 십수년을 한국에서 살아도 제대로 한국말조차 못하는 환경에 살면서 온갖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고 있다. 제도가 강화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사각지대가 넘쳐나고, 강화된 제도조차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가짜 결혼이라는 의심의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적 취득요건으로 이주 여성의 목을 조르고, 개선되기 어려운 언어 장벽은 이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간단하게 제도 몇개 개선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결혼 못한 나이 많은 한국 남자들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가난한 나라의 이주 여성과의 손쉬운 결혼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아무 제약 없이 돈만 내면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게 했던 이주여성과의 혼인정책은 이주여성의 인권을 극심하게 유린하는 결과를 낳았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정책도 나오지 않는다.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의 '여성을 위한 변론' 연재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김수정 변호사는 호주제 위헌소송 대리인단, 낙태죄 위헌소송 대리인단 단장으로 활동하는 등 오랫동안 여성과 아동을 위한 변론을 해온 변호사입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여성의전화 전문위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등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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