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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의 무척이나 '교육적'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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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의 무척이나 '교육적'인 풍경

[기고] 매우 '교육적'인 시도교육청의 노사교섭 현장

지금 이곳은 교섭현장이여 교섭 참관 중입니다. 3일 간 총파업을 장점 중단한 학교비정규직(교유공무직)연대회의 노조들이 오늘(9일) 시도교육청 및 교육부와 교섭을 재개했기 때문입니다. 노조는 파업을 멈추며 사측의 성실교섭 약속을 믿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임금교섭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한 교육부의 입장 발표도 노조가 진전된 입장과 성실교섭을 기대하는 중요한 대목이었습니다.


약속된 교섭시간 오전 11시, 노조 교섭위원들은 미리 자리에 앉아 머리띠를 메며 기다립니다. 이어 사측 교섭단이 입장한 후 노사 교섭단 모두가 착석합니다. 그런데 "임금교섭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한 교육부가 교섭단 중에 보이지 않습니다. 노조가 지체 없이 묻습니다. "왜 교육부 교섭위원은 없냐?" 사측은 "참관만하기로 했다"고 답합니다. 어이상실. 파업까지 중단하고 교섭에 임한 노조는 격하게 반응합니다. 교육부의 교섭참여 약속을 거듭 언급하며 거세게 따지고 고성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교섭은 공식 개회선언도 하지 못하고 파행으로 치닫습니다.


이때부터 4시간 가까이 노조의 항의가 계속됩니다. 파업 마지막 날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시·도교육청과 함께 향후 진행되는 임금교섭에 성실히 임하고 '교육공무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임금체계와 임금수준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그리고 시도교육청들도 비록 구두 상이지만 "교육부가 참여하면 시도교육청 교섭위원 한 명을 교육부로 교체하겠다"고 노조와 약속했습니다.

▲ 교섭장 앞에서 피켓 시위 중인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박성식

"약속 했어요 안 했어요!" 노조가 흥분합니다. 교육청들이 변명합니다. "교육부가 참여하면 교체한다고 약속했지, 참여한다고 확약한 건 아니다" 이건 또 무슨 맥락 없는 말장난일까요. 교육부가 보도자료까지 발표하며 성실히 교섭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으면, 시도교육청은 교육부를 교섭에 참여시키는 게 약속의 맥락이고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시도교육청들은 우리가 정하면 그만이다는 식이고, 으레 강자들이 으스대듯 증거 있으면 따져보라며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나옵니다. 자극받은 노조의 격앙된 반응이 이어집니다. "법이 왜 나오냐. 여기가 노사 신의와 약속으로 시작된 교섭장이지 재판장이냐"며 목청을 높입니다.


반면 시도교육청은 침착합니다. 약속은 따지지 말고 점잖게 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노조는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격앙된 반응을 이어갑니다. 무엇이 품격일까요? 다른 곳도 아니고 교육을 책임진 당국이 노조와 공식 협의에서 약속하고,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발표한 다짐도 꼭 그렇게 한다는 건 아니라며 점잖게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과연 품격일까요.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노조는 계속 대화를 시도합니다. "교육부는 교섭에 참석하기로 대국민 약속까지 했는데, 그럼 시도교육청들이 교육부 참석을 거부한 거냐!" 이러면 또 시도교육청 교섭단들은 묵묵부답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노조는 어이가 없고,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또 흐릅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 교섭장의 모두가 지칩니다. 답답한 노조는 이번엔 참관만 하겠다는 교육부 사무관에게도 묻습니다. "말해봐라, 교섭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교육부 발표는 그럼 거짓말이냐!" 역시 메아리는 없습니다. 교육부와 교육청 모두 입을 다물고 다시 침묵이 흐릅니다.


노조는 화가 나지만 윽박지르고 따지기에도 지칩니다. 사측 교섭단은 전권을 위임받아 나왔다지만, 노조가 수차례 정회를 통해 입장 조정을 요청해도 그들은 입장변화를 논의할 권한이 없다며 우리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합니다. 노조는 또 화가 납니다. 협의해 결정할 권한도 없는 이들을 교섭단으로 내보낸 교육청들이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다며 항의합니다. 그렇습니다. 교육청들은 학교비정규직이 귀찮습니다. 14만 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계를 다투는 교섭임에도 교육감들은 단 한 번 얼굴조차 내밀 생각이 없습니다. 교섭이 막히면 교육감들을 한 번 뵙고 직접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 노조가 요구했지만, 그 한 번의 시간조차 내줄 수 없다는 게 교육청들의 입장입니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이르자 노조는 행동전에 나섭니다. 9일 16시 현재 노조는 교육부의 교섭참여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교섭장 연좌농성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17명 교육감 중 단 한 명이라도 와서 왜 교육부의 교섭참여를 막는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중입니다. 아니 시도교육감들이 진정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인지 확인이라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노조에게 교육부의 교섭 참여는 매우 중요합니다. 시도교육청들은 대통령과 교육감의 정치적 약속인 공정임금제를 논의할 생각이 아예 없습니다. 심지어 파업 전 교섭에서 사측 교섭대표는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은 자질도 책임감도 부족하다는 취지로 말하며 공정임금제 논의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시도교육청은 파업에 따른 학교운영의 차질을 걱정한다지만 이율배반적으로 파업할 테면 해보라고 나옵니다. 그렇게 파업이 시작되자 그나마 교육부는 차별해소를 위해 큰 틀에서 단계적 방안을 논의해보자는 터라, 막힌 교섭의 돌파구나 노사 간 조정의 여지를 두고 있습니다.


노사 간 교섭 현장은 일반 시민은 물론 노조원이라도 잘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현장 상황을 급히 글로 전합니다. 교육당국과 벌이는 무척 교육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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