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미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시점에 한미 양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정부는 남북 간 합의와 남북, 북미의 조속한 대화 재개를 바란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권정근 국장은 27일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이 쌍방의 이해관계에 다같이 부합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화 재개를 앵무새처럼 외워댄다고 하여 조미(북미) 대화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권 국장은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하며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며 "그런데 미국이 지금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 있을 작정이라면 시간이 충분할지는 몰라도 결과물을 내기 위해 움직이자면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동지(김정은)께서 이미 역사적인 시정연설에서 천명하신 바와 같이 조미 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권 국장은 남한의 역할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저들이 조미 관계를 '중재'하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하는 남조선(남한) 당국자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며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 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조미 관계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기초하여 나가고 있다"며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조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 있는 연락 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 앉아 하게 되는 것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권 국장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도 그 무슨 다양한 교류와 물밑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며 "남조선 당국은 제 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이같은 반응은 한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중재하려는 정부의 구상에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정부가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을 설득하려는 것에 대해 북한은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남한에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담화와 관련, 이날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당국자는 "형식은 좀 특이하다"면서 "정부는 남북 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 간 합의를 차질없이 이행해 나간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남북, 북미 간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담화는 북한에서 성명 다음으로 가장 공식적인 입장 표명의 방식"이라며 "이 담화는 미국에 대해 셈법을 바꾸라고 촉구하고 있고 우리에 대해서도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 역할을 하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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