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의장 장례식 다음날인 지난 9일 주간 <우먼타임스>와 1시간 20여분에 걸친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여기서 김사장은 "이제부터 나는 김윤규가 아니고 정윤규"라고 말했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남북경협을 완성시키겠다는 비장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김사장은 인터뷰에서 정몽헌 의장 자살의 이유와 관련, "결코 사업에 대한 좌절감때문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정치-사회적으로 본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안해주고 핵심은 놓치고 주변만 건드리고 욕하며 특검이다 출국금지다 뭐다 얼마나 장애가 많았느냐"고 말해, 정몽헌 의장에 대한 정치사회적 홀대가 큰 원인이었음을 시사했다.
김사장은 이어 "정의장을 사지로 몰아간 건 대검 중수부가 아니었냐"는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한사람을 미쳤다고 하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 된다", "검사들이 일을 하는 과정에 착오도 있고 그럴 수도 있는데요"라고 미묘한 뉴앙스를 남겼다.
김사장은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바깥 세상을 잘 아는 김정일 위원장은 정 회장을 신뢰했다. 우린 작은 약속이라도 서로 지킬려고 노력했다. 북한도 현대아산에 대한 신뢰감이 무척 크다. 잔정이 큰 정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아무 일 없을 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큰 일을 일궈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대와 북한간 신뢰가 일반의 예상보다 대단히 두터움을 밝혔다.
김사장은 이어 정몽헌 회장이 죽음 바로 직전에 유서에'당신은 피를 이은 자식보다 더한 자식이다'라고 말한 것은 대북 사업의 주도권을 김윤규가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정통성을 부여해주기 위한 사려 깊은 배려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김사장은 또 국내외 투자가들 때문에 대북사업 참여를 기피하고 있는 현대차나 현대중공업, 삼성그룹 등에 대한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합법적으로 도와줄 순 있다. 직원수련회를 하는 등 관광객을 늘려주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다. 개성공단에서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고"라며 향후 적극적 협조를 부탁했다.
김사장은 현대가 '5년경협'을 통해 이룩한 성과와 관련, "경제적인 전쟁이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그래서 이룬 건, 남북화해와 협력 분위기"라며 "그 전에는 당국자, 정부간에 대화를 안 했다. 우리 사업 이후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했다. 사업을 하려면 당국자가 필요하니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거고 다른 나라들도 지구상의 최후의 분단국가인데도 뭔가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또 주한 미8군사령관을 만나 "나는 5년간 너희(미군)가 말하는 '적진(북한)'에서 일했다", "그 시간에 너희는 골프 치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무슨 주둔비를 달라고 하느냐", "국방의 의무는 우리 국민들과 관광객들이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당당히 말한 일화를 소개하며, "(현대가) 경제사업을 하면서 화해의 분위기를 주도한 사실을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사장은 이밖에 생전에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회장과의 남달렀던 인연을 소개하며, 지금도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새벽에 정주영 명예회장 묘소앞에 보고서를 놓고 도와달라고 기원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우먼타임스>의 양해를 얻어 싣는 김윤규 사장 인터뷰 전문이다.
***"이제부터 나는 김윤규 아닌 정윤규"**
문: 회장이 돌아가신 후 심정이 어땠습니까.
김사장: 잠시 침묵하다가) 돌아가셔서는 안 될 분이 돌아가셨죠. 여러 면에서 큰 일을 이루신 분인데... 전자업체만 해도 현대전자가 후발업체인데 세계 반도체 1위로 올려놓았잖아요? 남북간의 군사, 정치적인 면을 경제로 풀어나가는 것이 정주영 명예회장의 생각이었고, 정몽헌 회장이 이를 유지로 받들었죠. 이제 어려움을 딛고 육로, 철도 등 막혔던 길이 뚫렸는데 -8년 소 5백마리가 먼저 뚫고 나갔지만-, 길을 뚫는데 정 회장님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기분입니다. 좀 더 일을 해주셔야 할 것 아닌가 싶고, 아주 애통합니다.
문: 회장님이 자살 이유를 무엇이라고 봅니까.
김사장: 저도 여러 가지로 생각을 했습니다. 업무에 대한 무거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얼마든지 저희(현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돌아가시기 전 (전망을) 정적으로 봤습니다. 북한이 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회담에 나서고 미국의 분위기도 호전되고 있었으니까. "김사장은 이제 (금강산 앞에서) 돈만 세면 돼"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사업에 대한 좌절감은 아닙니다.
그 외 정치-사회적으로 본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안 해주고...저도 그 어려움을 압니다. 열심히 해놓은 일에 대한 평가를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지금도 여전히 핵심은 놓치고 주변만 건드리고 욕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 억울한 생각이 있었던 걸로 생각합니다. 정 회장이 이만큼 해놓은 것을 요만큼도 알아주지 않았으니...특검이다 출국금지다 뭐다 얼마나 장애가 많았느냐, 말이죠. (정 회장께선 북핵 위기도 풀려가고 하니)지금 빨리 뭘 해야 하는데, 오죽 답답했겠어요.
문: 일부 기업에서는 정 회장을 사지로 몰고 간 것은 1백50억+@를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였다고 말하는데..
김사장: 잘 모르겠습니다....모든 사람이 한 사람을 미쳤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미친놈이 됩니다. 각자 직업이 있습니다. 검사들이 할 일이 있겠죠. 나름대로 자신의 일을 수행하려고 노력해야겠죠. 하는 과정에서 착오도 있고 그럴 수 있는데요, "잘 모르겠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을 집행하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우린(현대와 북한) 작은 약속이라도 서로 지킬려고 노력했다"**
문: 정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이 뭘까요.
김사장: 남북경협 사업이 잘 되면 통일의 초석이 될까 하는 거죠. 본인이 얘기했잖아요. 금강산에 유분까지 뿌려달라면서. 남북경협이 성공하면 동북아 허브국가로서 세계적인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꿈이었죠. 통일까지 이룰 수 있는 것이죠. 정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5번 만났어요. 전 3번 만났지만. 원래 정 회장은 올 9월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정주영 체육관 기공식 즈음이어서 만날 때가 됐거든요.
바깥 세상을 잘 아는 김 위원장은 정 회장을 신뢰했습니다. 우린 작은 약속이라도 서로 지킬려고 노력했습니다. 북한도 현대아산에 대한 신뢰감이 무척 큽니다. 잔정이 큰 정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아무 일 없을 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큰 일을 일궈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북한이 정주영, 정몽헌에 이어 김 사장을 대북 경협의 파트너로 인정해주느냐가 문제일텐데요.
김사장: 사업권에 대한 권한대행자가 제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토지 이용권에도 제 이름이 나와있거든요. 바뀔 이유가 없고요. 자동차, 중공업, 계열사들이 투자한 회사이기 때문에 아직도 명예회장님의 유지가 그대로 살아있는 거예요. 제가 이 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일 뿐이지 오너다 이런 것 없습니다. 그런 거 엮어가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진만 들고 가면 되요.
지금까지 북한의 암시적인 표현은 없지만 (토지 이용권을 보여주면서) 여기 보면 50년간 써라, '회장 정주영, 사장 김윤규'라고 저의 이름이 박혀 있습니다. 토지를 양도할 때에도 제 도장이 찍혀야 하고 모든 일 들에 대한 정통성이 그대로 법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통성이 보장되어 있는 거죠.
***"정몽헌회장, 죽는 순간까지 사려깊은 배려"**
문: 김 사장이 오너도 아니고, CEO인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김사장: 제가 정말 눈물났던 건, 마지막 가기 전 유서를 쓰실 때, (김 사장은 수첩을 꺼내 정 회장의 유서 한구절 한 구절을 읽어나갔다.)제가 갖고 다니면서 가끔 봅니다만…'존경하는 김윤규 사장...' '존경한다'는 표현도 처음 들었습니다. '당신이 명예회장님의 진정한 자식이었다'...
정 회장이 저를 김씨에서 정씨로 바꿨습니다. 성을 바꿨어요. 아내가 "이제 당신 정씨 됐으니까 그 집안으로 가라" 그러거든요. 참 의미있는 말씀이에요. 정통성을 이어 나가야 한다. '나보다 더한 (정주영씨의) 자식이다'라는 표현이...그러면 정가죠 뭐. 아버지 사업과 자신이 하고자 하던 의지를 이어나가 달라면서 "강력히 추진해다오" 그렇게 또 유서에도 썼잖아요.
(김 사장은 정 회장이 죽음 바로 직전에 '당신은 피를 이은 자식 보다 더한 자식이다'라고 말한 것은 대북 사업의 주도권을 김윤규가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정통성을 부여해주기 위한 사려 깊은 배려라고 해석했다.)
문: 일부에서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나 정몽준 현대 중공업 회장 등 정씨 일가가 대북 사업에 참여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데...
김사장: 우리나라 현재 경제상황이 그럴 수 없습니다. 이건희씨가 3% 가지고 경영하잖아요. 97%가 다른 사람들의 소유인 거예요. 가령 현대자동차가 돈이 남아돌아 우리 사업에 돈을 주고 싶어도 못 줍니다. 자동차가 세계 시장을 향하고 있는데, 잘못 투자해 '퍼붓는다'는 식의 오해를 사면 어떡합니까? 이사회나 노조가 두 눈 부릅뜨고 보고 있는데 누가 어떻게 쥐고 흔들 수 있겠어요. (그 분들이) 합법적으로 도와줄 순 있지요. 직원수련회를 하는 등 관광객을 늘려주는 건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개성공단에서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고요. 이젠 재벌총수 혼자 무엇을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문:대북사업은 계속 현대아산이 주도하는 건가요?
김사장: 경제원리에 의해서 딴 사람이 주도할 수 없습니다. 이제 잘 될 일만 남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 회장께서 나머지 모든 어려운 일을 몸을 던져가면서... 우리에게 (희망만) 남겼습니다.
문: 앞으로 금강산 개발, 개성공단 등의 사업 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 생각입니까. 컨소시엄은 가능한가요?
김사장: 가능한 얘기입니다. 길을 닦아 놓았으니까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겁니다. 삼성도 LG도 모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 중소기업들의 참여를 권장할 겁니다. 이메일도 보내고 직접 만나서 설득도 하고 있습니다. 삼성이나 어떤 기업이나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필요하다 싶으면 오지 말라고 해도 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게 저희의 역할입니다.
개성과 금강산은 이미 여건이 갖춰져 있다고 봅니다. 현대 아산은 그동안 1조 5천억 가까운 돈을 투자했죠. 가령, 어느 백화점의 매장을 유치하는데도 인기와 경쟁이 심하지 않습니까. 금강산의 천혜의 아름다움을 현대아산만이 모두 개발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치, 사회, 군사, 경제, 핵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길 있고, 철도 있고, 호텔도 있는데. 누구라도 통일전망대에서 육로로 40분만에 갈 수 있으니까, 한번 가볼까, 내가 저기에 커피숍을 한번 할까, 숙소를 하나 지어볼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금강산 6억 평에 대한 사업권과 50년간 토지이용권을 우리가 갖고 있으니까, 다른 기업들이 들어오고 영업을 해서 이익을 남기고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그럴 수 있는 거죠.
***"주한미군, 국방의무는 우리 국민과 관광객이 다하고 있지 않나"**
문: 지난 5년동안 남북경협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김사장: 경제적인 전쟁이었습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그래서 이룬 건, 남북화해와 협력 분위기지요. 그 전에는 당국자, 정부간에 대화를 안 했어요. 우리 사업 이후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됐죠. 사업을 하려면 당국자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거예요. 다른 나라들이 지구상의 최후의 분단국가인데도 뭔가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게 되요. 동해안에 간첩선 오는 것 봤습니까. 사실 현대아산이 정부가 할 일도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미8군사령관을 만나도 그걸 인정합니다. "나는 5년간 너희(미군)가 말하는 '적진(북한)'에서 일했다", "그 시간에 너희는 골프 치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무슨 주둔비를 달라고 하느냐"고 당당히 말합니다. "국방의 의무는 우리 국민들과 관광객들이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도 하구요. (현대가)경제사업을 하면서 화해의 분위기를 주도한 거 인정해줬으면 합니다.
***그리운 정주영, 정몽헌 회장"**
문: '윙크하는 버릇 고쳐라'라고 유언했는데...
김사장: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어요. 한번도 윙크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잠시 침묵) 참 애정 어린 말씀이지요. 빨리 고쳐야 하는 건지, 그냥 하고 다녀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문: 정 회장의 꿈이 무엇인지, 왜 사장님을 그토록 아꼈는지 궁금합니다. 유서에 절절하게 표현됐던데.
김사장: 정몽헌 회장님은 소탈합니다.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소탈했습니다. 표현을 잘 안 하십니다. 잘 했어, 형편없어, 이런 소리도 한번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눈빛으로 서로 알아보는 거죠. 기획은 정 회장님은 하고, 일은 제가 행동대원으로 밀고 나가니까 (믿어주신 것 같아요). 겸손하고, 표현이 적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어떤 기억이 있냐면. 제가 리비아 비행기에서 떨어져서 눈이 이렇게 됐는데, 여행할 때 꼭 저를 옆에 앉혀 놓고 여러 이야기를 하십니다. 비행기 한번 떨어진 놈이 또 안 떨어진다 이거예요. 또 떨어질 일이 없다. 비행기 흔들려도 걱정 한번 안 하시고, '배고프다, 밥먹자' 그러셨습니다.
정 명예회장을 오랫동안 모셨는데, 그저 사무실에서 뵙고, 업무적으로 만나는 정도가 아니고. 새벽 4시에 전화 와서 '이리 와봐!' 하면 가서 같이 신문도 읽고, 또 테니스코트에 새벽 4시에 가서 깜깜한데, '왜 해가 안 뜨냐'고 (농담으로) 야단 치면, 내가 해를 올릴 수가 있나...명예회장님이랑 저랑 그렇게 편안하게 대화하고 그랬습니다. 나이 차이로 보나 대화가 되겠습니까. 그저 곁에서 들어주고 그랬죠.
명예회장님 앞에서 잘못하면 머리에서 땀이 나다 못해 김이 나는 사람이 있어요. 한번은 결제 받으려고 들어갔는데, '뭐 하는 놈이야. 형편없는 놈이야'라며 야단치고 큰소리로 소리 지르시길래, 그냥 나가려고 하니까, 큰소리로 '어디가!' 하더군요. 저도 큰소리로 시원하게 '나갑니다' 그랬죠. 화났는데 결제하니 되겠습니까. '다음에 오겠습니다' 그러면 '이리와!', '화 안 내시겠습니까', '그래!' 그랬죠. 명예회장과 가깝게 지냈던 거죠.
***"명예회장이 외로우니까 아들 데리고 가신 것 같다"**
문: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길 바란다"고 정 회장께서 유서에 적으셨는데.
김사장: 이제 잘 될 일만 남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 회장님께서 나머지 모든 어려운 일을 몸을 던져가면서 우리에게 (희망만)남겼습니다.
장례를 치루는 5일동안 천둥번개가 엄청나게 치고 그랬죠. 옛날에 보면 귀인들이나, 중요한 분들이 돌아가시면 승천을 하신다고 하는데,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제 장례식을 가지면서 엄청나게 참 비통하면서도 가을보다 맑은 햇빛이 비추는데. 명예회장님께서 외로우시니까 같이 있고 싶어서 (아들인 정 회장을) 데리고 가신 것 같습디다. 두 분께서 나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시기 위해서 햇빛으로 비춰주시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업이 이제 잘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명예회장님과 정몽헌 회장님, 제가 함께 찍은 사진도 지금 사장실에 있고 그런데...요즘도 어려운 일 나갈 때면 '회장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하곤 합니다. 명예회장님이 출근하시는 시간인 새벽 5시 50분에 그 분 무덤을 찾아가 보고서도 올려놓구요...
정 명예회장님은 새벽 4시30분에 꼭 일어나십니다. 5시50분에는 회사에 나오십니다. 제가 1분이라도 그 시간에 늦으면 '젊은 놈이 왜 그렇게 잠이 많냐'하시면 '젊으니까 잠이 많죠'하면 '그래서 어떻게 이기겠냐, 잠잘 거 다 자고, 놀 때 다 놀면 어떻게 남을 이기냐'라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문: 정 회장은 사장님의 어떤 점을 보고 그렇게 신뢰했을까요?
김사장: 저는 묵묵히 한 거죠. 회사를 위해서 내가 맡은 바를 성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오늘의 일은 이렇고, 상황이 이래서 이렇게 진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정 회장님은 저에게 전권을 위임하시니까. 아주 어렵고 잘못된 부분, 큰 부분만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라며 의견을 내곤 하셨습니다.
문: 북한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사장: 애도하는 의미에서 추모기간동안 관광사업을 중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관광은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애도분위긴데 관광 즐기는 게 안 맞는 거 같습니다. 그래도 휴가기간에 관광하시지 못한 우리 국민들에게 우먼타임스를 통해 죄송하단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금강산 관광은 제가 11일에 가면 곧 재개될 것입니다. 유언에 따라 유품을 안치하고 비석도 세울 예정입니다. 북측이 6일 바로 허가를 했습니다. 7일 북측이 자체적으로 추도행사를 가졌습니다. 영정도 빌려달라고 해서 보냈습니다. (북측에선) 통일의 기초를 닦은 분이 돌아가신 의미를 기리는 마음이 깊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