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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대학에 사는 '기택'이고 '근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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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사는 대학에 사는 '기택'이고 '근세'인가

내몰리는 강사.. 결국 '대학이 흔들릴 것'

"새 학기 앞두고 공채가 시작됐는데, 기준을 보면 전임교수에게나 적용될 법해요. 3년간 300%의 논문(3년간 세 편의 논문) 실적이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곳도 있는데, 이러면 생계를 위해 여러 강의를 뛴 많은 시간강사는 아예 지원조차 못하죠. 대체 어느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강사를 뽑는지 묻고 싶어요."

강사의 실질 급여 수준을 올리고 고용 안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개정된 새 강사법(고등교육법)이 8월 1일부로 시행 예고된 가운데, 대학가가 2학기 강사 채용에 나서기 시작했다. 예견된 대로, 강사의 대량 실직이 현실화하리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결국 대학 교육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사는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는 전문 교원으로, 전임교수와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다. '맥도날드 알바에서 4대 보험이 적용되는 데 감격했다'는 체험담을 소개해 유명해진 '대리운전사 강사' 김민섭 씨의 사례에서 보듯, 그간 강사는 극도로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인해 고통 받았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개정된 강사법은 강사에게 방학 중 임금 지급, 1년 이상의 고용 안정, 공개채용 등을 보장토록 했다. 다만, 방학 중 임금 지급안은 시행이 지금도 붙투명하다. 정부가 대학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로 해당 임금은 대학에 직접 지원키로 했는데, 국회가 장기간 공전하면서 이를 적정 시일에 처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4대 보험 보장안 역시 확정되지 않았다.

강사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다 이마저도 커진 급여 부담으로 인식돼, 대학이 강사 채용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는 게 강사들의 지적이다.

▲ 서울 소재 대학 전경. ⓒ프레시안(조성은)

강사가 버려지고 있다

26일 <프레시안>이 인터뷰한 적잖은 강사들이 1학기보다 높아진 채용 문턱을 실감하고 있었다. 김어진 강사(분노의 강사들 공동대표)는 "이미 (예전에 강의한) K대학교에서 강사에게는 강의를 주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미리 겸임교수·초빙교수(각 분야 전문가)를 정해놓고 강사 공개채용에 나선 대학교도 있다"며 "강사가 생계를 꾸려나갈 길 자체가 막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진균 강사(비정규교수노조 부위원장)는 "강사법을 회피하기 위해 대학들이 꼼수를 부리고 있다. 강의 수를 줄이는 대학도 있고, 강사만 줄이고 초빙교원을 늘리는 대학도 있다"며 "강사법 합의 주체인 대학이 사회적 합의 정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사들의 설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은 이미 2019학년도 1학기가 시작하며 현실화했다. 지난 달 7일 비정규교수노조가 발표한 자료 등을 종합하면, 지난 1학기가 시작하며 최소 6000명 이상의 강사가 강단을 떠났고, 약 1만5000개의 강사 일자리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이 개정 강사법 시행에 앞서 강사에게 지급할 임금 부담 등을 줄이기 위해 대대적으로 강좌를 줄인 결과다.

이는 새 학기 들어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비정규교수노조 대구대분회 조사 결과, 이 학교의 1학기 강사 규모는 202명으로 전년 동기의 420명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새 학기는 101명으로 그 절반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대학은 신규 공개채용 시 강사에게 적용할 채용 기준을 강화했다. 상당수 강사는 저임금으로 인해 생계에 곤란을 겪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여러 학교에서 많은 강의를 해야 한다. 자연히 연구 실적은 부족해진다. 이 빈틈을 파고드는 기준이 논문 실적 비중 높이기다. 과거 1년에 100%의 실적(1년에 한 편의 논문) 수준이 3년에 300%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연구에 매진하기 힘든 강사로서는 치명적이다.

김용섭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전남대의 경우 최근 5년 간 200%(5년 간 논문 2편) 수준으로 노조와 협의를 이뤄가고 있지만, 사립대는 문제가 심각하다"며 "강사를 뽑지 않으려는 시도가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강사법을 회피하려는 대학의 움직임은 고등교육 미래를 갉아먹을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지난 17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신촌 박스퀘어에서 대학원생·박사후과정생 등 학문후속세대와 간담회를 나눈 모습. ⓒ연합뉴스

강사법 회피=교육 질 저하

대학이 강사를 줄이면서도 학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교육 질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 4월 30일 발표한 2019학년도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 자료를 보면, 2018년 1학기 38.0%였던 정원 20명 이하 강좌 비중은 2019년 1학기 들어 35.9%로 줄어들었다. 대신 21~50명 강의 비중이 같은 기간 49.3%에서 50.2%로, 51명 이상 대형 강의 비중은 12.7%에서 13.9%로 커졌다. 소형 강의를 줄여 강사 채용 규모를 줄이고, 대형 강의를 늘려 교원 1인당 담당 학생 수를 늘렸다.

전임교수의 강의 시간을 늘리고 초빙교원 비중을 키우는 것도 강사를 강단에서 내쫓는 방안이다. 김 위원장은 "대학이 강사를 뽑지 않고, 전임 교수의 책임 시수를 늘리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전임교수가 책임시수 9시간을 넘어 많게는 18시간, 더 심하게는 28시간까지 강의에 매달리는 사례도 나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4대 보험 지급 부담을 덜기 위해 강사를 뽑지 않고, 연구교원에게 강의를 맡기려는 움직임도 있다. 연구교원은 최소한의 강의 후 일정 기간 연구에 집중해 학문 성과를 내야 할 이다. 이들은 프로젝트 기간 4대 보험을 보장받는다. 대학이 이들에게 별도 초빙교원 계약을 제시하면, 학교로서는 4대 보험 지급 의무를 추가로 질 필요가 없다. 더 싼 값에 강의 문제를 해결 가능하다는 뜻이다.

엄은희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강사 비중의 절반만 채용하고, 나머지는 4대 보험을 주지 않아도 되고, 1년 고용 보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겸임교원으로 채우려 한다"며 "우리 같은 연구원 사이에서는 겸임교원 강의 제안이 늘어나리라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전했다.

엄 연구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학의 이 같은 움직임을 "꼼수"로 비판하고 "(나는) 겸임교수 제안이 와도 받지 않겠다"고 공개한 바 있다. 엄 연구원은 "강사법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우는 동료 비정규직 교수들의 싸움에 (연구원들이) 힘을 보태지는 못하더라도, 넙죽 겸임교원직을 승낙해 싼값에 양심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한 다짐"이라고 밝혔다.

대학의 이런 움직임은 결국 교육 질의 저하로 이어진다. 대형 강의가 늘어나면 그만큼 교수와 학생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교수가 강사가 빠진 강단을 메우는 부담이 커질수록, 대학의 연구 성과는 더 떨어진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대학 교육의 경쟁력이 떨어지리라는 우려가 합리적이다.

▲ 엄은희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그는 '을끼리의 싸움'을 막기 위해서라도 연구원들이 대학의 겸임교원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결국 나오는 물음: 대학은 무엇인가

강사법을 둘러싼 문제 해결을 위해 결국 대학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가를 짚어야 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고도성장기 한국의 큰 문제는 대졸자 부족이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인 1979년 서울의 사립대 9곳이 지방 분교를 설치하며 대학 정원을 크게 늘린 배경이다. 한국의 대학 규모가 지금 수준으로 크게 커진 데는 1993년 김영삼 정부 당시 시행한 대학 정원 자율화 정책이 배경으로 자리한다. 대학이 등록 대상에서 신고 대상으로 바뀜에 따라 대학은 급격히 늘어나고 대학생 수도 팽창했다. 1990년 158만여 명이었던 대학생 수는 1995년 221만 명으로 늘어났고, 지난해는 338만여 명까지 팽창했다.

과거 한국 대학이 팽창하던 시기에는 강사 노동의 질이 낮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학이 커지는 만큼 교원 수요도 급증했다. 교수 자체가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강사는 정교수로 부임하는 징검다리에 불과했다.

김진균 비정규교수노조 부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1~2년 간 강사를 한 후 전임교원이 될 수 있었다. 석사를 마치고 교수가 되는 분도 있었을 정도였다"며 "대학이 구조조정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예전에는 지나가는 임시직이었던 강사가 생계를 위해 고착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강사가 현재 처한 상황을 의대 레지던트로 비유했다. 레지던트는 아직도 고강도 노동과 불합리한 내부 문화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시기로 인식된다. 하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정 기간의 고생이 지나면 전문의 자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이 징검다리가 끊겼다. 한 번 레지던트는 영원히 레지던트에 만족해야만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 환경 격차가 대학만큼 큰 곳을 찾기가 어려운 배경이다.

김어진 강사는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구조조정에 압력을 받은 대학이 강사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주변에 새 학기 강의를 구하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강사들이 많다. 모두가 속으로 분노를 새기고, 절망하고, 체념한다. 비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압력은 을과 을의 싸움으로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교육부는 새학기 대학에 박사학위 신규취득자 등 '학문후속세대'의 임용을 일정 비율 강제하고 있다(임용할당제). 이들을 강사로 채용한다면 대학은 강사법 개정안 규제를 받게 된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상당수 대학이 일종의 ‘생색내기’로만 이들을 대한다. 대학가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새학기 강사 채용을 시작한 서울대의 21개 단과대 중 임용할당제를 시행하는 곳은 인문대, 미대 등 7곳에 불과하며, 그 비중도 크게 낮다.

바꿔 말하면, 안 그래도 부족한 강사 자리를 두고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들끼리의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는 뜻이다. 결국, 교육의 미래를 담보할 이들은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고, 학생은 더 나빠진 교육 환경에 내몰리며, 대학만이 부담을 비켜가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대학은 '부잣집'이다. 그리고 강사가 내몰린 현실은 기택네 가족, 근세 부부의 현실이다.

김용섭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강사 채용을 둘러싼 문제는 결국 한국 고등교육 전반이 처한 위기를 보여준다. 강사법 갈등은 갈수록 뒷걸음질하는 한국 고등교육의 현주소를 집약했다"며 "특히 사립대학 시스템을 민주적 지배구조로 개선하고, 교육부가 대대적인 감사를 통해 대학의 부담을 키워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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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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