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미국은 우리나라를 뭘로 보는 걸까? 이렇게 물으면 '두 나라는 동맹이잖아'라는 답이 으레 돌아온다. 맞다. 한미는 동맹관계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우리가 공산화되는 걸 막아주고, 피 흘려가며 함께 싸워준 혈맹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을 고마워하고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 남북관계나 우리의 대외관계 관련해서 미국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동맹은 껍데기이고 실제는 '동맹 이하'로 대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바꿔 말해 미국은 한미관계를 갑을관계로 생각하고 우리를 대하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든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작년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체결된 '9.19 남북 군사분야합의서'에 대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유는 한미간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군사분야 합의를 구체화시킨 것인데도 미국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고 합의서를 만들었다고 불편해 했다고 한다.
그래서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 작업은 끝났지만, 남-북-유엔사 간 합의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광객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상대측으로 넘나드는 것은 아직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유엔군사령부가 주한미군사령부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난해 9월 폼페이오 장관의 불편한 심기는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미국에게 우리나라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니 서글퍼진다.
최근 주한 미 대사관의 대사, 부대사, 공보참사관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국익이나 국민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언급을 했다. 6월 7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한국군사학회와 합동참모대학이 공동주최한 국방‧군사 세미나에서 '한미일 협조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이 위안부문제 때문에 시간 끌지 말고 관계를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요구를 했다. 같은 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의 면담에서는 '한국이 중국 통신기업인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면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미 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이다.
날로 격화되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대중 압박카드를 키우려면 한미일 협력을 한미일 동맹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화웨이의 판로를 차단하여 중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해 들어가면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중국을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키우는 방법이다.
그런데 미중 간 무역전쟁에서 화웨이는 많은 문제 중 하나이지만, 대중무역 의존도가 나날이 증가하는 우리에겐 화웨이 문제가 치명적일 수 있다. 아직 사드 후유증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화웨이 문제까지 추가된다면 우리 경제는 힘들어질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는 마당에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이 들어올게 뻔한 일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미국의 대중정책을 위해 우리의 국가이익을 희생하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한편 한일관계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배상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간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한일 정상회담도 안 열리고 있다. 아니 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미국의 요구와 압박으로 급하게 합의된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덮어버리지 않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다. 원천적으로 잘못된 합의를 바로잡겠다는 대국민 공약에 대해 미국은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이나 우리 국민 정서를 헤아리지 않은 채 미국의 국가이익만 생각하고 있다. 동맹국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동맹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만 해야 하는가? 우리 외교관들은 이같은 미국의 태도와 입장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해진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미국을 설득한 정부 책임자는 있었을까?
해리스 대사의 움직임에 뒤이어 로버트 랩슨 주한 미 부대사는 청와대, 정부, 국회를 돌며 '화웨이 문제가 한미 군사안보에 해(害)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쯤 되면 의견교환이 아니라 겁박으로 느껴진다.
한편 미첼 모스 주한 미 대사관 공보참사관은 '한미 우호의 밤'행사에서 60여 년간 건재한 한미동맹을 말하면서 '협력과 공조를 통해 한미 양국이 번영하고 발전해 나가자'라고 했다. '협력, 공조, 한미 양국의 번영',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최근의 미 대사관 관료들의 언급은 미국이 자신의 번영과 발전만 염두에 두고 우리의 희생을 강요한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로 하여금 갑을관계의 피해의식을 갖게 만들었다.
한미공조, 한미 긴밀 협력, 워킹그룹. 우리에게 절실한 말들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미사여구들이 한미관계를 갑을관계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데도 우리로 하여금 자각하지 못하게 하는 마취주사같은 것은 아닌지, 이제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한미관계의 현실에 대해서 냉철하게 복기를 해볼 것을 감히 제안하고 싶다. 그 결과 갑을관계가 아니고 긴밀한 1:1 협력관계로의 새로운 양국간 관계발전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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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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