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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미러>의 현실버전? 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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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미러>의 현실버전? 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가 온다

[삶은경제] 기업과 국가, 누가 지배하는가

기술의 노예가 된 인류의 미래를 풍자하며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는 호평을 받는 SF 드라마 <블랙미러(BLACK MIRROR)>. 옴니버스 형식의 이 영국 드라마는, 안본 사람은 있어도 한 편만 본 사람은 찾기 힘들만큼 강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그동안 다섯 개 시즌, 스물 네 편의 에피소드가 공개됐는데 필자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에피소드는 바로 시즌3의 첫 이야기인 '추락(Nosedive)' 편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드라마의 무대는 인스타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평점이 개인의 경제력까지 결정하는 가까운 미래. 꿈에 그리던 집을 발견한 극중 여주인공은 무리를 해서라도 단기간 자신의 평점을 높여 그 집을 사려고 계획하는데, 바람과는 반대로 우여곡절을 거치며 평점 추락을 경험한다. 드라마는 이 평점 추락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매일같이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기 바쁜 '행복한 미소'를 풍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렇게 덩치를 불린 소셜미디어가 결국 인간 삶 전체를 지배하는 알고리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페이스북 "전 세계가 신뢰할 수 있는 화폐 만들겠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페이스북 코인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 페이스북은 지난 18일 블록체인 자회사 칼리브라(Calibra)를 통해 "전 세계가 함께 사용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화폐"라며 암호화폐 리브라(Libra)의 백서(바로가기)를 공개해 2020년 상반기 중 이 코인의 프로토콜인 메인넷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지구촌 구석구석 실사용자만 20억 명을 훌쩍 넘는 초국적 기업 페이스북이 여전히 제도권 밖의 영역인 암호화폐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자 미 금융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 코인 리브라는 그동안 사람들이 예상해 온 방식, 즉 (소셜미디어 스팀잇이 운영하는 스팀코인처럼) 페이스북 이용자에 대한 보상용 코인과 무관하며, 전 세계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가 자신의 본질임을 백서를 통해 당당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This is the goal for Libra: A stable currency built on a secure and stable open-source blockchain, backed by a reserve of real assets, and governed by an independent association."

"리브라의 목표는 실물자산으로 연동되고 독립기구가 관리하는 개방형 블록체인 기반의 안정통화다." (리브라 백서 Section 8에서 발췌)

리브라 백서가 발표되고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리브라의 전망부터 파장까지 온갖 이슈가 폭발하는 중이다. 다른 기업도 아닌 페이스북이 마치 불환화폐(과거 금, 또는 은으로 교환할 수 있어 가치가 안정돼 있던 태환화폐의 상대개념)의 상징인 달러를 비웃는 듯한 이름(리브라는 로마시대 무게 단위로 파운드화 등 여러 화폐의 기호가 되었던 리브라 폰도(libra poundo)에서 따왔다)으로 세상에 나온 이번 사태에 대해 미 의회를 중심으로 적대적인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미 의회 "달러와 경쟁하도록 놔 둘 수 없다"

오는 7월 16일 미 의회가 페이스북을 소환해 리브라 청문회를 열기로 예정된 가운데, 하원 금융위원회 맥신워터스 위원장은 CNBC 방송에 출연해 "리브라가 달러와 경쟁하도록 놔둘 수 없다"며 청문회까지 프로젝트 중단을 촉구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이슈가 암호화폐의 제도권 진입 문제를 넘어 달러가 상징하는 기존 화폐금융제도를 향한 위협이라 본 것이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세계 금융계 전체가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국제기구인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한국을 포함한 회원국에 강력한 내용을 담은 암호화폐 규제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장 큰 움직임은 이달 초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가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애플 등 빅4 IT기업을 대상으로 반독점법 위반 혐의 조사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셔먼반독점법 등 우리 공정거래법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독점 규제 전통을 가진 미국에서 페이스북, 구글 등 대형 IT기업 분할 이슈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민주당 내 유력 차기대권주자로 손꼽히는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이다. 그녀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BreakUpBigTech(빅테크 해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리브라 관련 뉴스링크를 공유했다.

▲ 페이스북이 공개한 암호화폐 리브라. ⓒflickr.com

기업과 국가, 누가 지배하는가?

현재 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를 중심에 놓고 벌어지는 갈등의 양상은 조금 더 그 범위를 확대해 보면 기업과 국가의 경계를 둘러싼 다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보면, 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는 예전만큼 빠른 속도로 이용자가 늘지 않고 있는 페이스북이 유저의 발목을 더 꽉 붙들고 싶은 마음에 낸 고육책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놓은 백서는 이제 화폐와 금융의 영역에서조차 기업은 국가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편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됨을 웅변한다. 이미 초국적기업들은 영리활동의 영역을 벗어나 합의의 영역, 정치와 국가의 영역까지 자신들의 권한과 책임으로 인식하며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필자는 그래서 페이스북 본사가 한국이 아니라 독점 규제가 여전한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자조하는 사회에서 더 나은 정부, 더 나은 국가가 무엇인지를 토론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블랙미러>가 현실이 되며 우리가 추락할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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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현

풀뿌리신문 기자로 출발했지만 정의당에서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PD라는 명함을 얻었다. 짧은 국회보좌관 활동을 거친 뒤, 지금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일한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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