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여야 교섭단체 3당 합의문이 부결됐다.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한다"고 한 합의문 내용에 한국당 의원들이 수용 불가 입장을 확인한 탓이다. 한국당 의원총회가 의외의 결과로 끝남에 따라 협상 당사자인 나경원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크게 타격을 받게 됐고, 국회 정상화는 다시 멀어졌다.
한국당은 24일 오후 4시부터 의원총회를 열고 이날 오후 3시 30분경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간 합의한 합의문에 대한 추인을 시도했다. 합의문은 "패스트트랙 법안은 각 당 안을 종합해 논의한 후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한다", "경제원탁토론회를 개최한다", "추경은 임시회에서 처리하되 재해 추경을 우선 심사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관련 기사 : 여야,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합의 문구 만들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과정에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국회가 파행된 데 깊은 유감"이라고도 했다. 향후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과정에 "합의 정신"을 우선시한 데다 여당 원내대표가 사실상 사과까지 한, 한국당에 대폭 양보한 합의였다.
그러나 약 1시간 30분가량의 의총 논의 끝에 나온 한국당의 결론은 예상 외로 '부결'이었다. 나 원내대표는 의총 결과 브리핑에서 "합의문에 대해 의원들께서는 '조금 더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된다'는 의사표시가 있었다"며 "저희 당에서는 추인이 어렵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따라 한국당의 임시국회 관련 방침은 전날인 23일 발표한 대로 인사청문회와 북한 선박 관련 상임위 등 제한적·부분적 등원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당 원내 관계자에 따르면, 결론은 표결 등 절차 없이 만장일치 방식으로 내려졌으며 핵심적인 쟁점은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법안을) '합의 처리한다'는 명확한 표현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가 '극적 합의'에 이어 2시간 만에 '극적 부결'됨에 따라 여야 간 대치 정국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특히 원내대표단 간 협상 결렬도 아니고, 한국당 의총에서 막판에 부결되는 형식으로 여야 합의가 무산됨에 따라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 효과도 부인할 수 없다.
여야 중간에서 협상을 중재에 힘써온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조차 "한국당에 전향적 입장을 촉구한다"며 "매우 유감"이라고 기자들과 만나 말했다. 오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무리한 주장"이라며 "국회가 또다시 파행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여야 원내대표 간 서명까지 주고받은 합의안이 의원총회에서 부결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협상 책임자인 원내대표는 정치적 책임 논란을 떠안게 된다. 나 원내대표가 지휘한 협상의 결과물이 자당 의원들에게 불신임을 받은 꼴이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2017년말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가 예산 관련 합의안에 대한 의총 추인을 요청했지만 부결됐던 적이 있고, 그보다 앞선 지난 2014년 세월호특별법 입법 과정에서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자당 의원총회에 협상안 추인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하며 정치적 최대 위기를 맞았었다.
2011년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미 FTA 비준안 협상안을, 2009년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미디어법 합의안을 각각 의총에 부쳤지만 부결로 타격을 입었다. 2004년 연말에는 이른바 '4대 개혁법안' 처리를 놓고 한나라당과 협상해온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협상안이 우리당 의총에서 부결된 이후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특히 여권에서는 지난 2달간 국회 정상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로, 대여 강경 투쟁 노선을 이끄는 황교안 대표의 의중이 작용한 것 아니냐며 '황교안 가이드라인'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나 원내대표가 들고온 협상안이 의총에서 거부당함에 따라 여권은 이같은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내대표 합의문까지 부결시킨 한국당의 강경론이 재확인되면서, 국회 파행의 책임은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민생법안 처리까지 외면한 한국당 쪽으로 쏠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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