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간 국회 정상화 협상이 도돌이표를 그리는 가운데,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할 일을 하겠다"며 부분적 등원 방침을 선언했다. 검찰총장·국세청장 인사청문회와 삼척항 북한 선박 사태 등 현안에 대해 원내에서 대응하기 위해서다. 다만 한국당은 "국회 정상화는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있고, 문희상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이 추진하는 24일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에도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일부 상임위와 청문회 등이 부분적으로 정상 가동되더라도 당분간 여야 대치 국면은 이어질 전망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3일 오전 성명서를 내어 "정권의 폭정과 일방통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국회는 정상화되지 않더라도 한국당은 국회에서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구체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권력기관장인 검찰총장·국세청장의 경우 인사청문회를 통해 적극 검증할 것"이라며 "또한 북한 선박 삼척항 입항 사건의 경우 그 무능 안보와 무장해제, 청와대 중심 조직적 은폐 의혹 등에 대해 국정조사를 추진함과 동시에 국회운영위원회, 국방위원회를 통해 실체를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당은 삼척항 북한 선박 사태에 대해 당력을 기울여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당은 일요일인 이날 오후 국회에서 당 지도부와 당원 등 5000명(주최측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규탄대회를 열었고, 앞서 20~21일 이틀간은 연이어 '안보 의원총회'를 열기도 했다. 삼척항 사태로 보수층의 안보 우려 심리가 자극된 것이 한국당의 부분적 의사일정 복귀에 명분이 된 셈이다.
나 원내대표는 "아울러 (인천 등의) '붉은 수돗물' 사태 책임 및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위해 환경노동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를 통해 따져 볼 부분을 따져보고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법사위, 기재위와 현안 관련 상임위인 운영위, 국방위, 환노위, 행안위 등 총 6개 상임위에는 한국당 의원들이 출석해 정상적으로 상임위가 이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북한 선박 관련, 운영위·국방위 외에도 정보위, 외통위, 농해수위(해경 관련) 등도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의 국회 정상화 의지를 그 어디에서도 읽을 수 없다"며 여권을 비판했다. 그는 "실제로 지난 1주일여 간, 더불어민주당 측으로부터 어떠한 협상 시도도 없었다"면서 "언론에는 마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 국회를 열고자 한다면 이렇게 제1야당을 몰아붙이고, 나아가 잘못된 정책과 추경을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오직 야당 탓, 추경 탓, 남 탓을 위한 여론 프레임"이라고 민주당을 공격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어 "국회의장과 집권여당은 24일 일방적으로 본회의를 열겠다고 말하고 있다"며 "이는 지난 국회 운영 관행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또다른 파행 시도이며, 국회를 중립과 균형의 원칙에 따라 운영해 나가야 할 국회의장이 헌법이 부여한 책무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의회민주주의 훼손"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나 원내대표는 국회 파행의 근본 원인이 "패스트트랙 날치기 처리"라며 "이에 대한 사과도 안 하고, 철회는커녕 합의처리 약속도 안 하면서 일방적으로 국회를 열겠다고 한다. 청와대와 여당이 제1야당의 백기투항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권에 책임을 돌렸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 김현아 원내대변인 논평에서도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불법적·독단적 국회 운영을 자행한 민주당에 대해 사과와 철회를 아직 받아내지 못했다"면서도 "더 이상 무능하고 오만한 민주당에게 국가와 민생을 맡길 수 없어 우리 한국당은 국회에서 야당으로 할 일을 할 것"이라며 "국회 정상화가 아직 안 됐지만, 낭떠러지로 폭주하는 집권 여당의 잘못을 국회에서 바로잡고자 한다"고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국회 정상화 협상 전망과 관련해 "이제라도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한 반민주적 행태에 대해 반성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려 했던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일말의 신의를 기대해 보겠다. 이인영 원내대표의 용기 있는 결단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다"며 나 원내대표의 '성명서'보다 다소 유화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24일 본회의 시정연설을 늦출 수 없다며 한국당에 '조건 없는 복귀'를 촉구하고 있어 여야 간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시정연설은 추경예산안 설명과 제안을 위한 것으로,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하게 된다. 당초 20일로 예정된 시정연설을 24일로 한 차례 연기한 문희상 의장도 더 이상 의사일정을 미룰 수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추경 시정연설이 강행된다면, 본회의 불참은 물론 예결특위 소집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예결특위 위원장은 한국당 소속이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당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한국당의 지적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더 노력하겠다"면서도 "한국당에서 진정성 없는 성명 발표로 정쟁을 일삼고 어깃장만 놓으려 하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라고 했다. 즉 민주당은 나 원내대표의 성명서 발표를 '정쟁 의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박 원내대변인은 "나 원내대표는 민주당을 향해 '제1야당의 굴종만을 강요하는 집권여당', '민주라는 당명이 아까울 지경'이라고 맹비난했다"며 "민주당은 한국당의 굴종을 강요한 적이 없다. 오히려 '반문특위'나 '달빛창문' 같이 말을 바꾸거나 단어의 뜻을 잘 몰랐다고 변명을 일삼는 나 원내대표가 '민주'라는 뜻은 제대로 알고 한 말인지 궁금하다"고 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나이와 지역, 소득 수준 등을 불문하고 '국회는 열려야 한다'는 게 다수 국민의 인식"이라며 "한국당은 국회 운영의 책임만을 여당에게 떠넘기고, 정쟁만 일삼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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