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미 정상회담 전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실제 북한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책임이 남한에도 있는 만큼, 남북 정상회담의 목적을 북한의 비핵화에만 한정 지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해 6월 12일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올해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언급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에 의해 종전선언과 핵 신고를 교환하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는데, 회담 이후 미국 내부 비판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핵 신고' 카드를 꺼내 들었다고 분석했다.
갑작스러운 핵 신고 카드에 북한은 '강도'라는 표현을 쓰며 극렬히 반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인 미군 유해 송환은 예정대로 진행했다. 이는 미국에 불만은 있지만 일단 협상은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그렇게 7~8월이 지나간 이후 9월 19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핵 신고와 종전선언 교환이 북미 간 협상의 핵심이었던 이 때 남북은 이 프레임을 뛰어 넘어 영변 핵 시설 폐기라는 다른 카드를 제시했다. 종전선언과 핵 신고를 덮을 수 있는 더 큰 프레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남북은 평양공동선언 5조 1항에서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하면서 검증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이 합의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다. 문제는 또 다른 당사자인 미국이 이 합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았고, 미국과 협의된 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김동엽 교수는 "한미 사이에 종전선언과 신고‧검증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공유된 의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조항이 한미 양측 간 사전에 논의된 결과였다면 이후 협상은 좋은 방향으로 풀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종전선언과 핵 신고를 영변 핵 폐기와 미국의 상응 조치로 덮어버린 상황에서 북한은 올해 2월 미국과 2차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여기서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와 5개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결과는 회담 결렬이었다.
김 교수는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남북 간 합의한 것을 미국에 요구한 셈"이라며 "따라서 이 회담은 북미 간 결렬이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 5조 2항의 결렬이고 남북이 합의한 사항이 결렬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 북한이 남북 관계에서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태도로 나오는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5조가 무산됐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9월 평양공동선언 전체가 불발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실제 북한의 매체들에서 남한에 중재자나 촉진자 역할 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대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하는 역할은 할 수 없는 것일까? 김 교수는 "아예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북미 간 협상에서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행동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마치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를 하기 위한 디딤돌인 것처럼 인식돼 있고 일정 부분 사실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면 자연스럽게 북미 비핵화 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지,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북한은 남북 간 9월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을 가지고 남한이 트럼프를 설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은 '남한은 우리와 만나봐야 또 우리를 설득하려고 할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며 "물론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남북 정상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는 중요하다. 남북 정상이 남북의 평화를 보여주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깨지는 않지만 담대함을 담은 내용이 필요하다"라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지난 2월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추가적인 정상회담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이에 어떻게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데, 이후 협상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면 우선 2차 정상회담의 결렬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김동엽 : 2차 정상회담에서 북미 양측 모두 서로에 대한 이해 및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실기하고 실수하게 된 것인데, 북한은 실기, 실수라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한이 이렇게 실기, 실수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남한이 제공했다고 본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1차 북미 정상회담에 비해 남한이 아주 깊게, 간접적으로 개입됐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석이 가능해 보인다.
일단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부터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회담에서 나온 북미 공동선언만 보자면 이 회담은 북한의 명백한 승리였다. 또 당시 회담에서 합의문에는 담겨있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나 북한 <노동신문>, 또 회담 이후 나왔던 북한의 입장 등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데 북한은 1차 정상회담 이후 2~3달 동안 종전선언을 대단히 강조했다. 또 안팎에서 들려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 볼 때 북미 간 종전선언과 관련한 약속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일부에서 제재와 연락사무소 이야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것을 보면 상당 부분 구체성이 있는 대화가 오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조치가 담겨있지도 않았던 합의문을 들고 미국에 돌아갔을 때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미국에 돌아와서 본인이 북한과 이야기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인식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합의문을 없던 것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종전선언과 북한의 핵 신고가 교환돼야 한다는 프레임이었다.
이건 북한 입장에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프레임이었다. 북한 입장에서 종전선언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핵‧미사일 시험 유예한 것에 대한 미국의 대응조치라고 생각했다. 즉 북한은 이같은 조치를 비핵화 프로세스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고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 정도는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은 싱가포르의 북미 공동선언을 통해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동이 걸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어떻게 보면 치욕스럽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중국의 비행기를 빌려 타고 싱가포르까지 날아갔다. 이를 보더라도 김 위원장이 이미 비핵화를 향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은 인민들에게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나 국제사회의 제재에 굴복해서 싱가포르행을 택했다고 설명할 수는 없었다. 대신 미국과 담판을 통해 인민들이 경제에 매진할 수 있는 안보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핵을 사실상 내려놓으려는 상황에서 그러면 안보는 어떻게 하냐는, 내 자식들 군대에 가 있는데 국가 안전은 누가 지키냐는 생각이 인민들 사이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한 이유를 정당화하고 인민들의 불안함을 달랠 수 있는 카드가 종전선언이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를 통해 종전선언을 받아 왔다고 하면 인민들은 김 위원장의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은 최소 9.9절 전에 이를 달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돌아가서 엄청난 비판에 시달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종전선언에 대한 확답을 주는 대신 '핵 신고'라는 또 다른 조건을 던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해 7월 평양에 들어가서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이 더 많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폼페이오가 평양을 떠난 이후 미국이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를 들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거기서 판을 깰 수 없었던 북한은 일단 북미 합의대로 유해송환은 진행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당시 양보하고 핵 신고와 종전선언을 교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설사 북한이 양보해서 미국이 제시한 이번 허들을 넘었다고 치더라도 이후에도 허들은 계속 생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의 모든 나라와 관계에서 강자가 패자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프레임을 계속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일단 약속한 유해송환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이 허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9월 19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는 여기서부터 찾을 수 있다.
프레시안 : 남북 정상회담이 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인가?
김동엽 : 평양에서 열린 당시 회담의 결과를 보면 남북은 '종전선언 대 핵 신고' 라는 허들을 넘지 않은 상태에서 '장대높이뛰기'를 시도했다. 즉 기존에 북미 간 이야기되고 있던 차원을 넘어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할테니 미국에게 싱가포르 합의 정신에 따라 다음 조치를 취하라는 식으로 협상의 프레임을 바꿨다. 남북은 9월 평양 공동선언 5조에 이 내용을 담았다.
북한은 자신들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없앴다면서 이제 종전선언 하자고, 출발점에 들어섰다고 했는데 미국은 "그게 출발점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풍계리 정말 없앴는지 모르겠는데?"라며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래서 북한은 5조에 검증을 이야기했고 1항에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집어 넣었다.
즉 미래 핵의 물리적 장소인 풍계리와 미래 미사일과 관련한 물리적 장소인 동창리를 모두 없애고, 미국이 못믿겠다고 하니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이를 진행하겠다며 검증을 시사한 것이다. 물론 1항에는 동창리만 언급돼있으나 이는 풍계리에 대한 검증도 가능하다는 의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미국에서 종전선언을 못하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북한의 풍계리 폐쇄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북한이 미국에 "너네들이 여기 들어와서 직접 보라"고 한 것을 미국이 넙죽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검증단이 들어갔는데 북한 말대로 정말 풍계리가 모두 폐쇄됐다면 미국은 종전선언을 해줘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부분에 있어서 남한과 미국이 협의가 안됐던 것 같다는 점이다. 즉 한미 사이에 종전선언과 신고‧검증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공유된 의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조항이 한미 양측 간 사전에 논의된 결과였다면 이후 협상은 좋은 방향으로 풀렸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전에 논의된 것은 없었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은 하노이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은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민생 부문의 5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는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5조 2항과 연관돼 있는 사항이다. (평양공동선언 5조 2항 :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즉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남북 간 평양에서 합의한 내용을 미국에 요구한 셈이다. 따라서 이 회담은 북미 간 결렬이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 5조 2항의 결렬이고 남북이 합의한 사항이 결렬된 것으로 봐야 한다.
지금 북한이 남북 관계에서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태도로 나오는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평양공동선언의 5조가 무산됐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9월 평양공동선언 전체가 불발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의 매체들에서 남한에 중재자나 촉진자 역할 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프레시안 : 종합해보면 북한은 남북이 합의한 대로 북미 회담을 추진했고 이를 미국이 보장해줄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은 셈이다.
김동엽 :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정상회담 당시 평양공동선언에 사인하기 직전 김 위원장과 단독 회담을 했다. 당시 회담 마치고 나오는 문 대통령의 얼굴이 상당히 어두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북한이 이 때 5조 2항에 언급돼있는 미국의 상응조치 부분에서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 같다. 즉 제재 해제를 위해 남쪽이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 같다.
실제 남북 정상회담 끝나고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순방 중간중간에 계속 제재 해제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도 남한 정부가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라는 문구를 집어넣는 대신 제재 해제에 대한 협조를 요청받은 셈인데, 대통령은 이렇게 할 수 있지만 참모들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를 말렸어야 했다.
프레시안 :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부터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남한의 상황 인식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인가?
김동엽 :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본다. 평양공동선언에 넣은 내용을 미국에 설득했다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남한 정부가 이러한 노력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이야기는 안하고 대통령이 제재 이야기만 하다가 미국이 세게 견제하니까 사실상 북미 중매 역할을 끝낸거 아닌가 싶다.
북미 양측이 하노이에서 만나게 됐는데 중매를 했던 이후에 남한은 '이제 만나게 했으니까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빠진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믿고 갔다가 결국 창피만 당하고 돌아온 셈이 된 것이다.
북한의 실기는 경제적 발전을 해야한다는 김 위원장의 조급함과 상황 자체에 대한 안이한 판단, 여기에 남한의 중재 등이 맞물리면서 벌어진 일로 봐야 한다.
프레시안 : 미국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나?
김동엽 : 1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로 코너에 몰려있던 트럼프는 그래도 북한과 협상을 복원해보기 위해 종전선언 대 핵 신고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김 위원장의 양보를 얻어내려 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 프레임은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문 대통령이 10월 이후에 제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미국은 남한에 경고장을 날렸다. 그래서 우리가 중매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북미 간 협상 상황을 6월 12일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빅딜' 아니면 '노딜'로 가려고 했을 것이다. 트럼프가 강자로서 북한을 굴복시킨 상태로 승전물을 가지고 워싱턴에 돌아갈 수 있으면 협상이 성과가 있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협상 결과물은 없는 것이었다.
또 트럼프는 북한이 빨리 비핵화를 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는 조급함을 읽은 것 같다. 그걸 알고 북한에 더 센 요구사항을 던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핵화 협상의 답은 북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래도 북한이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는다고 언급했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했다. 즉 트럼프는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다고 하더라도 협상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한 지난해 5월 24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의 '목적' 바꿀 때
프레시안 : 북한이 남한의 남북 정상회담 제의와 인도적 지원에 대해 일체 대응하지 않는 것이 핵 문제와 관련한 남한의 중재 역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인가?
김동엽 : 그렇다고 본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북한은 자신들이 남한을 믿은 것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불신도 있고.
그런데 지금 비핵화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 이유는 북미 간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은 아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불신이 있지만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대목에서 북한을 불신하기보다는 오히려 신뢰하고 있을 수 있다. 싱가포르, 하노이까지 온 김정은을 통해 미국은 오히려 그의 비핵화 의지를 두 번이나 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에 의지가 있냐고 묻는 것은 '너가 비핵화 한다고? 너 비핵화 하는 순간 죽여버릴 건데 그래도 할 수 있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으니 지금보다 더 꿇으라는 것이다. 즉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신뢰로 인해서 생기는 강자의 유혹에 빠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는 미국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보장자 역할이 아니라 미국 내부를 움직이는 것에 힘을 써주는 역할이 더 필요하다.
프레시안 : 이렇게 되면 앞으로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김동엽 : 북한은 남북, 북미 관계를 따로 가져가려는 것 같다. 즉 북미 관계에서 남한의 중재나 촉진 역할을 기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프레시안 : 그러면 북미 간 협상에서 이제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어진 것인가?
김동엽 : 아예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북미 간 협상에서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행동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이 남북관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마치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를 하기 위한 디딤돌인 것처럼 인식돼 있고 일정 부분 사실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면 자연스럽게 북미 비핵화 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지,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긍정적인 선순환 관계가 되면 좋겠지만, 지금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미국의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남북이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남북 간 군사적 합의를 이행하고 사람이 오가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고 이를 국제사회에 보여준다면 그 자체로 미국을 설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여전히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가지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동엽 : 우리가 북미 간 사안에 대해 전혀 개입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친서만 보더라도 현재 남한이 상당히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지금까지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가지고 있던 구조를 깨자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북미를 견인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해 5월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꺼질 뻔한 1차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렸다. 또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7~8월 교착상태를 보였던 북미 간 협상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다시 시동을 걸게 했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이 1,2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남한의 역할에 대한 북한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한은 남북 간 9월 합의 내용을 가지고 남한이 트럼프를 설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은 '남한은 우리와 만나봐야 또 우리를 설득하려고 할거야'라는 생각을 갖게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를 설득하겠다는 것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남북 정상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면 남북 정상이 어떤 메시지를 들고 나가야 할까? 저는 여기서 남북의 평화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게 좀 교묘하게, 즉 국제사회의 제재를 깨지는 않지만 뭔가 좀 담대함을 담은 내용이 필요하다. 미국이 보면 기분은 나쁘지만 당장 직접적으로 견제할 수는 없는 것이 필요하다.
김정은, '새로운 길'로 가나?
프레시안 :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연말까지로 협상 시한을 사실상 정해놓은 상태다. 또 올해 신년사에서는 '새로운 길'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이 북미 협상이 아닌 새로운 길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김동엽 : 북한이 유엔이나 국제기구, 국제사회에 식량 문제를 이야기하며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구조 신호를 보낼까? 아프리카 돼지열병 문제도 국제사회에 이야기한 이유가 뭘까? 하나는 정말 이게 문제적인 사안이고 북한이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전 북한이었으면 국제사회에 이야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번에 이렇게 태도가 바뀐 이유는 '우리 국가 제일주의'와 '새로운 길'에 있다고 본다.
북한은 지금 만들어 놓은 핵을 장기적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핵을 내려놓고 경제 발전하고 국가를 정상적으로 가져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해내기 위해 가장 빠른 길은 미국과 담판이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핵 신고' 카드를 들고 나왔음에도 북한이 협상 판을 깨지 않은 이유는 미국과 담판이 경제 발전과 정상국가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인 지난 3월 주중국, 주러시아, 주유엔대사를 평양으로 소집했고 중국과, 러시아와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지만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우군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또 남한에 대해서도 실망은 했지만 남북 관계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게 남북이 나름 계속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에 명분이 생길 수 있다. 이게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속 이러한 방향으로 만들어 가려는 생각이 북한에 있는 것 같다. 북미 간 담판이 아닌, 정교한 '플랜 B'를 만드는 것이 북한의 새로운 길이라고 본다.
김 위원장은 연말까지는 지름길을 생각하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자력 갱생'을 바탕으로 먼 길을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주변국뿐만 아니라 특히 남한과 잘 지내야 한다. 남북관계가 나쁜데 국제사회에서 평화나 비핵화를 이야기할 수 없지 않나? 그러니까 이를 통해 국제사회와 소통하려고 할 것이다. 대북 제재를 통해 굴복시키려는 세력을 '닭 쫓던 개'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완전히 미일 동맹으로 붙어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유연함과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한미동맹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이 손을 놓지 않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이 한반도의 평화를 전달할 수 있는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즉 남한에서 북한에 이번에는 북미 정상회담이나 비핵화 이야기하지 말고 남북 이야기하자고 어젠다를 던지면 북한도 나올 가능성이 높다.
덧붙여 북한이 연말을 제시한 이유는 북한이 미국의 정치 일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가 있으면 선거 앞뒤로 6개월에서 1년 동안은 뭔가를 하기가 어렵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내년에 있기 때문에 북한은 그걸 알고 연말이라는 시한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크게 양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남북관계를 원활하게 가져가면 이것 때문에 미국이 움직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에 대한 반발로 지난달 초에 방사포와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김동엽 : 북한의 반응을 너무 확대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북한은 상대방의 훈련에 대한 자신들 자체 매뉴얼에 따라 그들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본다. 또 이렇게 해야 나중에 협상 국면에 가서 이를 하나의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남쪽만 훈련하고 북쪽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인민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군의 사기 문제도 걸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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