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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안 잡아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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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안 잡아 먹을까?

[발언] 스크린쿼터 지키기 시위 현장의 연설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이기도 한 김민웅 박사가 2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지키기 시위 현장에서 한 연설의 원고다. 이 연설에서 김 박사는 스크린쿼터 축소는 '한국영화 100년'을 고스란히 미국 측에 내놓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우리의 '문화주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 스크린쿼처 축소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집자〉

맹렬하게 춥습니다. 우리가 처한 시대적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는 날씨입니다. 그러나 본래 독립운동은, 눈보라 치는 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면서 하는 겁니다. 이전 우리 조상들의 독립투쟁에 비하면 이건, 온돌방입니다.

강한 자들에게 많이 빼앗기면서 살아 왔던 우리 조상들은 자손들에게 지혜로운 말씀을 많이 남겨 놓으셨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어 먹-지."

가난한 살림에 자식새끼들 어떻게든지 먹여살려보겠다고 그 힘든 고개를 떡판을 머리에 이고 넘고 있는 어머니에게, 호랑이는 친절한 척 하면서 말했습니다.

자, 여러분. 이 말을 믿어야 될까요, 믿지 말아야 할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 떡 하나하나 주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다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어머니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덜컥하고 진상하듯이 내준 그 떡이 도대체 무엇인지 혹 아십니까? 그 떡은 나운규의 저 피맺힌 아리랑 고개를 넘어, 김승호 선생의 힘겨운 마부의 시대를 지나고 저 쓸쓸한 맨발의 청춘으로 골목길을 돌아 나와 서러운 별들의 고향을 뒤로 하고 저 찬연한 1993년 스크린쿼터 사수의 언덕을 함성을 울리며 통과해 온, 한국 영화 100년의 세월로 빚은 떡입니다.

그 100년의 세월을 이렇게 그냥 허무하게 내준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 떡의 사연을 제대로 모르고 욕심 부리며 함부로 먹다가 체해도 크게 체하지요. 이 경우, 약도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나타난 호랑이는 미소 지으며 약속합니다. FTA만 되면, 떡집이 이 동네 저 동네 많이 늘어날 테니 앞으로는 잘 살게 될 거야. 그 떡 집 주인이 호랑이가 된다는 말은 쏙 빼놓는 겁니다.

그런데 말이란, 바다 건너면 그 해석이 달라집니다. FTA, 의 F, 즉 Free는 우리에게 자유로 번역되는데, 저쪽에서는 공짜, 거저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 꺼 거저먹겠다, 이런 심보가 이 FTA에 담겨 있는 겁니다. 그래서 스크린쿼터, 거저 먹으려 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협상도 하기 전에, 성의표시라면서 우리 쪽의 누군가가 매너 좋게 이거 한번 들어보시지요, 저의 가게에서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 하고 거저 내준 것 아닙니까?

그런데 FTA의 뜻에는 또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F는 Flying, T는 Tiger. 나르는 호랑이, 즉 비호(飛虎)란 뜻입니다. FTA 협상이란, 나르는 호랑이 등에 타는 겁니다. 우리는 이 호랑이 등에 탄 겁니다. 남은 길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호랑이한테 먹히든지, 아니면 호랑이를 잡든지.

그러면 FTA의 A는 뭐냐? 먹히면 아이고가 되는 거고, 호랑이 잡으면 아하!가 되는 겁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삽니다. 그 정신이 바로 우리 영화, 우리 문화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요, 우리의 살점이요, 우리의 피 입니다. 그런데 이걸 빼앗기면, 그 다음에는 혼비백산해서 "날 잡아 잡수" 하게 되는 겁니다.

이거 빼앗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제도 말기에 가서야 비로소 우리의 문화, 우리의 말, 우리의 글을 뺏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것부터 먼저 내주고 나서 하는 FTA 협상은 볼 장 다 보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농업이 사라지고, 우리의 문화가 사라진 들판은 그야말로 "황성옛터"가 되는 겁니다. 들도 빼앗기고, 봄도 빼앗기는 겁니다. 빼앗긴 들에 봄이 오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꾼 동네 잔디 구장에서 동네축구로 몸 풀고 아시아 경기에서 막 전적을 올려 신이 나고 있는 판인데, 이젠 잘못하면 동네축구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스크린쿼터는 수도꼭지와 같은 것입니다. 야, 거 물맛 좋은데 하고 다들 칭찬해주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난데없이, 그 수도꼭지 좀 잠 궈 봐, 쬐금 씩 나와도 다들 그거 찾을 거야. 찔찔 나와도 그거 찾아. 걱정 마. 물맛 좋으니까. 그리고는 자기들 수도꼭지는 왕창 틀어놓습니다. 그렇게 찔금 찔금 나오다가 나중에는 아예 안 나오게 되는 겁니다.

유통이 막히면 제작도 끝나는 겁니다. 한국 영화의 가뭄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건 관객의 선택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일이 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관객을 우습게 보지 마, 좋은 영화 만들면 되잖아. 냅다 등만 떠다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꼭지가 잠겨지고 있는데 좋은 영화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 바람에 이렇게 분노하고 좌절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영화인들에게서 좋은 영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담배도 피고 영어도 하는 저 호랑이는, 이제 스크린쿼터 축소로 쫘-악 넓어진 길을 따라 후속부대를 이끌고 이제 점령군으로 이 땅에 위풍도 당당하게 당도할 겁니다. 이걸 초장에서부터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자기 땅에서 슬픈 망명자가 될 겁니다. 자기 땅에서 하염없이 헤매는 유랑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단지 그 격분과 슬픔을 토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만 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여기에 울분의 표정을 지으려고 모여든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모였습니다. 우리 한국 영화를 사랑하고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우리의 미래를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에 모인 겁니다.

그 뿐입니까? 아닙니다. 임권택을 사랑하고 안성기를 사랑하고, 트위스트 김을 사랑하고 정지영을 사랑하고 박찬욱을 사랑하고 박중훈을 사랑하고 정진영을 사랑하고 장동건을 사랑하고 최민식을 사랑하고 전도연을 사랑하고 백윤식을 사랑하고 문소리를 사랑하고 허준호를 사랑하고 김희선을 사랑하고 설경구를 사랑하고 황정민을 사랑하고 이영애를 사랑하고 지진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에 온 겁니다. (이름 빼먹었다고 섭섭해 하지 마시고….)

그 모든 감독과 그 모든 배우와 그 모든 작가와 그 모든 스태프를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에 온 겁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마라톤을 사랑하고, 올드 보이를 사랑하고 웰컴투 동막골을 사랑하고 왕의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에 온 것입니다. 아, 사랑하는 이들이 절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작 보고 싶은 것은 이들이 힘 있게 일어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가슴 벅찬 감동이 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을 뜨겁게 목격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바로 그 시작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우리 역사가 또 한번 바뀌는 출발점입니다. 호랑이는 우리 손에 있습니다. 독 안에 든 쥐입니다. 쥐가 좀 커서 그렇지. 이건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독 안에 든 쥐가 됩니다.

우리의 뜻대로 될 겁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될 겁니다.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될 겁니다. 사랑은 희망이요, 믿음입니다. 패배주의가 설 곳은 여기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랑이 완성된다는 기쁨만이 출렁이는 겁니다.

모두 다 같이 뜨거운 함성을 지릅시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문화주권 지켜내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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