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27일 김정태 국민은행장을 '도덕적, 경영적 문제인물'로 공표하며, 금감위원회에 대해 추후 국민은행장에 대한 인사자료로 활용하라고 통고했다. 감사원이 금감위에 대해 은행장에 대한 인사자료 활용을 통고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시장의 '이상한 반응'**
그런데 이날 시장에서는 '이상한 반응'이 나왔다. 대다수 은행주가가 떨어진 반면 도리어 국민은행 주가는 오른 것이다. 이날 증시에서는 상장된 11개 은행 주식 가운데 8개 종목이 떨어진 반면, 국민은행은 0.68%, 조흥은행은 0.50%, 부산은행은 0.10%가 올라 국민은행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시장은 냉정한 곳이다. 감사원 발표가 시장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주가는 급락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국민은행 주식은 평소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CEO 주가'가 가장 많이 반영된 주식으로 평가받아왔다. 이런 마당에 정부 감사기관이 CEO의 도덕성과 경영능력을 문제삼고 나왔으니, 감사원 지적이 맞는 것이었다면 주가는 폭락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시장은 정반대로 반응했다.
한마디로 말해 시장의 반응은 "감사원, 어이없다"였다.
***감사원 주장대로 김정태는 '악덕 CEO'인가**
감사원은 그동안 감사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국민은행을 샅샅이 훑었다. 이 과정에 정부가 '김정태 죽이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추측이 국내외에 번지면서 간단치 않은 물의를 빚었고, 이에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미국 뉴욕금유시장에 국가IR(투자설명회)을 나간 자리에서 "김정태 행장을 결코 교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하기에 이르렀고 청와대 인사보좌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감사원의 이번 발표가 나왔다. 감사원이 문제 삼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은행장은 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하거나 이행방법을 결정하면서 개인의 이익보다는 은행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여야 하고 일반투자자 등 제3자로부터 내부정보를 이용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여야 하나, 2002년 2.4분기 경영실적 악화내용이 공시되면 주가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주식매수선택권 행사신청을 함으로써 내부정보를 이용한 행위라는 진정 및 투서가 제기되는 등 의혹을 초래했다."
요컨대 김정태 행장이 내부정보를 악용해 '임원들에게는 가장 유리하고 은행에는 가장 불리한 방법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감사원 지적대로라면 김행장은 아주 질 나쁜 '악덕 CEO'다.
김행장은 지난해 8월6일 스톡옵션 40만주중 20만주에 대한 권리를 행사, 1백10억원을 벌었다. 하지만 그는 세금을 낸 뒤 67억원을 수재민 등 사회 음지의 소외된 불우이웃에게 환원해 '한국 도네이션(기부)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고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감사원은 그러나 이런 대목을 쏙 빼고 마치 김행장이 사복을 채우기 위해 은행에게 큰 피해를 입힌 '악덕 CEO'인양 발표했다.
감사원은 또 김행장이 주택은행장 취임후 3년간 매달 1원씩만 받고 그대신 스톡옵션이라는 국내초유의 승부수를 던진 뒤, 은행을 국내최대 우량은행으로 키운 대목을 간과했다. 김행장은 이 과정에 대우,현대그룹에의 기존 대출금을 전면 회수해 은행에 가해질 뻔했던 2조원대의 천문학적 부실을 예방하는 탁월한 위험관리 능력을 보임으로써, 은행을 외국인 주식보유비율이 70%를 넘는 외국인 선호1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또한 감사원이 주장한 '내부정보 이용설'도 설득력이 없기란 마찬가지다. 김행장의 스톡옵션 행사가는 5만2천4백원이었다. 그후 2.4분기 경영실적이 발표됐고 그러자 국민은행 주가는 도리어 올랐고, 경영실적 발표시 대다수 애널리스트들은 향후 주가가 8만~9만3천원이 될 것으로 평가했었다.
감사원 발표를 접한 시장의 반응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것이었다.
***'감사원 신경'을 건드린 김정태**
감사원이 이번에 이른바 '김정태 비리'를 금감위에 통고하며 추후 인사자료로 활용하라고 한 것은 한마디로 말해 "짜르라"는 것이다. 금감위는 이에 대해 김행장의 스톡옵션 행사에는 법적 문제점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감사원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은행의 정부지분이 9%밖에 안되는 마당에 70%의 외국투자가들이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김행장을 어떻게 우리 보고 징계하라는 것인지 어이없다"고 눈쌀을 지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은 왜 이런 통고를 했을까. 이와 관련, 여러가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동안 김정태행장이 감사원의 '신경'을 여러 번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김정태 행장은 직설화법을 쓰는 스타일이다. 김행장은 스톡옵션 행사 며칠 뒤인 지난해 8월12일 한국경제학회 초청으로 연세대에서 감사원과 정부의 신경을 건드리는 다음과 같은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짧은 시간내에 상당한 구조조정을 이뤄냈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앞으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향후 구조조정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사항들을 몇 가지로 요약해 말하겠다 .
첫번째 걸림돌은 각종 금융당국의 감사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을 우량은행과 공적자금투입은행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단 공적자금투입은행으로 분류되면 이 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각종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감사를 받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 예금보험공사, 금융감독원, 국회 등의 감사가 줄줄이 이어져 아예 감사대비팀을 운영하는 곳도 있을 지경이다. 이들 은행에게는 선진금융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해도 감사다 뭐다 해서 역량을 갖출 시간이 없다."(프레시안 2002.8.13자)
김행장은 이어 감사원의 이름을 거명하며 구체적 직격탄을 날렸다.
"세 번째로, 민영화 문제를 들 수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에 대해서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민영화를 말하면서도 1백% 민영화를 안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정부가 9%, 해외투자가들이 7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해외투자가들은 '정부가 관여하지 않느냐'고 매번 질문해 온다.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국민은행이 민영화되었다면서 감사원 감사, 심지어 공기업 평가단의 감사를 받고 있다. '우리가 왜 공기업이냐'고 공기업 평가단에 항의를 했더니 그 심사에서 국민은행이 꼴찌가 되었다. 수익을 올려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민영화하려면 정부는 한 주도 갖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국민은행은 직원들에게 세 번에 걸쳐 무상주를 지급했다. 10%, 10%, 6%씩 모두 26%의 무상주를 지급했다. 정부는 액면가 이하로 국민은행주를 매입해 현재 국민은행주가가 6만원을 넘어도 안 팔고 있다. 잘 나가는 은행이 있으면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뒤쫓는 은행들도 잘 된다.
기획예산처가 접대비를 통제하는데 세법상 접대비 한도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30억~40억원이 접대비 한도다. 국민은행의 지점만 1천1백개가 넘는데 한 지점에서 1년에 2백만원 쓰면 끝이다. 실제로 지점당 한 달에만 접대비로 2백만원을 쓰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규제하면 어떻게 합니까. 공적자금투입은행을 민영화할 때 정부는 1주도 갖지 말아야 한다."(프레시안 2002.8.13자)
***시장의 '큰 걱정'**
이번 감사원 발표를 본 시장은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정부가 또 시장에 끼어들려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CEO의 됨됨이는 시장이 평가한다. CEO 퇴출 여부는 시장이 하는 것이지, 정부가 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인 감사원은 시장에 개입했다. 국민은행이 마치 IMF사태전 정부지분이 1백%인 은행인양 착각하고 있는 성싶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시장의 반응은 한마디로 "김정태 말대로 정부는 빨리 국민은행 주식을 팔고 더이상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월요일인 오는 30일 어렵게 초청한 외국 투자가 및 언론인들 앞에서 한국에 대한 투자를 호소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가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노 대통령이 아무리 외국투자가들에게 한국에 대한 투자를 부탁하더라도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날이 싸늘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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