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수정주의 역사가'라고 비판한 이후 학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설화(舌禍)를 자초한 양상이다.
***"역사를 억압하는 것은 히틀러 같은 독재자의 특징"**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의 알렉산더 케이사 역사사회정책학 교수는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에 기고한 "수정주의자 낙인찍기"라는 글에서 "역사는 수정되기 마련"이라며 "수정주의 역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히틀러와 사담 등과 같은 독재자의 특징"이라고 주장하였다.
부시는 지난 16일 뉴저지주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지금 역사를 다시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수정주의 역사가들이라고 부르고 싶다"며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을 비난한 바 있다.
케이사 교수는 기고문을 통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역사에서 전쟁이나 주요 정치 갈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처음엔 항상 승자에 의해 기록되나 이러한 공식 기록은 항상 오류가 있어왔다"며 "역사가들이 보다 정확한 자료와 새로 발견된 문서를 통해 이전의 역사를 수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위정자들이 이러한 수정주의 역사가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나 수정주의 역사학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표상"이라며 "수정주의 역사를 억압하는 것은 스스로 히틀러나 사담 후세인 같은 독재자임을 밝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케이사 교수는 "미국 역사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볼 수 있다"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베트남 전쟁과 냉전에 대한 역사 기록을 들었다. 요컨대 "국방부의 기록물들과 구소련의 자료들이 새로 공개되면서 과거의 역사는 수정되고 다시 써진다는 것"이다.
***"부시가 바로 수정주의자"**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이며 <해방된 미국>의 공동저자인 이보 댈더와 제임스 린지도 23일(현지시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에 '부시가 역사를 다시 쓰도록 놔두어선 안 된다'라는 기고문을 통해 "이라크 전쟁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가 전후 9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부시가 말 바꾸기로 역사를 수정하려 한다"면서 "역사를 수정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들은 "부시가 미국 정보국이 잘못되었는지를 조사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이라크 국민들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주장만 하고 있다"며 "지금 시급한 것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의 근본적인 명분은 후세인에게서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9일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 전쟁 전엔 "이라크가 WMD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지금은 'WMD' 대신 'WMD프로그램'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발언수위를 낮추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러한 비판의 반향은 미국 정치권에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이라크의 WMD보유에 대해 백악관이 과장했는지에 관한 조사를 시작한 이후 민주당의 로버트 버드(웨스트 버지니아) 상원의원이 "우리는 백악관이 이라크의 실제적 위협에 대해 의심을 하는 사람들을 수정주의 역사가라고 비판하는 말을 여러 차례 들어왔으나 내가 보기엔 부시가 수정주의 역사가"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와 아울러 버드 상원의원은 공개청문회와 의회차원의 완벽한 조사를 촉구했다고 AFP통신이 24일 보도했다.
상원 정보위원회의 조사가 내년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부시의 수정주의 발언은 또다시 부시의 발목을 잡을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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