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대한 신뢰가 최근 적잖이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말부터 폭발한 신용카드, SK글로벌 부실 문제로 IMF사태후 크게 나아진 줄 알았던 은행의 리스크(위험)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더니, 최근에는 은행전산망 다운 직전까지 몰고간 조흥은행 파업으로 은행의 대사회적 이미지는 무더기로 한층 악화됐다.
당연히 은행마다 실추된 이미지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한 예로 국내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고위임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임금 동결'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올해는 은행 실적이 썩 좋지 않은만큼 깨끗하게 임금동결을 선언,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질 필요가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연쇄적 노사분규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시점인만큼 '동결 선언'의 대사회적 파급력 및 은행 이미지 제고효과가 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그대신 "영업을 열심히 해 실적을 개선한 뒤 내년에 올해 못 올려받은 상승분까지 함께 받으면 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과연 산별로 진행되는 은행 임단협에서 이같은 주장이 관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나, 최근 은행들이 실추된 이미지 회복을 위해 내심 얼마나 부심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은행의 '작지만 큰 약속"**
국내에서 두번째로 큰 우리은행도 24일 '작지만 큰 약속'을 했다.
우리은행은 이날 제1차 윤리위원회를 열어 윤리강령의 구체적 실천프로그램을 채택, 내달부터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행키로 했다. 눈에 띠는 실천항목중 하나는 5만원을 넘는 경조금품을 제공하거나 받지 않고, 접대도 1인당 3만원이내에서 제한하며, 승진인사때에 일체의 화분이나 화환을 받지 않기로 한 대목이다. 이를 위반할 시에는 인사 등에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우리은행의 손병룡 준법감시인 겸 준법감시실 실장에게 '이런 실천강령들이 과연 지켜질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접대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향락성-고급 접대가 일반화된 우리 사회에서 쉽게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사'를 해야 하는 은행의 입장이기에 쉽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손실장은 솔직하게 답했다.
"솔직히 말해 영업상 우리가 필요해 '고객'을 접대하거나 고객의 경조사에 돈을 보내거나 화환 등을 보내야 할 때는 이대로 지켜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우리 은행원 스스로부터 사회에 모범을 보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 생각이고, 행내에서는 이를 반드시 지키고 때로 외부에서 접대를 받을 때도 반드시 이 원칙을 지킬 것이다.
결혼을 하거나 상을 당했을 때도 영업상 특수대우를 해야 하는 '고객'이 아닌 이상, 행내 임직원은 물론 공무원 등에게도 반드시 5만원이내에서 경조금을 낼 것이다. 요즘 보면 윤리강력 채택후 공무원들도 경조사비는 3만원씩만 내고 있더라. 호텔 등에서 결혼식을 할 때에는 5만원만 내고 식사를 얻어먹어야 하기에 조금 부담스러울 게 사실이나,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대외 접대도 가능한 한 3만원이내에서 멈출 것이고, 행내에서 인사승진시에는 이메일이나 축전으로 대신할 것이다."
***주말 접대골프는 예전 얘기**
손실장에게 현행법상 법인카드로 액수제한없이 사용가능한 '접대비'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이러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나가는 주말경비 지출은 고객을 접대하는 일이 아닌 한 이미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공적자금 투입은행이다. 하루바삐 국민에게서 도움받은 돈을 벌어 갚아야 하는 게 우리은행의 지상과제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법인카드로 주말에 골프를 칠 수 있겠나.
또한 해마다 받는 감사원 감사도 부담되거니와, 이제는 골프장에서 법인카드 여러 장으로 분할해 사용한 비용도 전산망에 다 잡히는 까닭에 주말접대는 가능한 한 피한다는 게 은행 방침이다. 실제로 주말에 법인카드로 골프치는 일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는 또 "은행 문턱이 높았던 과거에는 은행원들이 주로 밥을 얻어먹고 접대를 받고 다녔으나, 은행간 고객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말 그대로 '고객이 왕'이 된 지금은 은행원이 고객들을 접대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며 "은행들이 허례의식을 없애기 위해 자그마한 실천부터 시작하고 접대받는 분들이 이런 마음을 하나씩 이해해주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접대 거품'은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대출때도 윤리경영 심사기준 적용**
손실장은 지금 하고자 하는 '윤리경영'이 단순히 이미지 제고를 위한 쇼맨십이 아니라, 생존 차원에서 하는 작업이며 앞으로 다른 기업들도 이런 일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에는 우리은행도 적잖은 불미스런 사건사고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투명해지고 깨끗해지지 않으면 은행이나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 이는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대세며, 우리는 이 대세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이덕훈 행장은 앞으로 기업여신심사때도 '윤리경영' 심사기준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윤리경영을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더 대출이 쉽고 좋은 조건으로 대출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다 보면 사회가 맑아지고 경제도 튼튼해지지 않겠나."
우리 금융계는 지금 카드채 부실 등으로 큰 진통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은행이 좋아졌다고 하나 IMF이전과 비교해 뭐가 달라졌냐"고 냉소적 반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이 달라졌다. 아니,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많이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우리 경제에 희망을 버릴 때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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