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내년부터 기업들이 30만~50만원 이상이 지출되는 향락성 접대를 할 경우에는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할 증거 자료가 있어야 비용으로 인정키로 했다.
이같은 국세청 방침은 기존의 매출액 대비 일정 한도내에서 개별 사용내역을 따지지 않고 총액 기준으로 접대비를 인정하던 종전의 방식에서 일진보한 것이나, 향락성 접대비 폐지를 추진했던 당초 방침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어서 논란을 낳고 있다.
또한 미국이 개별 접대비 손비인정 한도를 75달러(우리돈 9만원)로 인정하고 있는 대목과 비교할 때에도 손비인정 한도가 과도하게 높은 게 아니냐는 비판을 사고 있다.
***접대비 30만~50만원이하는 묵인**
국세청은 18일 세정혁신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용섭 국세청장.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3차 회의를 열고 이같은 요지의 `세무 부조리 근절대책'을 마련, 재정경제부와 협의를 거쳐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용섭 국세청장의 취임초기 향락성 접대비 폐지 입장 표명으로 재경부 및 일부언론의 반대로 논란을 빚어온 향락성 접대비 문제와 관련, 일정 금액을 초과해 지출할 경우 해당 기업이 업무와의 관련성을 입증할 때에만 비용으로 처리해 주기로 했다. 기준 금액과 입증 방법은 추후 국세청장 고시로 정하기로 했으나, 1건당 30만~50만원으로 제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국세청은 밝혔다.
접대비가 이를 넘으면 접대 담당 임직원과 상대방에 관한 인적 자료와 접대의 업무 연관성 등을 담은 소명 자료를 만들어 세무조사 때나 세무 당국이 요구할 경우에 제춭해야 한다.
국세청은 그러나 골프장과 룸살롱 등 특정 업종을 명시해 접대비 비용 처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은 업종별 형평성을 고려해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
국세청은 이밖에 금품 수수 공무원에 대한 처벌은 물론 금품을 제공한 납세자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한 금품 수수를 중개한 세무대리인에 대해서는 세무조사와 함께 등록 취소, 직무정지 등 중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국세청은 이와 함께 분식 회계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분식회계 기업에 대해서는 이미 낸 세금을 되돌려 달라는 경정청구와 환급을 인정하지 않거나 엄격히 제한할 것을 재경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
국세청의 이번 향락성접대비 인정범위 축소 방침은 폐지에 극력 반대해온 재경부등과의 '절충안' 성격이 짙다. 특히 30만~50만원이하의 접대비는 인정키로 한 대목이 그러하다.
접대비 인정범위를 30만~50만원으로 책정할 경우 1인당 20여만원의 접대비가 드는 '골프장 접대'는 사실상 허용되는 셈이 된다.
아울러 룸살롱 접대의 경우도 상당수 룸살롱 등이 탈세 차원에서 영수증을 여러 개로 쪼개 분할처리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 전망이다.
한마디로 말해 빠져나갈 구멍을 크게 만들어준 게 아니냐는 게 국세청이 이번에 내놓은 '절충안'에 대한 세간의 따가운 여론이다.
미국의 2000년말 현재 1인당 GNP(국내총생산)은 3만5천달러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1인당 GNP는 아직 1만달러가 못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보다 3.5배나 잘 사는 미국의 접대비 인정 상한선은 75달러(9만원)이다. 이 이상의 접대를 받을 경우에는 접대를 받는 쪽이 반드시 영수증 뒤편에 본인의 사인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보다 턱없이 못사는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3~5배나 많은 접대비를 인정하려 하고 있다. GNP 기준으로 따져본다면, 미국보다 최소한 10배이상 많은 접대비를 인정하는 셈이다.
이용섭 국세청장은 취임직후 지난해에만 1조9천억원에 달한 골프장-룸살롱 등의 향락성 접대비를 일본처럼 완전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여론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청장은 이번에 일본처럼 완전폐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미국수준만큼이라도 해야 한다는 여론을 외면,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을 국민 앞에 내놓으려 하고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나, 이청장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에게는 자못 힘 빠지는 결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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