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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엔 꼭 부자만 살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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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엔 꼭 부자만 살아야 합니까

〈전태일통신 21〉노숙자를 양산하는 정부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약 1000여 평 남짓한 이 땅은 서울시 체비지입니다. 타워팰리스를 비롯해서 수십억 원이 넘는 고급아파트가 즐비한 강남의 한 구석입니다. 그리고 1998년부터 우리들 넝마공동체 식구들이 8년째 살고 있는 보금자리이기도 합니다. 아니 보금자리였습니다.

아이엠에프 직후부터 이 세상 천지에 오갈 데 없는 노숙자, 아이엠에프 실직자, 고아, 병자 등이 모여 넝마공동체를 이루고 여기서 살았습니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들이 자포자기와 고통의 나날들 속에서도 비로소 실낱같은 삶의 희망을 찾아보자고 나선 공동체의 터전이었습니다.

그 흔한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화장실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우리들 삶의 존엄성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넓혀가는, 너무나 소중한 우리들 스스로의 일터를 가꾸어 왔습니다. 결코 남에게 의존하거나 폐를 끼치지 않고 주변 아파트단지의 쓰레기들을 주워 자립 생활을 해 왔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결코 정부에 돈 한 푼, 빵 한 조각 요구하지 않았고, 외부의 후원금 하나 받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일해서 먹고 산다는 것, 그것이 우리들 넝마공동체의 자립 원칙이었습니다. 여기를 거쳐 자립에 성공해 나간 사람도 수천 명에 이릅니다.

넝마공동체는 1976년도부터 거지들과 함께 살아 온 윤팔병 선생님이 1986년도에 넝마주이들과 함께 만든 생활자립 공동체입니다. 윤팔병 선생님은 동생인 윤구병(전 충북대 교수) 선생과 달리 일찍부터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다리 밑에서 스스로 자립하며 넝마주이로 줄기차게 살아 오신 분입니다. 그러면서 노숙자와 거지들을 스스로 자립생활을 해나가게끔 변화시키는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실천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주위사람들의 강권으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가게 공동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가진 게 없어도, 배운 게 없어도 사람이 사람 대접받는 사회, 내가 일한 만큼 정당한 댓가를 받는 사회, 그리하여 노동이 즐거움이 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그런 노동의 공동체, 삶의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공동체가 바로 넝마공동체입니다.

얼마 전 정부는 겨울에는 단전 단수 등 비인도적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발표가 있자마자 강남구청은 영하 10도로 강추위가 몰아친 한겨울 새벽 6시에 우리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인 컨테이너들을 강제로 기습철거해 버렸습니다. 용역업체 직원 수백 명과 중장비, 구급차, 소방차 등을 동원해 마치 적을 섬멸하는 군사작전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항하면 자칫 누군가 다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멀거니 눈 앞에서 우리들의 살림살이와 컨테이너가 해체되고 실려나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쳐다보아야만 했습니다. 아무리 행정대집행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피땀 흘려 한푼두푼 모은 우리 재산은 그렇게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허탈했습니다. 허탈한 정도를 넘어서, 암담한 정도를 넘어서, 우리들 심장이 비수로 찔린 것만 같았습니다. 모두 합하면 1억 원이 넘습니다만 그것들은 단순히 돈으로만 환산할 수 없는 우리들 자신의 분신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들 일터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유일한 희망의 근거였습니다.

강남구청은 주변 아파트에서 보기 흉하다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이유를 내겁니다만, 우리는 그것이 궁색한 억지 주장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 쓰레기를 치우고 재활용하는 우리들이 없다면 그 처리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보기 흉한 것이 아니라, 부자들만 산다는 강남에서 그래도 더불어 사는 따뜻함을 보이며 나름의 떳떳하고도 아름다운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언론에 알리지도 않고 순순히 떠났습니다. 우리들은 한 평에 수천만 원이 넘는 그 땅에 욕심이 있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더구나 수십억 원대의 아파트에 살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물을 수집하여 먹고 살 수 있게끔 최소한의 생활터전을 약속한 것을 이행해 달라는 것입니다. 강남구청은 우리들에게 다른 생활 공간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우리들은 이 추운 겨울 오갈 데 없이 다시 노숙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숙자를 해결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노숙자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며칠전 서울시는 서울시 산하 공사 현장 149곳에 노숙자들을 600여 명이나 대거 배치해 자활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귀를 의심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강남구청은 서울시가 아닌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물론 철저하게 평화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우리들의 철거일지에는 벌써 네 번째 철거를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벌레가 아닙니다. 제발 함께 살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십시요. 우리에게 자립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십시요. 우리는 강남구청장도 주리라고 약속했던 대토를 원할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항변입니다. 부탁합니다.

그래도 한때 정들었던 포이동 266번지. 현재 이곳은 하루아침에 아스팔트가 까맣게 깔리고 연두색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진 공용주차장으로 변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2006년 새해, 넝마공동체 식구들이 이렇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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