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100일 앞둔 고3생 수험생들을 취재하기 위해
모 방송국에서 학교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텔레비전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의 화면과 함께
"고3 교실에는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학업 열기로 인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라는 뉴스를 전해주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의 연출된 화면도 쓴웃음을 주었지만
팽팽한 긴장감이라는 표현은 더더욱 큰 쓴웃음을 짓도록 만들었다.
뉴스가 진실만을 전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수능이 100여일도 남지 않은 고3 교실이지만
긴장감 가지고 공부하는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다.
교실마다 다르지만 수능 100일 전에 열심히 공부하는 고3은
40%가 채 되지 못한다.
수능 성적 반영하지 않는 수시전형 준비생이 많기 때문이고
아이들의 대학 진학 꿈이 없기 때문이며
스마트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시달려 공부가 밉고
공부에 지쳐 흥미 잃은 것도 중요 원인일 것이다.
미운데, 지쳤는데, 하고 싶은 마음 조금도 없는데,
대학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되는데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공부 열심히 할 수 있겠는가?
일정한 단위 시간에 투입된 노동량과 생산량의 비율을
노동생산성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은 하위권이라 한다.
일하는 시간은 길지만 생산량은 적은 것은
우리 사회의 크나큰 병폐인데
일상화된 야근과 주말 근무 등 장시간 노동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학생의 학습 생산성이 더 심각하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길지만 습득한 지식은 너무 적다.
15시간 넘게 책상 앞에 앉아있음에도 실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졸거나 자거나 멍 때리거나 딴 생각만 하기 때문이고
공부할 의지 없이 책상 앞에 앉아있기만 하기 때문인데
이 모든 슬픔의 원인은
어렸을 때부터 강요된 공부로 공부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 아닐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계속 먹으면
맛 느끼지 못하게 되고,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일지라도
강요에 의해 하다보면 재미없어진다는 사실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공부도 재미있는 작업인데 진즉 노동이 되어버렸다.
내용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험을 위한 공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 원인은
공부 강요로 공부에 흥미 잃었기 때문이고
어렸을 때부터 억지 공부로 공부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입학 때에 전교 100등 넘었었는데
지난 학기 성적이 전교 5등 안에 들었던 학생이 있었다.
이유를 묻는 나에게
마음껏 놀았더니 공부하고 싶어지더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렇다. 쉼 없이 기어가는 것보다
중간 중간 쉬고 놀면서 걸어가야 멀리 갈 수 있다.
쉼 없이 뛰어야 좋은 결과 얻게 된다고 말하지 않으면 좋겠고
인간은 쉼 없이 뛸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알아주면 좋겠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의 야유회에서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느니라."
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이런 노래를 부르는 어른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게으른 사람들의 자기 합리화고
사회를 좀먹는 나쁜 노래라고 생각하였다.
'젊어서 놀자고, 늙으면 놀 수 없으니까 젊어서 놀자고?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야지, 놀면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성실치 못한 나쁜 사람들 같으니라고?'
라고 중얼거렸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래, 젊어서 놀아야 해
열흘 동안 계속 피는 꽃이 없는 것처럼,
보름달도 언젠가 기우는 것처럼
인간은 늙고
그 때는 놀고 싶어도 놀 수 없을 테니까.
젊어서 놀아보아야만 늙어서도 잘 놀 수 있으니까.
일만 하다가 세상 떠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인 것 분명하니까.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쉬고 놀면서 일해야 더 좋은 결과 얻을 수 있으니까.
열심히 사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고,
열심히 사는 삶에 재미있게 노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열심히 놀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열심히 하는 것 많이 보았다.
열심히 놀기만 하라는 말 아니라 놀 때는 열심히 놀고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진정으로 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면
자녀가 열심히 놀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 다음에 공부하라고 이야기해도 결코 늦지 않다.
놀도록 해야 한다. 열심히 놀아야 열심히 공부도 할 수 있다.
노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에너지 축적이고
공부 열심히 하기 위한 준비다.
멋지다고 소문난 산과 들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지만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학교 운동장에도 마을 골목에도
왁자지껄 노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디로 갔는가? 무엇을 하는가?
놀아야 하는데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누가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아갔는가?
놀이는 어린이들의 정당한 행동이고
장난감은 어린이들의 천사라는 말도 있는데.......
한 끼 굶는다고 죽지 않는 것처럼
한두 달 공부 않는다고 인생 망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실컷 놀게 하라.
스스로 공부하고 싶다고 덤빌 때까지.
이것이 공부 잘하게 만드는 비결일 수 있다.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저 운동장이 저렇게 비어있어서는 안 되는데,
저 운동장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성이
해뜨기 시작할 때부터 해질 무렵까지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노동 시간을 줄여주었더니
생산량이 더 높아졌다는 이야기,
들은 적,
정말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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