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강조한 것 중의 하나는 공공성이었다. 경쟁과 효율의 논리 속에 공동체의 이익이 소수에게 점유될 때 한국 사회의 건실한 지속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공성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동안 많은 공기업은 자신들에 주어진 공익적 역할보다는 성과주의와 수익성에 매몰되어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신 상대적 고임금과 고용안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노사모두 공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외치자 공기업들 마다 부산을 떨었지만 그 결실은 초라하다. 공기업이 구현하는 공공성은 그 기업에 주어진 기본 역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단체로 산뜻한 조끼를 맞춰 입고 양로원 공연을 가거나 연탄배달을 하고 헌혈에 나서는 것은 그 기업의 사보만 그럴듯하게 장식할 뿐이다.
그동안 부동산 가격 안정에 토지주택 공사가 기여했다는 평가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한전이 밀양에서 벌인 송전탑 사건은 국가폭력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원자로 출력을 제어하는 제어봉을 무자격자가 취급했고 긴급 위험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원전가동을 중지시키지 않았다. 심지어는 사고 자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했는지조차 의문이 제기됐다. 철도공사는 KTX와 새마을호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열차 승무원의 직접고용을 외면하고 자회사 외주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공기업이 공공성이란 유토피아적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봄이 오면 공기업 노사의 최대 관심사는 성과급 등급 순위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공성 항목이 추가되긴 했지만 성과체계의 평가 지표들은 공기업의 공익적 역할을 방해하는 주요 장치로 기능한 지 오래됐다.
적자기업의 오명을 안고 있는 철도공사는 국토부 산하기관으로써 국토부로부터 끊임없이 수익창출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압박 중에는 철도 운영관련 부대사업, 즉 역사 임대나 개발을 통한 수익 창출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허망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 성공사례를 무분별하게 끼워 맞추다보니 부대사업 수익은커녕 손실을 보고 파산하는 경우도 생긴다,
역사나 인근 부지에 대한 관할권도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이 나누어 갖거나 이해관계가 겹치다 보니 두 기관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기관분리를 개혁이라 치장해 밀어붙인 국토부는 방관자가 되고 법원이 해결사로 나선다. 누가 이기든 시민들의 이해관계와는 멀찍이 떨어져있다.
역사의 상업적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철도의 수익확보를 위해 신주쿠나 오사카역, 베를린 중앙역처럼 식당이나 상점을 들이고 이에 따른 임대 수익으로 철도에 투자되는 비용으로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역에 이 같은 관점으로 접근하면 문제가 생긴다. 바로 한국 곳곳의 역사 관련 소송이 벌어지고 파산에 이르는 민자 역사들이 그 증거이다.
빛나는 청사진을 갖고 건설된 신촌 민자 역사는 거대한 유령건물이 되어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만이 바닷속 섬처럼 숨어 있다. 창동 민자 역사 역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 전 속에 누군가는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이렇게 방치된 역들은 새로운 투자자가 나서기도, 투자 주주의 하나에 불과한 공기업이 손실을 떠안기도, 새로운 개발 계획을 세워 분양하기도 어려운 늪에 빠져있다. 성공을 자신했던 컨설턴트 회사나 기획자들은 금새 사라졌다. 퇴직금을 털어 넣거나 은행 대출을 받아 작은 점포라도 운영하려던 중소 상인들은 가슴 속에 한이 맺혀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체가 대안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고 공기업이 참여하고 해당 지자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신촌 역사를 거대한 청년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떤가? 돈이 없는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전시와 공연이 상설 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 몇 번 쯤 실패해도 버틸 수 있는 청년 아이디어 스타트업 기업들을 유치할 수도 있다. 몇 개 층은 저렴한 임대료로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사와 디자인 사무실을 제공해 건물 내 작은 출판 골목을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식당도 들어오고 가게도 생긴다. 국가나 공기업이 건물주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문화와 예술, 중소 상인들의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역은 문화와 삶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지방의 시골 역들은 지역 특성에 맞게 작은 박물관이나 도서관, 문화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기차가 달려 도착하는 거점이 되는 역들은 상황과 지역과 특색에 따라 구분해서 개발하거나 활용하고 보존해야 한다. 오직 투자와 수익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 이 같은 대표적인 공간 중의 하나가 바로 경의선 공유지다.
옛 경의선 철길 아래 지하철이 생기면서 기존 철도 부지는 시민들의 공간이 되었다. 현재 지하철 5호선 공덕역 옆에서 시작해 홍대를 지나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연남동으로 이어지는 옛 철길은 1세기가 넘는 철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러일전쟁을 위해 일본이 대한제국으로부터 강제로 부설권을 빼앗아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한 현장이자 독립 운동가들이 만주를 향해 열차에 올라 달렸던 길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까지는 화물열차가 달리며 그 명맥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 땅을 돈으로 보는 기업들은 이 공간이 가진 역사나 문화, 사회적 가치 따위는 관심이 없다. 공덕역 경의선 공유지에 거대한 쇼핑몰을 만들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수많은 임대공간이 생기고 투자를 한 재벌 기업은 큰돈을 번다. 관할 지자체도 세수가 늘어나니 환영이다. 돈이 가장 중요한 판단의 잣대가 될 때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대신 인근 주민들은 교통 혼잡에, 유동 인파에 휩쓸리고 휴식의 공간은 잃게 된다.
지금 공덕역 주변 경의선 공유지는 시민활동가들과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회원들, 문화 활동가, 지역 주민들이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벼룩시장도 열고 강연이나 공연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관리 주체인 철도시설공단은 이 같은 시민과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활동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내쫓고 막대한 개발 수익을 챙기고 싶은 것이다. 법적 대응 이야기도 진즉에 나왔다. 이런 현실을 보면 국가는 무엇이며 공공기관은 또 무엇이고 공동체는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곳을 인문학 연구단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컨테이너를 잘 조합해서 신기한 연구실을 만들어 가난한 인문학 연구자들이 마음 놓고 공부하고 사유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기업들이 당장 요구하는 기능에 밀려 몰락하고 있는 인문학이다. 인문학의 새로운 성지를 옛 경의선 철길에 만들자는 생각조차 불순한 시대라면 과연 희망이 있는 사회인가?
공유지 꽃길을 따라 상설 벼룩시장도 만들고 버스킹도 할 수 있게 된다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찾고 싶은 장소가 될 수도 있다. 국제 인문학 세미나나 학술제를 열어 인간과 세계, 지역과 공동체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도 있다. 나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상기시키고 싶다. 공화국의 근간으로서 국가에 주어진 역할을 포기하고 기업에 양도할 때 공동체는 균열의 길로 간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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